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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승, 공군 병장 000 전역을 신고합니다!

[5월] 공군 병장의 자기 계발 일지 D-day

by 강프란

지난주 화요일, 전역을 했다.

'꿈에 그리던, 매일매일 바라온' 이런 수식어는 쓰지 않겠다.

전역 날 12시가 딱 되니까 그 순간은 엄청 기뻤는데, 잘 모르겠다.

먼저 전역한 사람들이 말하는 그 복잡 미묘한 감정을 약간은 알 거 같다.


군생활 내내 함께한 군돌이


긴 꿈에서 깨어나는 기분이다. 다행히 악몽은 아니었다.


지금은 방콕의 한 호스텔에서 글을 적고 있다. 싱하 맥주도 한 캔 곁들이면서.

내일은 호주 퍼스로 가는 비행기를 탄다.


646일 전, 나는 머리를 빡빡 밀은 채 공군에 입대했다.

21개월간 많은 일이 있었다.

절대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지만,

군생활을 마치며 가장 먼저 떠오른 감정은 '감사함'이었다.


내가 그동안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많은 일들이 사실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렇기에 나는 내가 누리는 것들에 대해서 언제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군 생활 하면서 느꼈다.


진주 교육사령부 앞에서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 하지 않는가.

나에게 군생활은 멀리서 보면 비극 같았겠지만 가까이선 희극이었다.

슬픈 날보다 기쁜 날들이 더 많았고, 살면서 가장 많이 웃었다.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난 게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

운이 좋았다. 어딜 가든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

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집에 아무리 가고 싶어도,

나와 비슷한 처지의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하면 좀 낫다.


참으로 신기한 세상이다. 지구 곳곳에서 전쟁이 나고 우리나라는 남과 북으로 나뉘어 있다.

그 덕분에 나는 군대에 왔다. 그런데 나는 이곳에서 평화를 찾았다.

어떤 때에는 심지어 이곳이 속세에서 벗어날 수 있는 도피처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이러니했다.

바깥세상은 치열했는데,

불안했는데, 항상 비교하교 평가했는데.


마음가짐이 중요한 것 같다.

불자는 아니지만 일체유심조라는 말을 아주 좋아한다.

모든 건 마음먹기에 달렸다.


'여기서 21개월 어떻게 버티지'라는 생각보다

'21개월 즐겁게 보람차게 살아보자' 생각했다. (쉽지 않은 거 안다.)


공수기 타고 간 울릉도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 중에는,

뭐든지 열심히 해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그냥 시키는 것만 하면 된다는 사람도 있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 우리는 모두 다 다른 군생활을 한다.

전역을 했다고 해서 아직 전역하지 않은 분들께 어떤 조언을 드릴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내 선임은 전역을 하면서 이런 말을 하고 떠났다.

군대는 시험이 아니라 숙제다.

잘하는 것보다 다 해낸 거 그 자체로, 그거면 된 거다.

이 말에 공감한다.


어쨌든,

길고 긴 여행이 끝났다.

여행은 마지막에 항상 아쉬운데 이번 여행은 아쉽진 않다.

후련하고 행복하다.


근데 이제 정말 뭐 해야 되지?

입대하면서 목표 중 하나가 내 진로 찾기였는데,

아직도 답을 모르겠다.


군인이라면 한번씩 다녀오는 독립기념관


두서없이 생각나는 데로 오랜만에 글을 휘적였다.

21개월 간의 소중한 여정, 그리고 이 봄을 자주 회억할 거 같다.

나중에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내 군생활 이야기를 더 풀어보고 싶다.


공군 병 850기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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