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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드림 hd books Aug 27. 2018

딸년이 사고를 치다

딸년이 사고를 치다

        이승훈     



딸년한테 욕하면 세상 애비들 체면 떨어지겠지만

오늘은 딸년에게 실컷 욕하고 싶다

애비한테 하는 말버릇이 반 토막에다

지년 제자들한테 하는 거보다 더 어리게 대해서

니 같이 예의 없는 선생은 짤려야 한다며 

악담을 퍼부어도 무시당하기 일쑤다

만날 투정만 쳐먹고 살아

말 뽄새로 보면 누가 딸년이고 누가 애비인지 모른다

서른다섯을 넘긴 딸년에게 비손하듯 손을 비비며 

‘어디 골빈 남자라도 데리고 올 수 없느냐.’ 하면

‘아, 씨바. 아빠처럼 부려먹을 남자가 있어야 데리고 오지.

나는 결혼 안할 거니까,

아빠나 어디 가서 할망구라도 데리고 와.‘ 하였다.

이년이 지 애미를 모독해도 유분수다

애비가 얼마나 예쁜 여자와 살았는데 할망구라니.

근데 오늘 간 떨어지는 줄 알았다

딸년이 사고를 친 것이다

지보다 세살이나 어린놈을 데리고 와서

‘아빠 이제 혼자 졸라 재밌게 사셔’ 하는 것이다

아, 진짜 이 딸년을 어찌해야 하나….

시집 안 간다고 발악을 해쌓아서 

모아둔 돈, 부도 난 친구한테 줘버렸는데

이를 알고나 있는 듯

‘아빠 결혼은 우리가 하는 거야.

그러니 아빠는 일절 신경 끄셔.‘ 한다

어째 오늘은 딸년 말투가 말끝마다 끈적거린다

사위될 놈하고 점심 먹으며 술을 한 잔 했다

진짜 지 애비 닮은 놈을 데리고 왔는지

소주 맥주 마구 섞어줘도 끄덕 없었다

싸가지 없는 딸년을 데려간다니 고맙긴 해도

어째 도둑놈 같은 생각이 들어

많이 쳐드시고 오바이트나 하라고

술잔 놓기 무섭게 잔을 채워줬지만

오히려 내가 오바이트 할 뻔하였다.

애비 생각은 고양이 딴청 하듯 하던 딸년이 오늘은 그런다

‘아빠, 내가 아빠 옆에 있어도 아빠 늙으면 똥수발 못해’

이년이 아주 염장을 지른다

여섯 살 때부터 혼자 키워온 년이라

지 시애비한테도 애비 대하듯 하면 어쩌나 걱정하는데

사위 놈 대하는 태도가 지 어린 제자 대하듯 자상하다

평소 애비가 숟갈에 반찬을 올려주면

받아먹기만 할 줄 알았지 애비 숟가락에 김치 한 조각 안 올려주던 년이

지 남자한테 반찬 챙겨주느라 정신이 없다

양심 없는 년 같으니라고.

술도 못 마시는 딸년이 미쳤나 보다

남자친구를 배웅하고 돌아와서는 

애비를 안고 펑펑 울어싼다

‘아빠 미안해. 그동안 내가 아빠를 너무 오래 붙들고 있었어.’

이년이 애비가 만들어준 노각 무침을 먹고 자라

마음조차 늙어버렸나 보다.

딸년 안아보기는 사춘기 이후 처음이다

한참 울던 딸년이 갑자기 소리를 꽥 지른다

‘아, 씨바. 애비가 돼갖고 왜 쳐울어’

이런 년이 어린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이라니 대한민국에 참 죄송하다

이제 딸년하고 살던 집 팔아서 남은 돈 시집살림 챙겨주고

좀 더 작은 집으로 이사 가야겠다

마지막 욕심이 하나 생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하고 똑 닮은

싸가지 없는 손주 하나 낳아줬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아, 씨바. 벌써 손주 목소리가 들린다

‘하부지, 아슈크림’

반토막이 반토막을 낳겠지만 지 애미보다는 예쁠 거 같다

눈이 밤탱이가 된 딸년이 방으로 들어가고

나도 내 방으로 들어오자 사진 속 마누라가 웃고 있다

‘여보, 그동안 고생했어.’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씨바, 니년이 더 나쁜 년이여.’

그래도 마누라는 웃어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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