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며칠째 아빠는 공원의 같은 자리에 앉아 있다.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아빠는 자꾸 숲 쪽을 바라보며 두리번 거렸다. 순간. 갑자기 뭘 봤는지 어둡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어! 혹시 무아?'
하지만 깡충거리며 달려온 건 어제 본 갈색 토끼와 검은 귀 토끼였다. 아빠의 얼굴이 다시 시무룩해졌다.
'무아가 아니구나.'
어제도 이 녀석들이 곁에 가까이 오길래 당근을 나눠주었다.
"혹시 너희들 무아 친구니? 우리 무아 못 봤니?"
아빠는 오물오물 맛있게 당근을 먹는 토끼들에게 말을 건네 본다. 혹시라도 무아를 만나면 주려고 가져온 간식봉지 속에는 무아가 제일 좋아하던 냠냠과자도 들어 있다.
'무아가 이게 얼마나 먹고 싶을까......'
갈색 토끼와 검은 귀 토끼에게 과자를 내밀었더니 먹진 않고 킁, 킁 냄새만 맡았다.
"얘들아, 혹시 무아를 만나면 아빠가 다녀갔다고 좀 전해줄래? 좋아하는 냠냠과자도 가지고 왔었다고 말이야. 그리고......"
아빠의 눈에 촉촉하게 물기가 어렸다.
"그리고 아빠가 많이 미안하다고, 많이 보고 싶어 한다고 꼭 좀 전해줘."
힘 없이 돌아서는 아빠의 뒷모습을 빤히 쳐다보던 두 마리 토끼는 그 말을 전하러 숲 쪽으로 달려갔다.
공원을 나오기 전, 아빠는 미련이 남아 걱정스러운 눈길로 한번 더 숲 쪽을 바라보았다.
'혹시 오소리나 사나운 들고양이들에게 나쁜 일이라도 당한 건 아니겠지? 아니야, 우리 무아는 워낙 빠른 녀석이라 잘 도망칠 거야.'
어쩌면 저기 공원의 숲 속 어디선가 무아가 몰래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 삐치면 오래가는 고집쟁이 녀석.
'무아야, 이제 그만 화 풀어줘. 아빠 그만 간다.'
아빠는 아무도 없는 어둠 속을 향해 두 팔을 올려 몇 번 흔들었다. 혹시라도 무아가 보고 있지 않을까 싶어서......
사실,무아는 큰 나무 뒤에 숨어 아까부터 계속 아빠를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아빠를 만나고 싶진 않았다. 무아가 보이지 않자 실망하는 아빠의 속상한 얼굴을 보면서 속으론 고소했다.
'나 때문에 마음 아파도 돼. 아빠 미워!'
하지만 막상 아빠가 떠나고 보이지 않자 귀가 축 늘어진 무아는 잔뜩 풀이 죽었다.
"너희 아빠 참 착하더라. 나한테 당근도 줬어."
갈색 토끼 치누가 무아에게 자랑을 했다. 검은 귀 토끼 포포가 맞장구를 쳤다.
"맞아, 참 착해. 내 머리도 부드럽게 쓰다듬어줬어."
"그런데 너희 아빠가 준 이상한 과자는 맛이 없어. 냠냠이라고 하던가."
무아는 왈칵 울음이 치밀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던 냠냠과자다!
"이 과자 너 먹을래?"
무아는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 냠냠과자를 먹으면 아빠 생각에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참, 너희 아빠가 이렇게 전해달래. 많이 미안하다고"
"그리고 많이 보고 싶다고 했어."
치누와 포포는 그 말을 전해주고 무아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넌 왜 아빠가 오면 숨는 거야? 만나기 싫어?"
무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마음속에선 다른 대답이 들렸다.
'아니, 너무 보고 싶어서 그래. 자꾸 보고 싶을까 봐, 그게 무서워서......'
무아는 지금도 아빠가 왜 자기를 버렸는지 알 수 없었다. 말 안 들으면 가끔 귀를 잡아당기며 혼내기도 했지만 누구보다 무아를 사랑해 주던 아빠.
그래서 처음엔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아빠는 나를 버릴 사람이 아니야. 아빠가 무아를 버리고 혼자 가버린 날, 밤새 무아는 잠도 안 자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었다.
'내가 뭘 잘못했나 봐...... 아하, 아빠가 말 잘 듣게 하려고 하룻밤 벌을 주나 봐! 내일은 다시 날 데리러 올 거야. 이제 집에 가면 정말 아빠 말 잘 들어야지.'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무아는 아빠가 미워졌다.
'맞아, 내가 귀찮아서 버린 거야! 사랑하는 척하더니 다 거짓말이었어. 아빠 미워!'
늦은 밤, 아빠는 부지런히 집청소를 하고 있다. 내일부터 당분간 집을 비워야 할 일이 있어서였다. 아니 어쩌면 이런저런 생각이 너무 많아서 잊어버리려고 청소를 하는지도 모른다. 발 끝에 뭔가 툭, 하고 차인다. 내려다보니 무아가 가지고 놀던 나무장난감이었다. 그걸 보자 마음 한 구석이 찌르르 아파왔다.
무아의 집, 모래를 깔아 만들어준 화장실, 무아의 밥그릇, 물을 먹는 급수기, 발톱깎이, 털을 빗어주던 빗, 산책할 때 쓰던 목줄, 나무토막 장난감 몇 개...... 집 안 곳곳에 아직도 무아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나무토막 장난감을 만지작거리다 눈물이 핑 돈다. 이가 자라니까 뭐든 갉아대고 싶어 하던 무아가 핸드폰 충전기 줄을 갉아서 화가 났던 날이 생각났다. 귀 잡아당기기와 엉덩이 때려주기로 무섭게 혼을 낸 후 미안한 마음에 작은 나무토막 장난감을 사줬었다.
사실 무아는 현우의 선물이었다. 아빠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들은 지금 아빠 곁에 없다. 미국에 사는 현우의 이모가 현우를 미국에 데려갔다.
"형부, 언니가 세상 떠난 지도 벌써 몇 년이잖아요. 이제 형부도 자신을 좀 돌봐요. 현우 걱정은 하지 말아요."
서운해하는 아빠의 마음을 달래주기라도 하듯 현우가 주고 간 선물이 바로 아기토끼 무아였다.
"아빠, 방학 때마다 와서 아빠랑 지낼 거야. 그러니까 몇 달씩만 헤어져있다고 생각해 줘. 대신 이 녀석이 아빠한테 아들노릇해줄 거야. 이름은 무아야. "무척 귀여운 아들토끼"라는 뜻으로 지었어."
현우가 떠난 후, 아빠 곁엔 무아가 유일한 식구였다. 매일 밥도 주고, 응가도 치워주고, 같이 놀기도 하다 보니 점점 정이 많이 들었다
"처음엔 조그맣던 녀석이 언제 이렇게 자랐냐!"
가끔 TV 보는 아빠의 배 위에서 잠든 무아를 보면, 현우가 아기였을 때 배 위에서 쌔근쌔근 자던 모습이 떠오르곤 했다.
기분 좋으면 머리를 흔들며 펄쩍펄쩍 뛰기도 하고, 못 본 척하면 앞발로 톡톡 장난을 걸던 무아. 그러다 가끔 혼나서 삐치거나 화가 나면 불러도 치 치, 흥 흥 본 척 만 척 쌀쌀맞게 굴던 무아.
청소를 하다 말고 멍하게 서서 아빠는 무아와 함께 지냈던 추억에 잠겼다.
딸기. 사과. 배. 바나나. 토마토. 상추...... 그 외에도 좋아하는 게 참 많던 먹성 좋은 무아가 가장 즐겨 먹던 건 미나리였다. 자주 미나리를 사다 먹이다 나중엔 뿌리만 잘라 넣고 물을 계속 주었다. 미나리가 싱싱하게 자라서 잘라 주고 또 키우곤 했다. 무아가 없는데도 싱싱하게 쑥쑥 자라는 미나리를 보니 더 마음이 아팠다.
무아를 공원의 풀밭에 풀어놓아주던 그날이 떠올랐다. 마음 약해지지 않으려고 마지막날 괜히 혼만 냈던 게 후회스러웠다. 차라리 안아줄 걸, 따뜻하게 안아주고 헤어질걸......이름도 예쁜,무척 귀여운 아들토끼,우리 무아.
같은 날 밤, 숲 속의 무아도 풀이 죽어 귀를 축 늘어뜨린 채 아빠와 헤어지던 그날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날, 아빠는 아침부터 무슨 일인지 화가 잔뜩 나 있었다. 다른 때 같으면 화낼 일도 아닌데 괜히 자꾸 소리를 질렀다. 조금만 귀찮게 해도 저리 가라며 무아를 밀쳐냈다. 아픈 건 아니지만 아빠의 심술에 무아도 화가 나서 괜히 더 심하게 장난을 쳤다. 청소기를 돌리는데 방해해도 웃어주던 아빠가 그날은 귀를 잡아당기며 혼냈다.
"매일 네 똥 치우는 것도 귀찮아!"
다른 날은 예쁘게 응가했다며 웃더니 그날 아빠는 무아의 응가까지 미워했다. 그러더니 금세 마음이 바뀌었는지 갑자기 맛있는 걸 잔뜩 주며 자꾸 먹으라고 했다.
"많이 먹어. 오늘은 많이 먹어야 돼."
자꾸 혼을 내다 밥을 많이 먹으랬다, 이랬다 저랬다 변덕을 부리는 아빠에게 삐져 일부러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
"배 고프면 어쩌려고 그래. 얼른 다 먹으라고! 배 부르게 먹어두란 말이야!"
왜 안 먹냐고 소리를 지르던 아빠는 훌쩍거리며 휴지로 코를 풀었다. 아빠가 감기에 걸렸나? 그러고 보니 아빠의 눈도 조금 붉어 보였다
'내 눈이 이상하다고 맨날 놀리더니 아빠도 날 닮아서 붉은 눈이 되었네!'
무아는 아빠의 붉어진 눈이 우스워 보여 흥흥 웃었다.
무아가 제일 싫어하는 목욕을 시키고 정말 싫어하는 빗질까지 다른 날보다 더 오래 해준 후에, 아빠는 무아를 외출용 가방에 담았다.
'와, 신난다! 아빠가 날 데리고 어디 멀리 차를 타고 갈건가?'
운전을 하는 아빠 옆에서 기분이 풀린 무아는 냠냠과자를 맛있게 먹었다.
잠시 후, 어딘가에 차를 세운 아빠는 무아를 안고 내렸다.
"여기는 풀밭이 가득해서 네가 뛰어놀기 좋을 거야. 여기 공원 관리인 아저씨가 그러는데 이 숲 속엔 토끼들이 꽤 많대. 아이들 데리고 가족들이 놀러오는 유명한 토끼 공원이거든. 공원 관리인 아저씨들이 매일 신선한 풀과 물도 챙겨주고, 토끼들이 비를 피할 작은 집들도 숲 곳곳에 만들었대. 친구들과 놀 수도 있고,너도 여기를 좋아할거야."
아빠가 풀밭 위에 무아를 꺼내놓았다. 무아는 처음 보는 드넓은 초록빛 세상이 마냥 신기했다. 싱그러운 풀냄새도 기분 좋았다.
"저 숲 쪽으로 한번 가봐. 저기,놀고 있는 친구들도 보이잖아."
주춤거리며 풀밭을 가로질러 숲 쪽으로 가까이 가자, 갈색 토끼와 검은 귀 토끼가 반갑게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처음 보는데 넌 누구야? 난 치누라고 해."
"안녕? 난 포포야. 넌 정말 예쁘다. 이름이 뭐야?"
두 토끼가 반갑다며 인사를 하고 번갈아가며 계속 이것저것 물어보는 바람에 무아는 정신을 쏙 빼앗겼다. 늘 아빠하고만 놀다 친구들을 만나본 게 처음이라 신기하기도 하고 마냥 신이 났다.
"넌 달리기 잘해? 치누하고 나하고는 매일 달리기 시합을 한다. 물론 내가 이겨!"
"뭐라고? 포포,네가 이긴 건 딱 오늘 한 번이야. 매일 나한테 지면서 까불어."
서로 자기가 훨씬 빠르다고 우기는 두 친구를 따라 무아도 달리기 놀이에 푹 빠졌다.
'아,풀밭은 정말 재미있는 놀이터야! 아빠를 졸라서 매일 놀러 와야지.'
한참 신나게 놀던 무아는 깜빡 잊고 있던 아빠가 생각났다.
'어, 아빠가 어디 있지? 아빠!'
허둥거리며 이리저리 찾다가 저만치 멀리 가고 있는 아빠의 뒷모습을 보았다.
'아빠가 날 찾고 있었나 봐. 빨리 가야지,혼나겠다.'
무아는 아빠를 뒷모습을 향해 부지런히 달려갔다. 그때, 걸어가던 아빠가 뒤를 돌아보다 무아와 눈이 마주쳤다. 어? 아빠는 달려오는 무아를 보자 반가워하기는커녕 못 본 척 고개를 돌려 갑자기 빠르게 뛰어가기 시작했다.
'아빠, 나 놀리는 거지? 아빠! 같이 가! '
뒤를 열심히 쫓아갔지만 어느새 아빠는 빠른 속도로 사라져 버렸다. 놀란 무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멈춰 서서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다.
'아빠...... 이제 장난 그만해. 어디 숨었어?'
하지만 아무리 오래오래 기다려도 아빠는 오지 않았다. 그 자리에 꼼짝도 않고 웅크리고 앉아 있는 무아 곁에 치누와 포포가 다가왔다.
"날이 어두워지고 있어. 그만 기다리고 우리 집으로 가자."
"아냐. 우리 아빠가 나 데리러 올 거야."
"친구들도 많고 여기가 훨씬 재미있잖아."
포포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시무룩한 무아를 쳐다봤다.
"아냐. 우리 아빤 꼭 올 거야. 아빠는 날 너무 사랑해."
날이 더 어두워지자 무아는 할 수 없이 치누와 포포를 따라갔다.
"여기가 우리가 자는 곳이야. 마음에 드니?"
무아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빠와 사는 집의 포근한 잠자리가 그리웠다.
밤엔 비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우르릉! 쾅쾅! 천둥이 칠 때마다 너무 무서웠다. 아빠는 왜 날 두고 갔을까 생각하다 자꾸 울음이 차올랐다
'아빠, 잘못했어. 이젠 안 그럴게. 이제부터는 말도 잘 들을게. 떼 안 쓰고 집에도 얌전히 들어가고, 아빠가 아끼는 화초도 안 뜯어먹을게. 아빠가 혼낸다고 오래 삐지지도 않을게. 괜히 욕심부리고 많이 먹어서 설사도 안 하고, 소파에쉬 해 아빠 속 상하게도 안 할게. 아빠가 책 읽을 때 장난 걸거나 방해도안 할게. 아빠가 발톱 깎아줄 때도 얌전히 있을 거야. 약속해. 아빠가 하는 말 다 잘 들을게. 다시 말썽 안 부릴 거야. 잘 못 했어. 그러니까 아빠, 이제 그만 나 데려가줘. 집에 가고 싶어. 아빠...... 아빠......'
하지만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아빠는 오지 않았다. 아니, 사실 아빠는 매일같이 공원을 찾아와 멀리 나무 뒤에서 무아를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무아는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아빠는 정말 나를 버린 거야. 아빠는 이제 내가 미워진 거야. 나도 아빠가 미워!'
밤새 이런저런 생각에 잠을 설치고 일찍 일어난 아빠는 미국에 전화를 걸었다.
"우리 아들,씩씩하게 잘 지내고 공부 잘 하고 있지?"
"당연하지. 아빠 닮아서 나는 뭐든 잘 하잖아."
"그래,아빠는 우리 현우를 믿어."
"아빠는 담배 끊었어? 약속했잖아."
"응,끊었어."
"좋았어. 역시 우리 아빠야."
"참,현우야......"
"응?"
"아빠가 너 많이 사랑하는거 알지?"
"알지. 나도 아빠 많이 사랑해."
전화를 끊고, 멍하게 앉아있던 아빠는 벨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준비는 다 했어?"
"혼자 가도 된다니까 바쁜데 왜 온거야?"
"어이구,귀한 친구께서 병원에 입원하시는데 모시고 가야지. 준비 다 했으면 나갈까?"
친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다 아빠는 토끼공원에 잠시 내려달라고 부탁했다.
"왜?"
"병원 가기 전에 꼭 할 일이 있어."
"급한 일 아니면 그냥 가. 도대체 너한테 지금 다른 일이 뭐가 중요해."
"아니,꼭 전해줘야 할 말이 있어서 그래. 오늘 안 하면 안 될 것 같아."
"누구한테?"
"무아."
"무아? "
"귀여운 내 토끼아들이야."
아빠 친구는 고개를 갸웃하며 공원 앞에 차를 잠시 세워줬다.
"그럼 얼른 다녀 와."
차에서 내린 아빠는 숲 쪽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어디에도 무아는 보이지 않았다. 어제 본 갈색 토끼와 검은 귀 토끼도 보이지 않았다. 아빠는 주머니 속에서 당근과 무아가 좋아하던 냠냠과자를 꺼내 풀밭에 잘 보이게 놓았다.
'무아야,아빠 오늘 병원에 들어가. 아주 큰 수술을 받아야 해. 무아는 모르겠지만 사실 아빠가 많이 아프거든. 현우한테도 걱정할까 봐 아무 말 안 했어. 모든 게 괜찮을 거라고 믿지만,그러길 기도하지만,아닐 수도 있어. 그래서 정말 고민하다 가장 안전한 여기 토끼공원에 너를 풀어준거야. 미안해,아빠를 용서해줘. 아빠가 다시 너를 보러 올 수 있을지 모르겠어. 꼭 우리 무아 다시 찾아오도록 힘을 내볼게. 제발 화 좀 풀어줘. 아빤 무아를 많이 사랑해. 넌 아빠 마음을 다 모르겠지. 무아야...보고 싶다. 씩씩하게 잘 지내.'
뒤돌아서 걸어가는 아빠의 축 처진 어깨가 조금씩 흔들렸다. 눈물을 참으며 걸어가는 슬픈 아빠의 뒷모습을 무아는 보지 못했다.
무아는 풀밭에 잔뜩 놓인 당근과 냠냠과자를 보고서야 오늘도 아빠가 다녀간 걸 알았다. 과자를 먹으며 무아는 아빠가 너무 보고 싶어서 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칫,내가 미워서 버려놓고 왜 매일 날 만나러 오는 거야?'
하지만 그날 이후,며칠이 지나도록 아빠는 다시 오지 않았다. 무아는 아빠와 비슷한 남자어른이 멀리 보일 때마다 혹시나 해서 달려가보곤 했다.
"너희들 우리 아빠 봤니?"
치누와 포포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이상해,아빠가 왜 이렇게 오래 안 오지? 히잉,이제 다시 안 오면 어떡해.'
그날 밤,무아는 아빠생각을 오래 하다 깜빡 잠이 들었다. 꿈 속에서 아기토끼 무아는 아빠 배 위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아빠가 숨을 쉴 때마다 배가 오르락 내리락 거려 마치 흔들그네를 탄 것처럼 기분이 좋은 꿈을 꾸던 그때,
"무아야!아빠야!"
어디선가 들려온 선명한 아빠의 목소리에 놀라 잠이 깬 무아는 눈을 비비며 두리번거렸다.
'어,꿈이었나? 이상하다. 진짜 아빠 목소리였어!'
그때 어디선가 또 아빠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무아야! 아빠 마음은 항상 네 곁에 있어. 사랑해! "
아무리 둘러봐도 아빠는 없는데 왜 자꾸 아빠의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지 이상했다.
"아빠가 늘 우리 무아를 보고 있어. 씩씩하게 잘 지내!"
잠이 덜 깬 건가 싶어 무아는 귀를 툭툭 털어보았다. 그 순간, 뭔지 모를 아주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길이 머리에 닿은 듯 느껴졌다. 마치 아빠의 손이 다정하게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 같았다.
'이상해. 꼭 아빠가 옆에 있는 것 같아.'
무아는 아빠와 마지막으로 헤어졌던 풀밭으로 달려가 한참동안 어둠 속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아빠...무아 보러 다시 올거지? 기다리면 꼭 다시 올거잖아,그치? '
밤하늘을 한참 올려다보던 무아는 가장 반짝이는 별에게 눈을 맞추고 조용히 물었다.
'아빠는 정말 날 사랑했을까? 사랑한다면서,왜 날 버렸을까? 별아,혹시 넌 알고 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