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상을 꿈꾸는 사람이다.
나를 움직이는 동력은 비록 나의 편협할지도 모르는 시선이지만
그런 나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삐뚤어지고 교정되지 않은 세상이 보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제는 그것보다 더 많은 것들이 나를 움직이게 만든다.
하지만 여전히 나의 동력임에는 틀림없다.
나는
세상의 불협화음을, 세상의 고통을 해결하고 싶다.
나는 그런 세상의 부조리를
예술로 더 많은 사람에게 현시하고 싶고,
공학으로 해결하고 싶다.
다만,
"현시하고 싶다"라는 말과 "해결하고 싶다"라는 말은
자칫 내가 "계몽"을 이끄는 사람처럼 들릴 수 있다.
"위대함은 강함에 있지 않다, 힘을 바르게 쓰는 데 있다 (소설, Wonder)"라는 말이 있듯이
나는 그러한 행위의 정당성을 위하여 더욱이 올곧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세상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직시하고,
필요하다면 어두운 면에 대하여 소리 낼 줄 알아야 한다.
또한, 나라는 사람은 어떠한지 직시하고,
나의 잘못된 면은 부끄럽더라도 인정하고 고쳐나가며,
나를 나로서 있게 해준 이들을 위해 언제나 낮은 자세가 되어야 한다.
여기에 더하여
키플링의 "If"라는 시에서 말하는 것처럼
"어른다운 어른"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어서야
또는 최소한 그러한 모습의 실천이 충분히 쌓여야만
나는 비로소 세상의 부조리를 현시하고,
해결을 주창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이상을 꿈꾸는 사람이지만
이상을 위하여 현실적 타협을 감내할 생각이 있다.
한때 세상의 부조리를 해결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으로 창업을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그 생각이 많이 다르고,
창업에 대한 회의적인 생각도 있다.
창업은 좋게 포장하면 "세상을 바꾸는 일"이지만
좋지 않게 말하면, "이상을 적절히 포장하여 파는 일"이다.
조금이라도 창업에 관심이 있다면 알겠지만
창업을 위해 피칭을 하거나, 마케팅을 하는 것을 본다면
"사실 그러하지 않지만 그러한 것처럼 보이게. 하지만 거짓말은 아닌" 상태로
잘 브랜딩 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브랜딩이 필요한 이유는
"고객에게 더 잘 다가가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것은
약간 편협하게 바라보자면 "브랜딩이 없으면 고객에게 매력적이지 않게 보인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물론, 수많은 브랜드와 정보가 모든 순간에 쏟아져 나오는 세상에 브랜딩 하나 못하면 말이 되냐라는 말에는 동의한다)
당연하게도
세상의 100%의 창업이 이렇게 "잘 포장된" 브랜딩이라고만 말하는 것은 아니다.
분명 세상에 정말 큰 임팩트를 주는 창업을 하는 이들도 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시점에 나는
창업에 대한 회의적 시선이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가장 효과적으로 "이상적인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때문에 나는 창업을 여전히 고려하고 있다.
아직까지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좋은 길을 찾지 못하였다.
학계로 나아가 교수가 되는 것 또한 세상에 좋은 기여를 할 수 있다.
하지만 학문이라는 것은 "이상을 좇는 나머지, 현실과 분리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놓이게 된다.
"지식의 끝을 밀어내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현실과의 "타협"이란 것은 있을 수 없다.
학계의 사람들이 세상에 좋은 기여를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기여는 눈에 보이는 "즉각적 기여(10년 내외의)"를 말하는 것이다.
정치인 또한 그러한 관점에서 좋은 기여를 하는 역할이 될 수 있다.
세상의 변화에 대응하는 속도는 '기업, 대학, 정부' 순이라고 하던가?
정치라는 시스템은 항상 노이즈가 많고, 세상의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기 힘들다.
그 많은 노이즈와 유혹을 버틸 용의가 (적어도 아직까지는) 없다.
또한
나는 "사회적 역할"에 나를 국한시킬 생각이 없다.
친구들과 대화하며 가끔 느끼지만,
우리의 꿈은 많은 경우에 "직업"이 된다.
창업을 하겠다, 교수가 되겠다, 회사원이 되겠다.
"무엇을 하겠다"가 아니라 직업이다.
나는 우리가 직업이 아니라
"무엇을 하겠다"를 인생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위해 직업을 가질 수 있다.
즉, 순서는 반대가 되어야 한다.
"나는 자상한 아버지가 되기 위해, 자상한 남편이 되기 위해"
안정적인 회사원이 되겠다.
"나는 세상의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을 없애기 위해"
의사가 되겠다.
이렇게 되면 직업은 언제나 바뀔 수 있는 것이 된다.
목표를 위한 수단이 되는 거니까.
나 또한 그러하다.
나는 "세상의 고통과 부조리를 없애고 싶은 사람"이며,
"동시에 자상한 남편, 아버지, 아들, 친구"가 되고 싶은 사람이다.
이것을 만족하기 위하여 지금까지 내가 생각하는 최선의 방법은 "창업가"가 되는 것이며,
나의 상황에서 가장 빠르게 "창업을 시도하고 성공 또는 실패를 경험하여",
"자상한 남편, 아버지, 아들, 친구"가 되기 위해 사회적, 재정적, 심리적 안정을 구현해야 한다.
동시에 나는 세상의 부조리를 현시하는 사람이 되고자
예술가가 될 수도, 작가가 될 수도 있다.
나는 나를 공학자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나를 공학자라고만 정의할 생각이 없다.
나는 "세상의 고통과 부조리를 없애고 싶은 사람"이며,
"동시에 자상한 남편, 아버지, 아들, 친구"가 되고 싶은 사람이다.
나에게는 시간과 기회가 많이 남지 않았다.
때문에 나는 그 효율과 성공을 높이기 위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나의 "큰" 행동들에는 항상 이유가 있어야 한다.
미래를 결정짓는 큰 행동에 이유가 없다면 지속 불가능하고, 큰 탄력을 받을 수 없다.
이것은 내가 되고 싶은 모습에 도달하기 위한 효율의 관점에서도 중요하지만
세상에 올바른 기여를 위하여 필요하다.
세상에 제대로 된 기여를 하기 위해선
"어떤 기여를 하는가"를 정확히 잡아야 한다.
아직 내가 세상에 정확히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는
제대로 생각하지 못하였다.
이상을 꿈꾸는 사람으로서
"창업"이 직접적인 이상의 실현의 수단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확히는
"창업을 통해 만든 무언가로부터 나오는 부수적인 것들을 이용하여" 이상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부수적인 것들에는
창업 아이템이 가져다주는 큰 부를 통해 회사의 이름으로 무언가를 할 수도 있고,
(일종의 ESG 경영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
나 자신 또는 회사의 사회적 명성을 통해 무언가를 할 수도 있다.
정말 가치 있는 하나의 기여를 위해 어떠한 창업을 해야 하고,
이후 어떻게 창업의 산유물을 활용할지에 대한 숙고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