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추어탕

by 스카이워커

고등학교때까지 나에게 추어탕은 들어본 적도, 먹어본 적도 없는 음식이었다. 미꾸라지를 뼈째 갈아 시래기와 함께 걸쭉하게 우려낸 추어탕. 수북히 쌓인 들깨가루와 함께 잘게 갈린 뼛조각이 떠다니는 국물을 한술 들이키면 입안에서 톡톡 씹히던 그 식감. 깊게 우려낸 국물의 얼큰한 맛이 더해 추운 겨울에 몸을 녹여주던 그 맛. 고등학생 여자아이가 미꾸라지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을 이기고 온전히 추어탕을 즐기게 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할머니 덕분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걸어서 3분 거리에 살았던 할머니는 틈만 나면 우리를 불러서 추어탕을 멕이셨다. 모두가 핸드폰을 들고다니던 그 시절, 집전화로 전화가 걸려온다면 그것은 무조건 할머니였다. 학교가 끝난 오후 5시반. 거실의 적막을 깨고 먼지 눌러붙은 파란 전화기로 전화벨이 울리면 나는 항상 마음의 준비를 하고 받아야 했다. 할머니가 또 뭔가를 먹이려고 하시는구나, 할머니가 또 파지를 모으셨나보다.

"여보세요"

"유리니? 집에 추어탕 끓여놨으니 받아가라"

받아가라는 뜻은, 정말 받고만 가는게 아니라 할머니랑 같이 추어탕을 먹고, 창문 너머로 작은 빛이 들어오는 안방에서 여섯시내고향을 같이 보고, 해가 어둑어둑해져 이만하면 충분히 늦었다고 느끼실 때 까지 같이 있어줘야 한다는 뜻이었다. 고등학생의 나에겐 시간이 많았지만 할머니의 요청이 항상 기쁘지만은 않았다. 그시간에 다른걸 하고싶을 때도 있었고, 조금 귀찮을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할머니가 심심해하신다는 걸 알기에, 할머니가 우리가 보고싶으시다는걸 알기에 못난 마음을 누르고 할머니한테 찾아갔다.

"할머니~"

반층 계단을 타고 올라가 현관앞에서 할머니를 부르면 안에서 "들어와라"하는 할머니의 소리가 들렸고 잠기지 않은 현관문을 바로 열고 들어가면 2평 남짓한 거실겸 주방에서 열심히 밥을 짓고 계시는 할머니가 있었다. 갈색 바래진 교자상 위에 갓지은밥과 김이 모락모락나는 뜨거운 추어탕이 있고, 할머니와 나는 모서리를 사이로 각각 한면씩 자리잡아 추어탕을 먹었다. 다행히도 먹성 좋았던 나는 밥한그릇을 다 비우고 추어탕 한그릇을 뚝딱하고 한그릇을 더 준다고 하면 주는대로 다 먹었다. 실제로 맛이 있었지만, 할머니를 만족시켜드리고 싶은 마음에 할머니가 주는 것은 항상 더 과장해서 맛있게 먹었다.

밥을 다 먹고는 안방으로 들어가서 할머니의 이부자리 위 반달쿠션에 기대어 할머니와 같이 여섯시내고향을 보았다. 어떤 산골마을에 가서 떡을 짓고 밥을 하는 시골사람들의 모습을 집중해서 보다 보면 꽤나 재미있었다. 할머니한테 할 수 있는 몇안되는 이야깃거리를 꾸역꾸역 찾아내 학교생활과 언니 동생 이야기, 티비속 세상 이야기를 하고, 할머니가 행사장에 가서 뭔가를 사온 이야기, 놀이터에서 만난 친구 이야기를 들어줬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할머니 방의 원형 벽시계 분침이 한바퀴 반 가량 돌았을 때, 충분히 목표 시간을 채웠다는 생각이 들 때 쯤 "할머니, 저 이제 가볼게요"라는 한마디를 던졌다. 그래 가봐라, 하는 목소리에 아쉬움이 묻어나는 것을 모른채 하고 할머니 집을 나서 골목길을 가로질러 집으로 돌아올 때면 '오늘 하루도 미션을 끝냈구나, 이번주에 왔으니 다음에는 조금 텀을 두고 가도 되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

미꾸라지로 만든 탕에 미꾸라지 형체도 안보였던 이유는 그만큼 곱게 갈아 오랜 시간을 고아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진흙속에 산다는 미꾸라지의 흙내와 비린내가 나지 않았던 이유는 미꾸라지를 소금으로 문질러 몇번이고 깨끗하게 씻고, 된장, 고추장 온갖 양념을 넣어 구수한 냄새가 날 때 까지 끓여낸 덕분이었을 것이다. 손녀에게 맛있는 것을 먹이기 위해 기다린 할머니의 시간은 찰나로 흘렀겠지. 얼른 먹고 집에 가기 위해 기다린 손녀의 시간은 하염없이 느리게 갔다는 것도 모르고. 할머니가 주신 큰 사랑에 비해 내가 했던 효도는 인스턴트가 아니었을까. 할머니가 내게 줬던 사랑은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진다. 오래 고아낸 추어탕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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