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창의력이란

근본적 원리를 바탕으로 반복적인 고뇌를 통한 좋은 창의력

by Joon Lee

흔히 어린아이들을 보고 호기심과 창의력이 많다고 한다.


아이들의 행동과 생각은 때론 엉뚱하지만,

종종 본질을 꿰뚫으며 정곡을 찌른다.


우리는 이들의 사고방식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


사회에 찌든 생각은

막힌 모세혈관과 같다.

세상에 존재하는 가치 있는 생각들은 우리 몸의 '모세혈관'과 같다.


진실은 어디에나 퍼져 있지만,

매우 미세하고 얇기 때문에 이를 포착하여 올바른 생각으로 연결하는 것은 어렵다.


이 미세한 길들은 '근본 원리'에 기반하고 있어 수만 갈래로 뻗어 나갈 수 있지만,

동시에 원리에 위배되지 않아야 하기에 '맞는 길'은 여러개일 수 있으며, '아닌 길'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어른들은 이 모든 길에 도달하지 못한다.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가진 '사회 친화적 사고', 즉 '사고의 관성' 때문이다.


반면, 아이들은 사회의 때가 묻지 않은 '직관적 진실'만을 바라본다.


하지만 아이들은

순수한 인간적 사회적, 방법론적

진실만을 알고 있다.

즉, 사회의 때가 껴있지 않다.


어른들은 사회적 타협점을 찾고 꼼수를 부린다.

'원래 그렇다'라는 말 한마디로 복잡한 고민을 덮어버린다.


이런 타협과 익숙함은 모세혈관을 막아버리는 혈전과 같아서,

생각이 더 이상 뻗어 나가지 못하게 만든다.


반면에 아이들의 시선이 순수한 이유는

사회적 관성이 닿지 못하는 곳까지 생각이 번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이들에게서 '창의력'을 발견하는 순간은,

바로 어른들이 막혀서 갈 수 없었던 그 길을 아이들이 뚫고 지나갈 때다.


때문에 우린 좋은 창의력을 갖기 위한 열쇠를 아이들로부터 배울 수 있다.


때문에 순수한 원리와

인간적인 흐름(역사)에서부터

다시 생각해야 한다.

좋은 창의력을 갖기 위해서는

'근본 원리'와 그 분야가 걸어온 '맥락(역사)'이라는 두 가지 축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것이 창의력의 시발점이다.


분야의 맥락(역사)을 배운다는 것은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타는 것과 같다.


단순히 과거를 외우는 것이 아니라,


왜 이런 고민이 가치 있었는지,

왜 이런 생각이 등장했는지,

왜 반대되는 생각은 도태되었는지에 대한


일종의 '생각의 계보'를 이해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건너뛰고 깊은 고민의 단계로 빠르게 진입할 수 있다.


역사를 배우지만

"왜?"라는 질문은 잊지 말아야 한다.

당연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지식은 계속하여 "개념화" 된다.

개념화는 좋은 도구다.


인류가 수많은 지식 정보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저장하고, 처리하고, 그리고 전파하기 위해 발명된 좋은 논리적 도구다.


개념화된 내용은 어지러운 정보를 처리하는 것에 힘 쏟지 않아도 되게 한다.

하지만 '개념화'는 많은 디테일을 날려버린다.

굴곡진 유리에 비친 고양이. 고양이는 맞지만 자세한 털은 보이지 않는다. 출처: pinterest

때문에 마치 막혀버린 모세혈관과 같은 효과를 내버린다.

더 넓은 사고를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알고자 하는 분야를 충분히 탐구하면,

"왜?"그러하지 않은가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런 질문의 대부분은 역사를 공부함으로써 이유를 찾을 수 있지만

가끔.. 아주 가끔

역사도 대답하지 못하는 질문이 나온다.


기존의 맥락(역사)으로는 설명되지 않지만,

근본 원리에는 완벽하게 부합하는 생각.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좋은 창의력'이다.


좋은 창의력은 강력하다.

반박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근본 원리에 위배되지 않기에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없다.


이 생각에 반기를 드는 사람은


아직 그 생각에 도달하지 못했거나,

단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람뿐이다.


결국 이러한 사람들도 진실 앞에서는 설득될 수밖에 없다.


물론,

힘의 논리가 모든 논리를 짓누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진실은 강력하다.


좋은 창의력은 반복에서 나온다.

앞서 좋은 창의력은 강력하다고 했지만

이것은 정말 순수하게 좋은 창의력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좋은 창의력은 단번에 나올 수 없다.


내가 좋은 창의력이라 생각한 것에 반박하는 사람은 고마운 사람이다.

내 생각에 부족한 부분을 짚어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생각과 생각의 반박을 이어나가야 한다.


생각은 무르익어야 한다.

좋은 생각은 갓 나온 아이디어가 아니다.

논리의 빈틈을 찾아내고, 수정을 거듭해야 한다.

그와 동시에 순수한 원리를 만족해야 한다.


토론과 고뇌를 통해 나의 생각은 비로소 '좋은 창의력'이 된다.


좋은 창의력을 위한

'창조적 근육'이 필요하다.

좋은 생각을 만들어내기 전에

돌고 돌아 결국 지금까지 어때왔으며 지금은 어떠하다는 '역사'를 알아야 한다 하였다.


하지만 지금 세상은 어떠하고, 앞으로 어떠할 것인지도 알아야 한다.

안도 다다오의 '창조적 근육'이라는 단어를 빌려오겠다.


창조적 근육은 과거보단 현재와 미래를 말하는 단어에 가깝다.

다른 이들의 생각을 보고, 느끼고, 배워야 한다.


결국

다시 말하지만

좋은 생각은 반복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모든 일은 창의력 싸움이다.

정책도, 외교도, 육아도, 교육도, 연구도 모두 창의력이 필요하다.


좋은 정책과 외교도

그 분야의 기본 원리를 이해하고 역사를 바탕으로

좋은 정책을 만들 수 있다.


육아 또한

아이의 기본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다른 부모는 어떻게 해왔고, 또 나의 아이는 어떤지 이해함으로

좋은 육아를 할 수 있다.


교육도 연구도

결국 그 분야의 기본 원리를 바탕하여야하고

다른 연구와 교육은 어떻게 되어왔는지,

또 나의 분야와 내가 풀고자 하는 문제,

내가 가르치는 대상은 어떠한지 이해함으로

좋은 교육과 연구를 할 수 있다.


나의 창의력을 믿어야 한다.

좋은 창의력을 만드는 것에 집중하지만

결국 나의 창의력을 믿어야 한다.


나의 창의력에 비판을 쏟아붓는 사람은 많다.

도달해 보지 못하는 생각은 검토되지 않은 생각이기도 하기에

자칫 틀린 생각이라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는 비판론자일 수도 있다)


이러한 반응은 당연하다.

그렇기에 나의 창의력을 믿어야 한다.


다시


동료와 토론을 하고,

창조적 근육을 기르며,

순수한 원리에 배반되는지 검토하고,


역사의 흐름을 고려한다.


이 과정을 통하여

나의 창의력에 대한 믿음을 굳건히 지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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