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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카이워커 Mar 07. 2023

짝꿍과 함께하는 지옥의 인터벌 러닝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마법의 주문 외기

1월부터 헬스장을 등록하고 꾸준히 운동한 지 55일 째다. 못해도 주에 두 번은 갔으니 나름 “꾸준히”라고 할 수 있겠다.


처음엔 아무 생각 없이 사이클을 돌리고, 보이는 운동기구를 아무거나 하다가 점점 계획적으로 하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은 나의 허벅지에 달라붙은 셀룰라이트를 쏙 빼주겠다는 짝꿍의 의지가 크다. 유튜브로 각종 부위별 운동을 찾아보더니 하나하나 코칭해 주며 같이 하길 권했다. 가끔은 귀찮고 잔소리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 열정에 감동하여 점점 진심으로 임하게 되었다. 이제는 각자의 목표를 정해 서로의 몸에 맞는 운동을 찾아 따로 하기도 한다. 짝꿍이 어깨 운동을 하는 동안 나는 하체 운동을 한다. 등 운동은 같이 하고, 이따금씩 가슴 운동도 한다.


우리만의 모의고사 일정도 세웠는데, 2개월에 한 번 인바디 검사를 하는 것이다. 3월 1일은 그 첫 번째 모의고사 날이었는데 결과가 꽤나 고무적이었다. 1월에 비해 체지방이 900그람 빠지고, 근육량은 800그람 늘었다. 짝꿍도 눈에 띄는 성과를 얻었다. 노력에 대한 결과가 실제로 이렇게 눈에 보이니 뿌듯하고 보람차지 않을 수 없다. 더 열심히 하고 싶은 동기부여도 되었다.


그리하여 다음 목표는 체지방을 더 많이 감량하는 것으로 잡았고, 유산소 운동에 좀 더 집중하기로 했다. 이전까지는 근력 운동 위주로 했었고, 유산소는 마무리 운동으로 사이클 5분 타기가 끝이었다. 우리의 계획은 30분 각자 근력 운동 후 20분 러닝. 단순 러닝이 아닌 인터벌 러닝으로, 일정 간격을 두고 걷고 뛰고를 반복하는 것이다.


짝꿍이 찾아다 준 영상은 총 3단계의 구성으로 3분 걷기, 2분 빨리 뛰기, 1분 전속력으로 뛰기를 3세트 반복하여 18분 동안 뛰는 것이다. 1단계는 인클라인(경사) 5%, 속도 5로 3분, 2단계는 인클라인 6%, 속도 8로 2분, 마지막 3단계는 인클라인 6~7%, 속도 10으로 1분을 달려야 한다.


처음에는 두 다리에 2kg짜리 돌덩이를 얹고 걷는 기분이다. 아니, 속도 5가 이렇게 빨랐던가? 다리는 왜 이렇게 무겁지? 2단계로 넘어가 속도 8로 달릴 때는 숨이 가파르게 차올라, 90초가 지났을 때는 달리는 것보다 숨을 쉬는 게 더 힘들어졌다.


‘평소에 안 뛰던 사람이 이렇게 갑자기 뛰어도 되는 건가? 다음 1분은 이것보다 더 빨리 뛰어야 하는데 가능할까? 오늘은 첫날이니까 여기까지 하자고 할까?’


내 폐활량으로 채울 수 있는 산소가 100이라면 내 몸은 200의 산소를 요구하는 것 같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속도를 9로 올렸는데, 다리에 힘이 풀려 러닝 머신 밖으로 튕겨 나갈까 봐 겁이 나서 몸은 오히려 점점 앞쪽으로 붙고 있었다. 빨리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 시간 표시만 바라보며 달릴 뿐이다.


45초! 30초! 20초! 옆에서 짝꿍이 남은 시간을 외쳐준다. 1초의 시간이 천금처럼 느껴진다. 평상시에는 안 그런데 운동만 하면 시간이 늘어지는 법칙이 있나보다. 내가 한번 숨을 내쉬고 들이마시는 데 0.8초가 걸리니까 5번 숨을 내쉬면 4초 정도 지나있겠지? 자 그럼 숨소리를 세어보자. 하나, 둘, 셋, 넷, 뭐야? 2초밖에 안 지났잖아? 앞으로 18초를 더 달려야 한다고?


죽기 전에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고 하는데 죽을 것도 아니면서 지금이 딱 그 느낌이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내가 겪은 수많은 인생이 떠오른다.


‘취업준비도 이것보다는 안 힘들었다. 아니, 더 힘들었던가? 그 힘든 직장 생활도 버텼는데 이 20초를 못 버티겠어?’

‘아니야, 어쩌면 지금이 그때보다 더 힘들지도 몰라. 작년에 했던 10km 마라톤도 이것 보다는 안 힘들었어. 그냥 포기하면 편해, 못하겠다고 하자.’

‘아니야, 옆을 봐봐, 짝꿍이 달리고 있잖아? 또 의지박약인 모습 보여줄 거야?’


수많은 생각을 하다 보니 이제 10초 남았다. 조금만 더 참아보자, 9, 8, 7, 6, 마지막 5초, 오, 사, 삼, 이, 일, 누구보다 빠르게 속도를 줄인다.


3단계를 거치고 나면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데, 그다음 3분 동안은 걸으면서 숨을 골라야 한다.


신기한 것은, 3단계로 달리다가 다시 걸으면 처음에 비해 그렇게 빠르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클라인도 1%만 줄였을 뿐인데 전혀 오르막길 같지 않다. 오히려 평지를 천천히 걷는 것처럼 느껴진다. 60초 정도 걷다 보면 점점 3단계의 여파가 가라앉고 자기 폐활량만으로도 충분한 산소공급이 이루어진다. 그러면서 슬슬 다음 러닝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한다. 다시 힘차게 뛸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기는데, 돌아온 러닝은 여전히 힘들다. 종아리에 쥐가 날 것 같고 근육이 당겨 온다. 30초 정도 남았을 무렵은 공포다. 다가오는 3단계 러닝에 대한 두려움이 밀려온다. ‘아까도 뛰었는데 또 뛸 수 있을까? 이미 남은 체력을 다 소진했는데 다치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동안에도 속절없이 시간은 흐른다.


3단계 러닝은 20초 남았을 때가 가장 힘들다. 1초가 1분처럼 느껴진다. 다시 한번 5초씩 4번만 참아보자고 다짐하지만 내 머릿속 초시계는 물리적 시간보다 훨씬 빨라서 20초를 세어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때쯤 나는 생각하기를 멈추고 그냥 이 악물고 버티는 것이다. 그렇게 버티다 보면 어느덧 마지막 단계가 끝나고 누구보다 빠르게 속도를 줄여 다시 회복에 들어갈 수 있다.


마지막 세트의 1단계는 그새 단련된 내 몸에게는 이제 쉬는 시간이다. 걸으면서 숨도 고르고, 이 러닝을 반드시 끝내겠다는 결의를 다진다. 2단계, 여전히 힘들고 다음 단계가 무섭지만, 일단 달린다. 마지막 3단계, 이 또한 지나가리라. 살면서 수많은 시련을 만났고 항상 지나갔으니, 이 고통의 1분도 지나가리라. 40초만 버티자, 20초만 버티자, 10초만 버티자. 오, 사, 삼, 이, 일, 나는 이제 자유요.


지옥의 인터벌 러닝이 끝나면 오늘의 미션을 완료했다는 기쁨과 해방감이 밀려온다. 운동할 때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내가 제일 힘든 사람인데, 그 힘든 것을 성공한 나는 러닝 머신 밖에서도 뭐든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운동이 끝나고 짝꿍이 말하길 달리는 동안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고 한다. 역시 사람은 다 똑같구나. 그 짧은 순간에 나는 인생을 되돌아보았고, 앞으로의 인생을 다지고, 용기를 채웠다. 그래서 사람들이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다고 하나 보다. 운동으로 느껴지는 짧지만 확실한 성취 경험은 살아가는 데 있어서 큰 용기가 된다. 내 몸의 건강은 마음의 건강이 되어 좀 더 진취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인터벌을 통해 깨달은 몇 가지가 있다.


1. 일단 한 세트를 달리고 나면 다음 1단계는 처음보다 덜 힘들다.

2. 마지막 20초가 가장 힘들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있지만, 나머지 반은 정말 인고의 시간과 피나는 노력 끝에 완성된다.

3. 옆에서 같이 달려주는 사람이 있으면 더 힘이 난다. 누군가 그랬다. 나를 믿어주는 확실한 한 사람만 있으면 인생이 바뀔 거라고. (물론 없다고 못 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 나는 혼자서도 인터벌 러닝을 한다.

4. 결국, 언젠간 모든 것은 지나간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정말 어디서든 통하는 주문이다.


인터벌 러닝은 2차 모의고사 때까지 계속할 생각이다. 그다음 단계는 아직 생각하지 않았지만 1달 후 좀 더 건강해져 있을 나를 위해 오늘도 지옥불로 스스로 들어가며 주문을 되뇐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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