어릴 때는 아닌 듯하다. 어머니에게 종종 나의 태몽 이야기를 듣곤 하던 때는.
어머니가 이야기 해준 나의 태몽은 어찌 해석해야 할지 몰랐다. 아무리 궁리를 해봐도 마땅한 해석을 할 순 없었지만 그리 나쁜 꿈은 아닌 거 같았다. 허긴 태몽이 악몽인 경우는 없을 테니까.
지금껏 내 삶은 어두운 터널의 여정이어서 태몽이 아무리 상서로웠던들 별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가끔 나의 태몽이 떠오를 때마다 도대체 그 의미가 무엇일까 궁금하였다. 그럼에도 변변찮은 삶에서 태몽의 의미를 안들 무슨 대수랴 싶어 가벼이 넘기고 말았다.
‘할머니가 뚜껑이 없는 커다란 장독을 안고 와 어머니에게 주면서 너희가 쓰라.’며 주고 가셨단다. 그저 한 줄로 표현되는 태몽이었다.
태몽은 어쩌면 그 사람의 인생 전체를 의미할지 모른다.
몇 년 전부터 출판을 계기로 알고 지내는 무속인 저자가 있다. [무궁화 꽃이 피면]이라는 자전적 에세이집을 출간한 김희창 저자이다. 15년째 출판사를 운영하다 보니 다양한 이력을 지닌 저자들과 만나고 친분을 쌓고 그런다.
70중반을 넘긴 그녀는, 남양주 수동면 지둔리의 해드림펜션 대표이기도 하다. 김희창 저자는 오랫동안 무속인의 삶을 살았다. 그러다 어느 해부터 무속의 삶을 접고 보통사람의 생활을 이어왔다. 그런데 몇 해 전 암 선고를 받은 이후 다시 무속인의 삶으로 돌아간 것이다. 암 선고가 무속의 운명을 거부한 대가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여하튼 무속으로 돌아온 지금은 암 선고가 거짓말인가 싶을 정도로 건강하게 생활을 한다.
김희창 법사의 체력은 보통 사람의 체력이 아니다. 일흔 중반이 넘었음에도 무슨 일이든 하려는 삶의 의욕이 강할 뿐만 아니라, 술을 마셔도 젊은 날부터 어지간히 술을 마셔온 나는 감히 대작을 못할 정도이다.
작년 도봉산 뒤편 어디 쯤에서 굿을 한다고 하여 난생처음 무속인의 굿을 구경하게 되었다. 나는 굿이라 하면 두어 시간 하고 끝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당일 오후부터 시작한 굿은 다음 날 아침에야 끝이 났다. 물론 중간중간 쉬는 시간이 있다 해도 일흔 중반이 넘은 그녀가 그 오랜 시간 굿을 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더 놀라운 것은 굿을 끝낸 다음 날 눈도 제대로 못 붙인 상태에서 지방 어디 기도터를 찾아 기도를 하러 갔다는 사실이다. 무속인들은 그런 굿을 하고 나면, 자신이 정한 기도터로 가서 기도를 올리는 거 같았다.
김희창 법사 뿐만 아니라 그날 파트너로 함께 참석하여 굿을 한 이들도 모두 70대 무속인들이었다. 도대체 그들의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싶었다.
김희창 법사가 며칠 전 남양주시 마석역 인근에다 관우신당이라는 점집을 개소하였다. 내게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신앙이 있지만,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끼리만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 아닌 터라 당연히 점안식 축하를 해주고자 찾아갔다.
저녁을 먹은 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곳에서 내게 하는 말을 들었다.
‘할머니가 나를 도와주지 못해 몹시 안타까워 하신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는 바로 떠올린 것이 어머니가 꾸었다는 태몽이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내가 태어나기 전 이미 세상을 떠나셨으니 나는 두 분의 얼굴을 모른다. 나는 비교적 세상 떠난 이들의 꿈을 자주 꾸는 편인데, 나는 이들 꿈을 근거로 사람이 죽으면 산 자와의 연이 끝나는 게 아니라 영을 통해 교감한다는 믿음을 가져왔다.
어머니의 몸에서 내 생명의 씨앗이 발아되는 시점을 어머니에게 알려준 할머니가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나의 고단한 삶을 지켜보며 안타까워하신다는 것일까.
태몽에서 할머니가 어머니에게 건넨 항아리는, 무언가 늘 채웠다가 퍼주고 채웠다가 퍼주고 하는 기업가 인생을 의미하는 거 같았다. 법조인을 꿈꾸며 대학 졸업 이후에도 10여 년 넘도록 매달리다 실패하였던 내가, 참으로 우연히 출판사를 운영하게 된 것도 어쩌면 예정된 삶을 벗어난 길을 걷다 내 운명의 길로 찾아들어선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김희창 법사가 무속의 삶을 탈출하였다가 다시 무속의 삶으로 끌려온 것처럼….
‘할머니가 나를 도와주지 못해 몹시 안타까워하신다’라는 그 한마디가 내게는 힘이 되는 말이었다. 내 운명이 이 길이라면, 출판사를 운영하며 날마다 아프고 힘들어도 앞으로 좀 더 겸허히 받아들이고, 좀 더 인내하며, 좀 더 전력 질주해야 할 일이다. 더구나 내게는 내 삶을 오롯이 의탁하며 간구하고 보호받는 하느님이 계시지 않은가.
돌이켜보면 내 삶은 무언가 족쇄가 채워진 느낌이었다. 조금이라도 오르고 싶어 발버둥 치면 치면 칠수록 무언가 자꾸 내 발목을 잡아 끌어내리는 듯하였다. 그런 가운데 나는 하느님께 의탁해 왔고 그분의 지배 아래 나를 두었으며 그분의 옷자락을 잡고 살아온다.
우리 인생은 다 똑같을 수 없다. 인간은 한시를 예측할 수 없는 불규칙의 원리가 지배하는 우주 속 입자이기 때문이다. 매일 매 순간 날씨가 다르듯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정확하게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사물은 단 하나도 없다. 겉으론 규칙적인 거 같아도 자세히 살펴보면 모두 불규칙한 세상사다. 삼라만상이 규칙적으로 움직이게 된다면 지구는 종말을 고할 것이다. 이 불규칙의 원리가 존재하는 가운데 예측 또는 예상이라는 게 필요하고, 꿈과 희망이 존재하는 것이다. 세상이 규칙적으로 움직인다면 꿈도 희망도 존재할 수 없는 일이다. 재미 삼아 본다고는 하지만, 그래서 사람들은 때로 운세를 보기도 하고 무속인을 찾아 자문하기도 한다.
자아가 강해서인지 몰라도 나는 내 신앙에서 자유의지가 박약하거나, 하느님을 왜곡하거나 신앙의 본질을 벗어난 일 이외는, 비교적 열린 사고를 지향한다.
실타래처럼 얽힌 삶에서 허우적거리다가 무속의 기운으로 그것을 풀어내어 좀 더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면, 나약하고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희망과 힘을 심어줄 수 있다면 나는 그도 선한 기운으로 여긴다. 우리 인간은 한없이 나약한 존재일 뿐만 아니라, 신앙은 멀고 아픔은 가깝기 때문이다.
https://youtu.be/88DHGHFDLIw
https://youtu.be/ylrU9Xvm6I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