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형진 목사 첫 시집 '그 사랑이 참 오래간다'

by 해드림 hd books

시의 메타포나 여타 기교 없이

사물에서 반추되는 자신의 마음을 그려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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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그 사랑이 참 오래간다]는 목회자이기도 한 김형진 시인의 첫 번째 시집이다. 시인의 지인들이 컬러 수채화로 여백을 채운 예쁜 시집이다. 이번 시집은 가족과 목양, 그리고 삶을 소재로 창작한 작품들을 모았다.

오랫동안 출판을 통해 다양한 문학 작품들을 접해온 필자가 한가지 터득한 사실은 글이 주는 미학이나 감동은 글쓴이의 인품과는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장르에서는 몰라도 특히 수필에서는 수필가의 인품이나 인성이 작품에 녹아 있을 수 있고, 수필을 오랫동안 써온 이들은 수필을 잘 쓰려면 우선 자신의 인품을 잘 닦아야 한다고들 한다. 물론 시에서도 시인의 그것이 그대로 드러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아름다운 시든 수필이든 그것은 작품일 뿐 저자의 인품과는 별개이다. 작품과 저자의 인품이 같을 필요도 없다. 따라서 작품은 작품으로만 봐야 하고 평가해야 한다. 고상한 작품을 읽었다고 하여 거기에다 작가의 인품을 대비하거나 상상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사형수도 세상 사람들을 울릴 수 있는 아름답고 감동적인 글을 쓸 수가 있다. 다만, 작품에서 느껴지고 상상되는 저자가 현실과 일치한다면 독자는 그를 마음껏 동경해도 될 것이다.

김형진 시들은 소박하고 쉽고 순수하다. 시의 메타포나 여타 기교 없이 사물에서 반추되는 자신의 사유를 거울처럼 걸어놓았다. 다시 말하면, 시에서 느껴오는 시인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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샴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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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한 샴푸가 도착했다

지금 쓰고 있는 것과는 다른

궁금함보단 새것을 쓰고 싶은 욕심

‘쓰던 거 다 쓰고 써요’라는 말은 들었지만

‘내 맘이야’라며 먼저 써본다

먼저 씻고 나와 로션 바르고 음료수를 꺼내러 냉장고 가는 길

살포시 열린 욕실 문 사이로 남은 샴푸 쥐어짜는 아내

콜라 캔을 따 마시기 전

문득 이 마음이 든다

여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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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이 시를 교회 식구들이 읽는다면 어떤 마음일까 싶다. 목사의 아내를 교회에서는 일반적으로 ‘사모’라는 호칭을 쓴다. 모르긴 해도 교회 식구들은 순수하지만 짓궂기도 한 시인의 영혼보다, ‘사모’의 검소함에 무언가 신뢰를 보내게 될 것이다. 이 작품은 시인과 아내의 새것에 대한 호기심과 검소함의 대립을 애틋하게 구조화시켰다. 일상의 시인을 드러낸 시인의 거울 같은 시이다.

김형진.jpg

새벽 창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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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리가 답답해 창문을 열어놓으면

짜증 나게도

새벽녘 아빠는 꼭 들어와 닫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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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방에 들어갔는데

창문이 열려있어 닫았다

문득 생각한다

내가 아빠가 되었다는 걸

그리고 아빠가 보고 싶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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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어떤 시들을 보면 독자의 아이큐를 테스트하는 듯한 느낌을 받곤 한다. 시는 감동 창조이다. 어려운 시들은 독자의 이해를 방해하니 반응이 나올 수 없다. 감동이 없으면 시를 읽고 난 후의 여운도 없다. 도대체 이 시인은 시에서 무얼 말하고 싶은 것일까 고민하게 하는 시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작품해설을 쓰는 평론가도 어려운 시를 만나게 되면 두 배 세 배 에너지가 소진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형진 시들은 감동을 앞세운 친근한 시들이다. 시의 외형적 미학을 추구하기보다 내면적 미학을 추구한다. 때로는 가슴 시리고 애틋하며 때로는 따듯하다. 시가 독자에게 흘러가는데 아무런 장애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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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를 지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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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진 시들은 대체로 짧다. 이는 사유의 폭이 좁은 게 아니라 김형진 시인의 시 스타일이다. 일상을 말로 이어가며 살아가는 시인이다. 침묵하는 시간이 별로 없다. 심지어 기도하는 때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이런 시인에게 시들은 묵언 수련 같은 시공간일 수 있다. 시인 자신도 시인의 말에서 이를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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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석에서 말을 많이 해야 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사석에서는 되도록 말을 아끼려 노력합니다. 말에는 총량이 있기에 입술로 다 써버리면 마음이 허전해질까 봐서요. 마음으로 생각하고 마음으로 다시 정리하고, 마음으로 모읍니다. 그렇게 모아진 것들은 다시 풀어낼 수 없고, 그러기도 싫습니다. 지금,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생각하며 삽니다. 선뜻 말하기보다, 생각하면서. 그리고 도자기 빚듯이 시를 써봅니다. 누군가에게는 감동이 되기를, 누군가에게는 따뜻함이 되기를, 누군가에게는 은혜가 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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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진 시집 [그 사랑이 참 오래간다]는, 목양을 소재로 하는 이외 가족과 삶을 그려내는 데도 어쩔 수 없는 신앙의 향기가 흐른다. 이는 삶 자체가 사랑으로 수양을 해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신앙을 소재로 한 시들 또한 비신앙이 읽어도 아무런 거부감 없이 다가갈 것이다. 김형진 시인은 이번 시집 발표 전에도 신앙 에세이집 [고급스러운 신앙]과 [생각만 해도 가슴이 뜁니다]를 출간한 바 있다. 더구나 매주 설교를 준비하려면 끊임없이 독서를 해야 할 것이고, 자주 글을 쓰며 성찰과 기도하는 시간을 갖게 되는데, 이런 과정을 통해 목회자이기 전에 시인으로서의 역량 또한 업그레이드 되는 게 아닌가 싶다. 교회 식구들에게 어려운 설교는 결코 큰 감동을 일으키지 못한다. 시도 마찬가지다. 시를 쉽게 쓴다는 것은 커다란 장점이다. 이번 시집 [그 사랑이 참 오래간다]는 참 쉬우면서도 감동 있는 시들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동시처럼 맑은 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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