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운드 오브 뮤직> 도레미 계단에서 멈춘 시간

by 장미화


독일에서 오스트리아로 넘어가는 기차 안. 분위기가 술렁거린다. 뭐라고 하는지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방송이 연거푸 흘러나온다. 사람들이 얕은 소리로 ‘fuck’ 을 내뱉거나, 큰소리로 야유를 보내거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기차 노선이 변경되었으니 다음 역에서 다 내리라는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독일의 기차 파업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갑작스러운 중단, 지연으로 계획대로 움직이는 것이 어려웠다. 8시에 예약한 침대칸 야간열차를 밤 12시 무렵에서야 탈 수 있었다. 새벽이 되니 문틈으로 찬 바람이 새어 들어와 추웠다. 웬만해선 아프지 않은 첫째가 새벽에 뒤척이더니 목이 부었다고 한다. 이마를 짚어보니 미열이 있고 걷는 폼이 비실비실하다. 나는 그만 맥이 탁 풀린다.


“아… 하필 여기서.”


이번 여행엔 나의 오랜 로망이 담긴 도시가 있었는데, 그곳은 잘츠부르크다. 바로 <사운드 오브 뮤직>의 촬영지! <사운드 오브 뮤직>은 나의 첫 영화이자 인생 영화다. 특히 천둥이 치는 밤 마리아의 방에 숨어 들어온 아이들에게 불러주는 노래 'My favorite things''raindrops on roses..'라는소절을 들을 때마다 소름이 돋는다. 기분이 가라앉을 때 들으면 포근하게 도닥여 준다. 노래 가사처럼, 장미에 맺힌 빗방울 같은, 부드러운 새끼고양이의 수염 같은, 리본으로 묶은 갈색 종이상자 같은, 코끝과 속눈썹에 내려앉은 눈송이 같은, 봄이 되어 녹아내리는 은빛 겨울 같은, 딱 그런 노래다.


이후로는 좋아하는 뮤지컬 영화를 만나지 못했다. 나는 뮤지컬 영화에서 묘한 이질감을 느낀다. 멀쩡히 말하다가 돌연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며 노래를 부른다거나,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손가락을 튕기며 공연의 시동을 거는 익살스러움, 뒤돌아서며 불현듯 현란한 탭댄스와 함께 멋들어지게 열창하는 모습… 그런 것들이 이상스럽게 겸연쩍다. 유일하게 쥴리 앤드류스의 연기만이 내게 끝도 없는 감동을 준다. 대사에서 노래로 넘어가는 부분이 더할 나위 없이 자연스럽다. 부자연스럽다거나 과하다는 생각이 안 든다. 그녀의 노래는, 그냥 말을 건네는 느낌이다. 발성과 호흡, 몸짓과 눈빛까지 정말 완벽하게 편안하고 따스하다. <사운드 오브 뮤직>을 최소 50번은 봤어도 질리지 않는 이유다.


기차 안에서 영화 촬영지를 검색해 보던 난 놀라운 사실을 알았다.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단다. 개봉 당시에도 오스트리아에선 큰 흥행을 못했다고 한다.

나는 <사운드 오브 뮤직>이 오스트리아인들에게 국민 영화쯤 되는 줄 알았다. 오스트리아가 어디 붙은 나라인지도 모르던 내가 그토록 감명을 받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영화의 배경은 내가 알던 것보다 훨씬 복잡한 역사였다. 나치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병합은 완벽한 무력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영화에서는 오스트리아를 ‘순수한 피해자’로 느끼게끔 그리고 있지만, 사실 상당수 오스트리아인들이 나치를 지지하거나 동조했다고 한다. 복잡하고 민감한 우리의 역사를 외국이 낭만적인 이야기로 재구성한 셈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명작의 위력이다. ‘에델바이스’를 들으면 조국을 향한 본트랩 대령의 애끓는 애국심이 떠오른다. 더 재미있는 건 내가 ‘에델바이스’를 오스트리아의 국가나 민요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에델바이스’는 오스트리아와 손톱만큼도 관련이 없는 노래였다. 그저 영화를 위해 만들어진 창작곡이다. 이쯤 되니 오스트리아가 <사운드 오브 뮤직>에 거리감을 느낄 만하다.


그렇다 한들 어쩌겠는가.

내게 ‘잘츠부르크 = 사운드 오브 뮤직’인 것을!


미열에 다리가 쑤신다는 첫째 아이로 인해 레지덴츠 광장도, 호헨잘츠부르크 성도, 보는 둥 마는 둥 휘리릭 훑었다. 언제 먹어도 한국의 왕돈까스를 능가할 수 없는 슈니첼을 먹으며 오래 머물렀다. 그리고 내가 가장 기대했던 미라벨 가든이었다. 마리아가 일곱 명의 아이들과 함께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도레미 송을 부르던 바로 그곳!


도레미 계단에 서서 멀리 호헨잘츠부르크 성벽을 바라보는데, 순간 시간이 멈춰 버렸다. 내 나이 열 살, 난생처음 시청한 비디오테이프가 재생되던 그 순간이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정이 몰려왔다. 내 인생 속에서 셀 수 없이 상영된 영화. 친구와 화음을 넣어가며 부르던 노래들. 에델바이스 악보에 나를 위해 '에델바이스, 에델바이스, 에브리 모닝 유 그리트 미…' 한 글자 한 글자 영어 가사를 소리 나는 대로 한글로 적어주었던 아빠. 특유의 궁서체로 적어 내려간 아빠의 멋진 필체가 눈앞에 떠올랐다. 거짓말처럼 눈물이 툭 떨어진다. 나는 BTS도 안 좋아하고 덕질 한 번 해 본 적이 없다 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나는 <사운드 오브 뮤직> 덕후였다. 눈치 빠른 막내가 외친다.


“엄마 울어?”


나는 헛기침을 하며 눈을 끔뻑거렸다.

“흐흠, 아니. 설마.”


“다 봤으니까 가자!”


“너희가 레고하우스에서 있었던 시간만큼

엄마는 여기에 앉아있고 싶어…”


“엄마, 그런데 오늘은 형아가 상태 안 좋잖아.”


돌아보니 첫째는 계단 옆 유니콘 동상에 앉아서 반쯤 풀린 눈으로 휘파람을 불고 있다.

더 시간을 지체할 순 없었다. 자, 이제 마지막으로 사진을 남길 시간이다. 나의 사랑스러운 아들들을 본트랩가의 아이들처럼 양 옆에 세우고 마리아가 되어 인생사진 한 장 건지고 싶었다. 마리아가 한 것처럼 양팔을 쭉 뻗기도 하고 하늘을 찌르는 포즈도 하며 몇 장 찍었다. 기차에서 오늘 찍은 사진들을 보니 가관이었다. 큰 애는 대부분 눈이 반쯤 감겨 있거나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있었다. 더 심각한 것은, 요새 좀비 표정 짓기에 빠져있는 막내가 사진마다 눈을 뒤집어까고 있었다. 내가 사진을 보며 안타까워하자 10분 뒤 남편은 사진파일 하나를 전송했다. 사진 속엔 아이들이 말끔히 지워지고 활짝 웃고 있는 나만 들어있었다. 아내의 로망을 완벽하게 실현시켜 주고픈 남편의 눈물겨운 노력이었다. 도레미 계단에 서 있는 내 모습을 보니 한바탕 기분 좋은 꿈을 꾼 것만 같다. 나는 사진을 저장하며 흥얼거렸다.


“도레미파솔라시 도 솔 도!!!”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