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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음날 Mar 17. 2023

고아의 자립지원금 500만 원

콩나물과 아기 사자

고아

부모를 잃은 아이를 일컫는 말.

우리끼리는 '고아새끼' 라거나 '오펀'이라고 부르곤 했다.


인간이 태어난 직후 가장 큰 충격을 받는 두가지는 아래와 같다.

병으로 병사하는 불행을 겪는 일

그리고 어떠한 이유에서든 부모와 일찍 헤어지는 일이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부모가 생을 마감하는 것은 어쩌면 행복한 축?에 속하는 일 일지 모른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의 마음에는 '지옥'이 생겨난다.


나는 1989년 가을 입소한 '영훈'이라는 친구의 비명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엄마 아빠 다 죽여버릴 거야.'

'내 손으로 찢어서 죽여버릴 거야.'

'다 죽일 거야.'

'어어어엉'



수녀님이 발목을 잡아 끌어내려다가 발길질에 맞아 입술이 터지고 말았다.

결국 어른을 포함한 여럿이 달려들어 침대에서 끄집어내어 똥오줌을 닦아내고 목욕을 시켰다.

흠씬 두들겨 맞고 식탁에 앉아 어깨를 들썩이며 죽을 먹던 영훈이는 지금 뭘 하고 사는지 솔직히 궁금하지도 않다.

그 정도의 사연을 가진 친구들이 우리 학년에 남자아이들만 200명이 넘었다.

여아들은 100여 명이었고 학교 전체에는 당시에 알기로는 1,800명이 넘었다.

형제가 고아원에 나란히 온 경우도 많았다.


사실 부모들의 딱한 사정을 돌파하고  어찌어찌 중도에 아이를 찾아가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고아들은 가끔 싸우다 죽고, 맞아서 죽고, 자살하거나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다만 기록되지 않았고 외부로 유출되는 일은 단언컨데 없었다.

중국이나 인도 아프리카 어딘가를 욕할 것이 없다.

불과 40년 전 우리 사회의 모습이 그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친구가 그냥 한대 툭 쳤는데 죽은 경우도 있고 수녀님과의 불화로 홧김에 목을 맨 친구도 있었다.

중간에 탈출해서 중국집 배달 오토바이를 타다가 사고가 나는 경우가 가장 흔했다.

반신불수가 되는 경우는 거의 보질 못했고 대부분 사망사고였다.


나를 괴롭히던 한 친구는 이른 나이에 조폭에 가입해서 교도소를 들락거렸다.

나는 언젠가 그 친구의 등에 연필을 꽂아준 적이 있다.

자세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지속적으로 나를 괴롭혀서 일 것이다.

그래도 목을 안 찌른걸 그 친구는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 것 같다.

물론 그 후에 그 친구는 나를 건드리지 않았다.

하지만 질 나쁜 다른 녀석들을 모두다 물리칠순 없었다.

제일 싸움을 잘하는 몇몇을 제외하고는 누구나 가해자이자 피해자 였다. 


고아원 안에서의 삶은 현실의 삶과는 괴리가 아주 크다.

당시에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30년이 지나고 나서야 어렴풋이 이해되는 일들이 있곤 하다.

수녀와 학생의 성 스캔들, 교직원들의 추행과 폭력

하물며 88 올림픽 시절에는 거리의 고아나 부랑자를 잡아들이라고 경찰과 형사마다 실적을 준 적도 있다. 그 실적을 채우기 위해 멀쩡한 아이들을 잡아다가 고아원에 넣고 집에 보내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우린 이런 걸 두고 '인신매매'라고 부른다.

수녀와 수녀의 동생인 형사가 이를 공모해 형사가 승진을 하고 실적을 채웠다.

그로 인해 망가진 한 아이와 가족들의 인생은 대체 어디서 보상을 받아야 할까?


이러한 일들은 그저 무가치하게 다뤄지고 단 한 칸의 지면도 할애받지 못한다.

피해자가 고아니까.


고아원에서의 삶은 가히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선배와 선생들에게 매일 두드려 맞고 친구라는 새끼들의 괴롭힘과 갈등 처절한 싸움이 존재했다.

물론 중재자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게 19년을 꼬박 채운 아이도 나처럼 10년을 채운아이도 19살이 되면 '무조건' 고아원을 떠나야 한다.


요즘은 500만 원 자립지원금이 나오지만 '라떼'는 지원금이란 제도 자체가 없었다.

선택은 단 한 가지였다.

'기숙사가 있는 기업에 취업할 것'

방법이란것이 전무했다.

요즘은 기숙사가 없거나 일자리의 다양성으로 인해 그나마라도 선택의 폭이 생긴 것이다.

이런걸 다행이라고 이야기할 사람은 부디 없어야 한다.


가방 2개와 통장에 든 500만 원을 들고 고아원의 문 앞을 나서는 고아의 마음이 어떨지 상상이나 해보았는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고 정처도 없이 보증금 500만 원짜리 집이 있는 곳이 목적지요 제2의 고향이 될 지역인 것이다. 몇 년 전에는자립한 고아의 그 500만 원을 주변인이 사기를 쳐 도망간 일이 있었다.

그 아이는 삶의 의지를 잃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거지 똥구멍에 콩나물을 진짜 빼먹는 인간이 있었다.'


그건 500만 원 사기 사건이 아니라 살인 사건이다.

참혹하고 참담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행복은 엇비슷한 모습으로 행복하지만 가난과 불행은 너무 다채롭게 가난하고, 각양각색 각자만의 이유로 불행하다.

어찌 보면 사지가 멀쩡하다는 이유로 고아들은 사회로 분리배출되는 신세가 된다.

그 시기를 잘 이겨내는 고아만이 사람으로 살아갈 자격을 얻는다.

라이언킹의 한 장면이 떠오르지 않는가?

절벽아래로 굴러 떨어진 고아를 우리는 만화 속의 아기 사자처럼 대하곤 한다.


'죽든지 말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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