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늙어간다... 늙어간다 - '기나긴 이별'

by Joon Lee


줄거리는 따로 언급하지 않겠다.

줄거리가 없다면 없고.. 복잡하다면 복잡한 책이다.


책이 전반적으로 주는 인상은 "죽어버린 사회와 지쳐버린 주인공"이다.

내가 쓰는 이 감상평도 그 감상에 따라 쓰고 싶다.


비열한 사회와 지쳐버린 사법 탐정

기나긴 이별은 580페이지에 달하는 장편 소설이다.

챈들러의 '말로' 시리즈의 '사실상' 마지막 작품이라고 평가받는다.

('사실상'이라고 언급한 것은 이후에 나온 마지막 한 권은 독자들 사이에서 제대로 된 말로 시리즈라고 평가되지 않는 듯하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극적인 기승전결도 뭐하나 급격하게 진행되는 전개도 없다.



말로는 사법 탐정이다.

그리고 그는 마치 삶이 덧없음으로 느끼것 마냥

모든 일에 그리 슬프지도, 그리 흥분하지도 않은 채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는 마치 지친 사람 같다.



그러한 그의 시각이

이 소설의 매력이라 느껴진다.



이야기의 시작은

앞서 이야기한 메마른 시선의 말로 앞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남자, '테리 레녹스'에 의해 시작된다.



그 남자는 평소에 냉담적인

말로의 시선을 끌어낸다.



그의 배경도 모르고 오래 만난 것도 아니지만

이끌리듯 그렇게 그와 '김렛'을 마시는 친구 사이가 된다.



이야기는 그런 '레녹스'의

아내가 죽으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갑작스러운 '테리 레녹스'의 등장부터 퇴장까지

소설은 약 50페이지 가량을 사용한다.



그리고 장장 500페이지를

말로는 알 수 없는 이유로 그와 관련있는 사건인듯 아닌듯한 사건들에 스스로 뛰어들며 '레녹스'에 대해 고집스럽게 집착한다.

매우 천천히, 매우 디테일한 묘사와 함께 메마른 시선의 말로는 어디 가고

집요하게 사건을 파고든다.


나는 늙어간다... 늙어간다.

"나는 늙어간다... 늙어간다"는

J. Alfred Prufrock의 연가의 한 구절이자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또 다른 소설가 '로저 웨이드'가 사용한 구절이다.


이 소설은 사회 비판적 소설이기도 하다.

거대한 권력과 그에 맞서 싸우는 사설탐정 말로의 이야기이기가 담겨있다.


'테리 레녹스'와 그를 둘러싼 비밀과 또 그와 관련 없지만 말로가 풀어나가는 사건들

이 모든 것에는 부패한 경찰과, 부패한 지배층이 있다.


연가 속에서 "나는 늙어간다... 늙어간다"라는 구절은

중대한 문제 앞에 직면하였지만 사소한 일에 매달리는 사람들의 좌절, 슬픔, 고독을 표현한 구절이다.


(작품 속 어떠한) 문제를 알고 있지만 발설하지 못하는 '로저 웨이드'의 마음을 대변하는 구절이라 생각한다.


작품 속 몇몇 등장인물은 사건이 조작되었음을 또는 사건이 의도적으로 은폐되었음을 앎에도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들은 그것이 당연하고 옳은 것이라고도 생각하는 듯해 보인다.


그럼에도 그러한 사실을 제4의 벽에서 바라보는 독자의 마음은

'로저 웨이드'에 가까울 것이다.


오필리아의 운향 꽃

운향 꽃의 꽃말은 "슬픔과 회개"라 한다.

정확히는 햄릿 4막 5장에서 운향 꽃은 그런 의미로 쓰인다.


소설에서 이 꽃은 사건을 은폐하는 경찰 쪽에서 사용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슬프고 회개해야 하는 것은 그들인데 말이다.


말로는 부패한 인간을 혐오한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 내내 그리고 심지어 절친 '테리 레녹스'가 준 돈마저도

피 묻은 돈이라 판단되면 한 푼 쓰지 않는다.


대신에 그는 스스로의 신념을 지킨다.

슬퍼할 줄 알고, 자신의 책임을 느낄 줄 안다.


사실 그냥 무시하고 지나갈 수 있던 친구의 죽음을

그는 500페이지가 넘는 시간 동안

목숨을 내놓으면서 집요하게 파고든다.


기나긴 이별

사회를 비판하고 부조리를 고발하고...

그런 내용이 이면에 담겨있다 하더라도

결국 소설의 끝은 '기나긴 이별'을 이야기한다.


긴 시간을 들여

말로 스스로를 고통 속에 (여러 사건 속에) 몸 던진 것은

아마도 '테리 레녹스'와의 작별을 위한

기나긴 준비 기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책을 보거나 또는 보실 분들은 알게 되겠지만


아마도

말로는 첫 장부터 50페이지까지의

'테리 레녹스'의 죽음이 그리고 슬픔이 너무나도 컸기에

한 번에 터트리기 보다.


잔잔하지만 길게, 진지하게 친구의 죽음을 받아들인다.

추모하고, 작별한다.


아래는 재밌게 본 페이지들 (스포가 있을 수 있음)

말로의 물밀 듯이 터져 나오는 시대에 대한 비판.


싸움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는 없다.

하지만 너무나도 자세하다.

묘사에 감탄.

진짜 갑자기 관능적이고 육감적.

위 사진의 이전 2페이지가 그러하다.

굳이 여기 올리진 않겠음


폴은 돌아왔다.

하지만 말로는 테리 레녹스에게 작별을 고한다.







작가의 이전글AGI를 만들기 위해선 사랑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