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격'보다 '내용'이 훨씬 중요하다.
요즘에야 만화카페 같은 공간을 번화가에서도 쉽게 볼 수 있고, 만화책을 본다는 행위가 굉장히 대중화되었지만 학창 시절에 만화책을 빌려본다는 건 나에게는 어느 정도 보안을 유지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학교에 가져가서 보는 건 당연히 안됐고, (아, 학교에서 만화책을 보는 건 지금도 허용될 거라 생각하진 않는다. 그래도 학교 도서관에 만화책들이 들어오는 걸 보면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집에서 보는 것도 부모님께 숨기면서 봐야 한다는 건 어린 마음에 내심 서운했다.
무언가를 읽는다면, 만화책이나 판타지 소설보다는 고전 문학이나 저명한 작가의 저서를 보는 것이 '좋은 일'로 여겨지는 게 자명한 세상의 이치였다. 심지어 내가 보고 있던 만화책의 내용도 중요하지 않았다. '만화책'을 보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았을 뿐. 뭐, 그렇다고 만화책을 안 봤느냐, 그랬으면 앞으로 쓰려는 글이 내 손에서 시작될 일은 없었겠지. 자주 가던 만화책방 아주머니께서 신작이 들어오면 귀띔을 해주실 정도로 열심히 봤으니 말이다.
요즘도 e-book을 보거나 인터넷에 아카이빙 된 글을 읽고 있는 행위가 논문이나 종이책을 읽는 행위보다 격이 떨어지는 행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걸 보면, 만화책은 만화책이어서가 아니라 '기성세대에게 인정받지 못한 콘텐츠'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행위의 좋고 나쁨을 말하려면, 그 행위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 알아야 하는데, 일단 생소한 무언가에 빠져든다는 것은 경계를 하는 쪽이 더 안전한 지도 방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언어에 도움이 되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해.
근데 그게 만화책이라는 이야기는 아니야"
사실 나는 15년이 지난 지금도 모르겠다. 만화책이나 판타지 소설은 재미있어서 쉽게 읽히고, 억지로 고전 문학을 읽는 것보다 텍스트를 읽고 해석하는 데 훨씬 효과적이라 생각한다. 만화책의 선정성을 걱정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먼 나라 이웃나라를 볼 때도 만화책이나 보고 있다는 핀잔을 들었던 걸 떠올려보면 만화책을 읽는 행위는 존재 자체로 죄를 짊어지고 있는 행위였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당시 내 주변에도 만화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는 친구가 있었고, 여전히 만화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나는 내 언어 능력의 50%를 쌓아준 콘텐츠가 만화책과 판타지 소설책이었다고 믿는 만화책방(만화책 & 무협 판타지 소설) 덕후였음을 인정한다. 특히 이영도는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알게 해주었다. 이영도의 대표작으로 드래곤라자가 꼽히지만(드래곤라자는 교과서에도 실린 적이 있다.), 사실 진정한 이영도의 명작은 눈물을 마시는 새라고 생각한다. 강력 추천. 과수원 농사 적당히 하시고, 책을 내주세요. 제발.
좋은 이야기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좋은 이야기는 쉽고, 재미있어야 한다. 좀 더 바란다면, 이야기 속에 메시지가 있어야 하고, 독자가 이를 발견하여 기쁨을 느끼기에 적절한 난이도로 숨겨져있어야 한다. 간단하게는 '재미'있고, '의미'있는 이야기. 요즘 이런 부분을 가장 직관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는 이야기 채널은 웹툰이라고 생각한다. 만화는 이제 스마트폰에서 그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고, 수많은 작품 중에서도 '좋은 이야기'라고 할만한 작품이 있는데, '죽음에 관하여(글: 시니 그림: 혀노)'다.
죽음에 관하여는 소위 아는 사람들에게는 굳이 더 설명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작품인데, 그 내용은 간단하다. 죽음에 관하여의 세계관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저승으로 가고, 저승에서 신을 만난다. 그리고 신과 함께 환생을 하는 문으로 가는 동안 이승에서의 이야기를 신에게 들려준다. 신은 나쁜 사람에게 대놓고 벌을 주지도, 착한 사람에게 좋은 환생을 보장해주지도 않는다. 그저 이야기를 듣고, 담담한 대답을 들려줄 뿐. 그럼에도 이 간단한 이야기는 사람들의 굉장히 좋은 반응을 얻었다. 물론, 나에게도.
죽음에 관하여를 좋은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데,
'쉽고 재미있다.'
죽음에 관하여는 이승은 컬러로, 저승은 흑백으로 묘사한다. 저승이라고 귀신들만 있는 건 아니고, 죽은'사람'과 산'사람'의 차이가 있을 뿐이기 때문에 간단한 연출로 독자는 공간을 나누어 바라보게 되는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흔한 격투씬, 개그 요소도 없는데, 재미있다. 누군가 말했다. 가장 재미있는 예능은 마음이 잘 맞는 사람과의 수다라고. 망자와 신이 나누는 몇 마디의 대화는 우리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고, 공감을 유발하는 소소한 대화는 특별한 msg 없이도 흥미를 유발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의미가 있고, 이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죽음에 관하여가 연재되는 동안 적어도 나는 일주일에 한 번, 매주 목요일마다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웰빙은 익숙해도 웰다잉은 조금 꺼려지는 일상 속에서 죽음을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사실, 잘 사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은 노력과 운의 문제이지만, 죽음은 모두에게 100%의 확률로 다가오는 일임에도 말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는 다소 껄렁하게 생긴 망자와 신이 몇 마디를 주고받고 망자가 환생을 하는데, 알고 보니 망자는 '공자'였고, 신과 나눈 대화는 '논어'에 수록된 글이었다. 댓글을 보기 전까지는 나도 그 망자가 공자였을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고, 나누던 대화도 논어에 수록된 글일 거라 생각지 못했다. (논어도 만화책으로 읽으니 얼마나 쉽고 간단한가..)
'스토리텔링에도 충실하다.'
마지막으로 스토리텔링에도 충실하다. 사전적 의미이기는 하나, 전하고 싶은 생각을 에피소드를 통해 독자에게 전달하는 행위에도 크게 부족함이 없는데, 죽은 자와 담담히 이야기를 나누는 신을 통해 우리는 누구에게나 한 번씩 주어질 '죽음'에 대한 생각을 매 에피소드마다 하게 된다. 죽음이라는 행위가 절대 가볍지 않고, 사연 없는 묘비가 없듯이 작품에 그려지는 모든 죽음에도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고, 이야기를 따라가는 동안 수많은 형태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곱씹어볼 수 있다. (물론, 죽음을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존재하고 그들의 이야기 역시 죽음에 관하여에서 그려진다.)
*스토리텔링에 대한 이야기가 좀 더 궁금하다면 공감을 확장시키는 스토리텔링(클릭)
좋은 이야기에 대한 글을 쓰게 되면 누구나 정말 좋은 이야기라고 입을 모아 칭찬할만한 이야기보다, "사실은 이런 것도 정말 좋은 이야기야"라는 뉘앙스로 쓰고 싶었다.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브런치를 시작했던 건 아닌데, 막상 쓰다 보니 내가 '이야기'라는 것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알아가게 되었다. 다양한 장르 문학에도 관심이 많은데, 영화가 아닌 만화책으로서의 마블 코믹스나, 블리자드에서 만든 게임들의 세계관을 다룬 소설들에 대한 이야기도 언젠가 소개해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