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애국자! 지만 국가유공자는 아니니까..
말에는 힘이 있다.
이것은 참말로 진실이다.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 나는 마흔 전에 모든 출산을 마칠 거야! ”
이제 막 결혼 한 30대 중반의 새댁의 실로 야심 찬 포부였다.
요즘 같은 때에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나이에 결혼을 했지만, 곧 노산의 반열에 오를 터.
결혼한 지 6개월 만에 첫 아이를 임신했다. 첫 아이가 26개월이 되던 해에 둘째 아이를 출산했다. 그리고 그 둘째 아이가 21개월이 되던 해에 셋째 아이를 출산했다.
우리 부부의 자녀계획은 딱 2명까지였다. 그런 우리에게 ‘교통사고’ 같이 셋째가 생겨버렸다.
내가 공공연하게 말한 대로 꽉 찬 마흔이 되기 몇 달 전, 내 인생에 출산에 종지부를 찍었다.
아이 셋, 그것도 남자아이만 셋!!!
2023년 기준 대한민국 평균 출산율 0.73명.
먼 나라 사는 외국 교수마저 머리를 부여잡고, “한국은 제대로 망했다!!” 며 대놓고 걱정하는 저출산 국가에 사는 나는 어쩌다 애국자가 되었다.
첫아이를 임신하고 나에게 주어진 출산휴가는 쉼표 같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구직을 하고 이직을 하고 ‘허겁 허겁’ 살아온 내 삶에 쉼표 한점.
전형적인 코리안 키즈인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를 들어가 주어진 월급을 받는 삶이 가장 노멀 한 삶이었다.
한 번의 이직으로 월급이 2배 점핑했고, 정년이 보장되며, 정해진 육아휴직을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쓸 수 있는 회사로 들어갔다. 그렇게 안온한 삶을 위해 경주마처럼 냅다 달려왔다.
누군가가 반듯이 닦아 놓은 6차선 아스팔트 길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걸어갔고, 자칭 타칭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평범한 대한 청년이었다.
바쁘디 바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직장인이 그러하듯, 나 또한 내 눈앞에 있는 과제들을 마구 해치우고 쓰러지듯 잠을 자며 하루를 마감했다.
하루를 돌아볼 여유도 없이 허덕이며 그저 ‘버티는 삶’을 살아온 나에게 육아휴직이라는 ‘브레이크 타임’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휴식의 시간을 동력 삼아 한참 동안 멈춰있던 내 머릿속에 생각회로가 갑자기 작동하기 시작했다.
마치 영화 메트릭스에서 태어나자마자 인공 자궁 안에 갇혀 정해진 프로그램 안에서 살던 ‘네오’가 갑자기 각성한 느낌이랄까?
나는 난생처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10대도, 20대도 아니고, 30대 중반에 그것도 만삭에 배불뚝이가 된 바로 그 시점에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확장되었고 마침내 “ 내가 좋아하는 것은? ”, “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지?”라는 생각에 까지 다다르게 되었다.
뒤늦은 진로고민에 밤잠을 설치며 본격적인 ‘딴짓의 서막’이 열렸다.
첫째를 임신했을 때 부서장에게 한 아이당 2년씩 육아휴직을 쓸 것이며, 둘째까지 낳고 복직하겠노라 당당하게 선언했다.
그리고 무급휴직일 때를 대비하여 마통(마이너스 통장)을 대출한도까지 야무지게 끌어당겨 목 끝까지 받고 마음 편하게 휴직에 들어갔다.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 첫째가 어느덧 5살이 되었다. 주택담보대출과 연결되어 있는 마통은 익사 직전의 사람처럼 꼬륵 꼬르륵 소리를 내며 겨우 연명하는 수준이 되었다.
나라에서 아이를 낳으면 꽂아주는 각종 지원금도 마통에 들어오면 스펀지 물 빨아들이듯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엄마 빨갛고 질긴 고기 사줘!
몸무게 14kg 밖에 되지 않는 첫째 아드님은 소고기 200g을 숨도 쉬지 않고 먹어치운다.
먹보 둘째 아드님은 매일마다 먹고 싶은 과일이 다르다.
분유 드시는 셋째 아드님은 곧 이유식을 만들어 먹여야 한다.
그러니까 나는 말이다. 숨만 쉬어도 이렇게 돈이 나가는지 미처 몰랐다.
그저 건강한 밥상을 차려주고픈 엄마의 평범한 바람이 이토록 값비쌀 줄이야!
이제는 배부른 진로 고민에 생존 고민을 더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이렇게 돈에 쫓기듯 아무 일이나 할 수는 없는 노릇. 욕망의 K아줌마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 보겠노라 굳게 다짐했다.
바야흐로 부업인구 57만 5천 명의 시대를 살고 있다.
‘본업만으로는 못 산다.’는 아우성이 여기저기 새어 나오는 요즘 ‘N잡’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어쩌다 애셋을 낳아 애국자가 되었지만.. 평생연금과 자녀혜택이 보장된 ‘국가 유공자’는 아니기에 살 방도를 필사적으로 찾아야 했다.
추진력 하나는 일론 머스크 급인 나는 “비록 스포츠카를 로켓에 매달아 우주로 쏴 보낼 수는 없지만 금쪽같은 우리 아들내미들 소고기는 마음껏 먹게 해 주리라!” 결심했다.
나의 첫 ‘딴짓’은 2020년 첫아이를 낳고 3개월이 되었을 때 즈음, 동생을 꼬셔 일 하나를 저지르며 시작된다.
셀러 시대에 한 지평을 연 심사임당의 영상을 필두로 유튜브 알고리즘의 흐름에 따라 방대한 부업에 세계로 빠져들었다.
지금부터 내가 연재할 ‘방구석 딴짓 X파일’은 지난 4년간 시도했던 딴짓과 삽질의 여정,
그리고 앞으로 시도해 볼 딴짓에 대한 기록을 공유하고자 한다.
기대해 봐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