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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카이워커 Mar 26. 2023

1주일 동안 하루 세끼 요리해 먹기

나를 사랑하고 소중히 대하는 법

아이패드를 사고 나서부터 내 일상에 몇 가지 변화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밀리의 서재를 구독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책까지는 아니지만, 심심풀이로 읽거나 간단한 정보를 제공하는 책이 필요하면 밀리의 서재에서 꽤 유용한 책을 찾을 수 있다. (단, 깊이 있는 인문서나 진지한 책은 검색하면 안 나올 확률이 크다.) 아무튼 다이어트의 정체기를 겪고 있던 중 아이패드가 생겼고, 구독을 시작한 밀리의 서재에서 '다이어트 식단'으로 검색했는데 눈길을 끄는 책 하나를 발견했다. 바로 최희정이라는 사람이 지은 '한 그릇 다이어트 레시피'.



2주 치 다이어트 식단을 소개하는 책으로 브로콜리, 파프리카, 어린잎 채소 등의 야채와 닭가슴살, 통밀빵, 딸기, 바나나 등의 친숙한 식재료로 이루어져 있고 조리 시간도 15분을 넘지 않는 간단하고 쉬운 식단 위주여서 부담 없이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흔히 다이어트 식단 하면 떠올리는 고구마, 닭가슴살 한 조각만 먹는 재미도 없고 맛도 없고 감동도 없는 식단이 아니라 유부 초밥, 아보카도 토스트, 오징어 샐러드, 가지 피자 등 다채롭고 맛있으면서도 배곯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양이었기에 더 도전할 만했다. 뭐 먹을지 고민 안 해도 되고, 2주 만에 살도 빼고 요리도 배우고. 엄청난 치트키 아닌가? 


그렇게 갑작스럽게 식단을 시작하게 되었고, 놀랍게도 일주일 동안 하루도 빼먹지 않고 실천했다. 주로 아침은 계란 토스트로 시작하여 점심은 닭가슴살이 들어간 주먹밥이나 볶음밥으로 든든하게 먹어주고, 저녁은 훈제 연어나 오징어 등 포인트 재료가 들어간 샐러드로 가볍게 끝내는 식단이었다. 매 끼니는 사진으로 남겨 밀리그램이라는 앱에 타임스탬프를 찍어 기록했다.


월/화/수 식단
목/금/토 식단


(중간중간 빠진 사진은 사진이 날아가거나 회사 출근을 하여 회사에서 샐러드로 때운 날이다.)


모아보니 꽤나 뿌듯하다. 나에게 1g도 타고 나지 않은 능력 중 하나가 요리인데, 나름 그래도 요리책을 보고 따라 할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식단을 100% 지키지는 못했다. 중간에 한번 이탈한 적이 있는데, 짝꿍과 서울 근교로 놀러 가는 날이었다. 그때는 점심은 도시락을 싸서 가고 저녁은 짝꿍이 찾아준 양갈비 스테이크를 먹으러 갔다. 다행히 양갈비는 각종 야채와 푸짐한 샐러드, 적당한 양의 밥과 함께 나왔어서 다이어트의 연장선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유난히 흐렸던, 미세먼지 가득 낀 날 꾸역꾸역 먹었던 도시락.

브로콜리 닭가슴살 유부초밥은 이제까지 살면서 만들었던 유부초밥 중에 가장 성공적이었는데, 사 먹는 식사보다 맛있었다.


다이어트 책에 나와있다고 해도 믿을만한 풀이 가득한 저녁 식사
심심하게만 먹던 지난날의 고행에 대한 확실한 보상. 역시 보상은 고기로

밖에서 데이트하면 돈은 돈대로 쓰고, 음식은 지나치게 많이 먹으면서, 지불한 비용에 비해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은 식사일 때도 많은데, 한 끼는 도시락으로, 한 끼는 비교적 건강하면서도 확실하게 맛있는 고기라는 수단으로 때우니 돈도 굳고 건강도 챙기고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다. 게다가 오랜만에 바깥 음식을 맛있게 먹어서 행복했다.


오늘 아침(일요일) 식단

이 글을 쓰는 오늘은 첫 주차의 마지막 날인 일요일로, 아침으로 아보카도 없는 아보카도 콥 샐러드를 먹었다. (원래 들어갔어야 할 적양파, 아보카도가 모두 썩어버려서 대충 색깔이 맞는 다른 식재료로 대체했다.)


일주일 동안 하루 세끼를 만들어먹으며 찾아온 변화가 몇 가지 있다. 첫 번 째는 역시나 살이 잘 빠진다. 운동만 할 때는 그렇게 드라마틱하게 빠지지는 않았는데, 일주일 만에 2킬로 정도 빠졌다. 하지만 뭐든 초반의 변화가 가장 또렷한 법, 다음 2주 차부터는 이렇게 드라마틱하게 빠지지 않으리란 것을 알기에 숫자는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2킬로는 약간만 굶고 화장실만 가도 빠지기도 한다... 게다가 근육이 빠졌을 수도 있다.) 그래도 줄어든 체중계의 숫자를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두 번째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게 된다. 재택근무를 시작하고 하루가 지날수록 기상 시간이 늦어졌는데, 이제 밥을 하기 위해서라도 8시에는 일어나야 한다. 아침 식단에 그다음 점심까지 준비하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그렇게 호들갑을 떨며 할 일을 하다 보면 출근 전까지 시간이 30분 정도 남는데, 이 시간에 책을 읽든가 뉴스를 보거나 하루 계획을 짤 수 있다. 일어나서 그때그때의 감정을 글로 적는 모닝 페이지라는 것도 도전해 봤다. 이렇게 하루에 한 숨 쉬어가는 시간이 생기면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볼 수 있고, 내 마음의 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여 나에게 집중할 수도 있다.


세 번째는 요리를 잘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요리를 진짜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 요리를 정말 못하는 편에 가깝다. 식재료 보관법이나 칼을 빨리 써는 법, 빠르게 요리하는 법 등을 시행착오 끝에 터득하게 된다. 일주일치 장을 보며 어디에서 어떻게 사야 저렴하게 살 수 있는지도 찾아보며 좀 더 꼼꼼해질 수 있다. 나 같은 경우 이런 면에서 지금도 아주 취약하고 살림 젬병이라고 할 수 있는데, 꾸준히 다른 책도 보고 배우다 보면 나아지지 않을까 희망해 본다.


가끔 배우 신세경의 유튜브를 보는데 온갖 수준급 베이커리와 한식/양식 장르를 가리지 않는 다양한 요리를 뚝딱 해내는 것을 보고 존경심은 물론, 자기 자신을 정말 사랑하고 아낀다는 인상을 받았었다. 남을 사랑하는 것도 노력이 필요한데 나라고 안 그럴까. 그렇지만 남과 다르게 나를 사랑하는 것은 별거 없다. 하루하루 나에게 좋은 것을 해먹이고,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좋은 잠을 주는 것과 같은 사소한 노력에서부터 나온다. 꾸준히 하다 보면 나에게 확실한 사랑을 받는 내 모습이 좀 아름다워지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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