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마흔에 자기탐구 1.
나는 아주 어렸을때 부터 바이올린을 배웠다.
엄마는 딸 셋을 낳으시고 악기를 하나씩 다루게 하겠다는 로망이 있으셨단다.
그 바람대로 나는 바이올린, 둘째는 피아노, 셋째는 플룻을 배웠다.
딸 셋중에 내가 제일 꾸준히 악기를 배웠으며 꽤 비싼 가격을 주고 개인렛슨도 받았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관현악단에 들어가 활동도 했고 작은 콩쿨에 참가해 소소한 입상 이력도 남겼다.
중3이 되어 아빠가 물었다.
아빠: 음악 선생님이 그러는데
너 바이올린에 꽤 재능이 있다는데
계속 해볼 생각이 있나?
나는 머뭇거리며 생각했다. 관성적으로 배웠던 바이올린을 그만두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내가 재능이 있나? 그건 아닌거 같은데? 음.. 뭐라고 말해야 하지...
나: 응 나 계속 해보고 싶어. 예고 갈래!
그러자 아빠가 대답했다.
아빠 : 그럼 아빠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니 뒷바라지를 할테니까
너도 피땀나게 최선을 다해야 된다!
알았나?
어... 어라..나는 그렇게까지 절실하지는 않은데? 나는 5분 만에 예고가겠다는 마음을 철회했다.
그리고 일반고로 진학했다.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 2학년 때즘에 아빠가 또 나에게 물었다.
아빠: 넌 뭐가 되고 싶노?
나: 나.. 나는 건축가?
아빠: 왜 건축가 되고 싶은데?
나: 어 .. 그냥 건축가가 적성에 맞다고 어떤 테스트에서 그러던데?
아빠: ....... 너 건축가 어떤일을 하는지 알고있나?
나: 멋진 건물을 짓는 일을 하지!
아빠: 너 여자 건축가들이 어떤 고충을 겪는지는 알고는 있고?
나: ....
아빠: ....
그렇게 건축가가 되고자 하는 얕은 마음도 고이 접었다.
그렇게 고3이 되었고 수능날이 되었다. 1교시를 마치고 가방을 싸서 집에 가려다..재수할 자신이 없어 꾸역꾸역 수능을 치르고 집에 왔다.
도착하자마자 EBS채널을 틀어 문제풀이를 듣다 말고 방문을 걸어 잠그고 울었다.
부모님은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의심의 여지없이 내 수능은 캐망했다.
내 수능성적은 어딜 골라 들어갈 수준이 아니었고, 성적에 맞춰 꾸역꾸역 대학을 갔다.
공부를 어느정도 했던 나는 아빠에게 커다란 실망을 남긴채 어느 지방에 어느 학과로 입학을 했다.
그리고 4년을 신나게 놀았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말대로 무스펙 지방대 출신인 나는 경기도 평택 어느 변두리에 취직을 했고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으며 삶을 연명해 나갔다.
그때 처음으로 비참함이라는 감정을 경험했다.
남들 다하는 토익 공부 한적 없었고 취직에 대해서 생각해본적이 1도 없었다. 영원히 희희낙낙할꺼 같았던 내인생을 오롯이 책임져야할 순간이 다가온것이었다.
친구를 만나러 나가기 부담스러울 정도의 월급을 받던 나는 벽을 보며 울부짖는 날들이 종종 있었다.
형편 뻔한 부모님께 손을 벌리고 싶진 않았다.
그렇게 이를 갈며 직장생활을 하면서 자격증을 취득하는 등 스펙을 쌓았고 직장을 들어간지 딱 2년만에 퇴사를 했다.
이력서에 '관련 분야 경력 2년'이라는 한줄을 남기기 위해
나는 경기도 평택 방한구석에서 그렇게 울었나보다.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