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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흘러갈 시간들 앞에서

[2월-3월] 공군 병장의 자기 계발 일지 D-101

by 강프란


병장 생활도 이제 절반 넘게 했다.

내가 처음 자대에 전입 왔을 때 지금 나의 위치에 있었던 선임들 얼굴이 하나둘 떠오른다. 매번 하는 말 같지만 처음엔 언제 시간이 가나 싶었는데, 막상 여기까지 오고 나니 또 금방 지나간 것처럼 느껴진다. 참 신기하다. 이제는 부대가 구석구석 익숙하고 생활관이 내 집처럼 편하다. 맞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지. 물론 여전히 피곤하고, 때로는 무력감도 들지만 이 과정 속에서 나도 모르게 단단해진 부분들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2월과 3월 두 달간 나는 책을 네 권 읽었다. 나는 책을 빨리 읽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그만큼 한 권 한 권에 오래 머물며, 책 속에 깊이 빠져들 수 있다는 점이 좋다. 빠르게 넘기기보다는, 문장을 곱씹으며 읽는 시간이 나에겐 더 잘 맞는 것 같다.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 굉장히 트렌디한 단편소설 모음집. 재밌는 소재들로 주제를 잘 풀어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제목에 이끌려 예전부터 꼭 읽고 싶었던 소설. 굉장히 철학적이고 그래서 조금 어려웠지만, 그래서 더욱 매력적이었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 기차 여행을 떠나며 철학자들과 만나는 철학 입문서. 에피쿠로스와 니체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구의 증명 - 충격적이고 신선하게 다가왔던 소설. 내용은 가볍지 않지만 빠르게 읽혔다.





작년 12월, 나는 JLPT N3 시험에 응시했고, 다행히 좋은 결과로 합격할 수 있었다. 취미 삼아 가볍게 시작한 일본어 공부였기에 처음엔 큰 부담 없이 재미 위주로 즐겼지만, 막상 자격증을 따고 나니 조금씩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결국, 올해는 N2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단어도 문법도 확실히 더 어렵고 깊어지겠지만, 이제는 그만큼 일본어라는 언어 자체에 대한 애정도 커진 상태다. 지난 시험 때 했던 것처럼 천천히 꾸준히 해나가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 믿는다. 어쩌면 이 도전은 단순히 시험을 위한 공부를 넘어서, 내가 좋아하는 걸 깊이 있게 알아가는 하나의 과정이 아닐까 싶다.




3월에는 동기들과 함께 울릉도에 다녀왔다. 이번 여행은 조금 특별했는데, 바로 공수기를 타고 울릉도까지 이동했기 때문이다. 공수기 탑승은 공군 병사로서 누릴 수 있는 숨겨진 특권이라, 그 자체로도 꽤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우리가 방문한 시기는 다행히 날씨가 좋아 독도에도 입도할 수 있었다. 독도를 지키고 계시는 독도 경비대 분들, 그리고 바람에 펄럭이는 태극기를 보는 순간 괜히 마음이 뜨거워졌다. 공수기 탑승은 공군인으로서 복무 중 한번쯤 해볼 만한 값진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날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기쁜 마음이지만 그 후 나에게 덮쳐올 현실이 두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동안 멈춰 있었던 시간들이 다시 빠르게 흘러가겠지. 나 혼자 멈춘 사이에 변해버린 세상 속에서 내가 어디쯤 서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래도 언젠간 마주해야 할 순간이라면, 지금에 복잡한 감정마저도 마음속에 잘 품고 힘차게 나아가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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