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어린이들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유행가, 노래에서 시대상을 알 수 있었다고 합니다.
요즘은 어디서 시대상을 알 수 있을까요? 저는 커뮤니티에서 자주 쓰는 말들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중 요즘 제 눈을 사로잡는 단어는 '누칼협' 과 '알빠노'입니다. 오늘은 이 단어들에 숨어있는 심리와, 우려하는 지점에 대해서 이야기해 봅니다.
이 단어는 보통 어떤 사람의 선택에 대해서 평가할 때 나오는 단어로 보이는 거 같습니다. 사람들은 어떤 시점에서 특정한 선택을 하게 되고, 그것을 후회하거나 아쉬워하고,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할 수 있지요.
그리고 생각해 보면 이것은 누구나 모두가 하는 행위입니다. 우리가 과거에 어떤 선택을 한다면, 그것은 그것이 결과적으로 좋지 않은 선택이었다 하더라도, 최선의 선택인 경우가 많습니다. 좋지 않은 상황에서 하는 잘못된 선택도 당시엔 '최선'의 선택이었죠.
그래서 이 선택을 후회하고, 아쉬워할 수 있는데,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누칼협'이라는 단어를 쓰며 답합니다.
여기엔 "누가 그 선택을 하라고 칼로 협박한 것도 아니잖아? 네가 선택했잖아! 너의 모든 책임이니까 앓는 소리 하지 마라" 같은 심리가 느껴집니다. "그러니 악으로 깡으로 버티든가 그만두든가 알아서 해"라는 거죠.
그리고 한 단계 더 들어가 보면, "너의 부정적인 스토리나 감정을 난 받아들일 여유가 없다. 그리고 네가 실수건, 운이 안 좋건 잘못했으면 힘들어도 그것은 응당 받아들여야 한다." 같은 생각이 자리 잡아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단어도 비슷한 맥락에서 쓰이는데, 어떤 사람이 자신의 어려움이나 힘듦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어떤 사람들은 '알빠노' 라고 답합니다.
사실 어떤 사람의 힘든 스토리나, 사정에 대해서 이해되지 않거나 이해하고 싶지 않으면 답하지 않고 그냥 지나가면 되지만, 이런 단어를 쓰는 사람들은 이런 표현을 굳이 쓰곤 합니다.
이것 역시 "너의 부정적인 감정이나 힘듦을 왜 얘기하냐? 내가 알아야 될 일이 아닌데, 왜 알리는 것이냐. 어쩌면 너는 내가 그 사정을 듣고 뭔가 이해하길 바라겠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또 "그냥 나는 내 맘대로 할 테니, 조용히 하라"는 것이지요.
사실 누군가 어떤 글을 올리면 그것을 이해해 주거나 조언을 해 줄 사람을 찾는 것이지만, 이해하지도 않을 사람들이 댓글을 써가면서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도 어쩌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방식으로 말이죠.
두 표현에서 저는 '상대를 향한 가혹한 태도'가 보입니다.
상대방이 어떤 상황에 처했고, 어떤 힘듦을 겪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너의 의지와 선택에 따라서 결과가 나오는 것뿐이니 힘든 이야기는 일절 하지 말고 받아들이라는 것이지요.
사실 상대방에 대한 가혹한 태도를 가진 이유는, 스스로를 향한 가혹한 태도가 자리 잡아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스스로에게 자비로움을 갖고 있는 사람이 (내로남불 같은 자기 방어 말고), 타인에게도 자비로움을 갖지 않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즉, 스스로가 힘들고 어려울 때 '그럴 수 있다.' '이번 선택은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그랬구나' 같은 이해나 위로를 안 해주기 때문에, 상대방에 대해서도 '그럴 수 있다'거나 '그 선택을 한 이유가 있었구나'라고 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스스로에게도, '너는 왜 그랬어?'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지' '왜 멍청한 선택을 하고 그래?'라고 생각하니 상대방에게도 그렇게 표현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는 것입니다.
여기에 더해서 스스로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 때문에, 스스로가 가진 다양한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하지 못했고, 때문에 사람들에게 베풀 공감이나 위로도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스스로도 여유가 없는데, 타인의 어려움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고, 오히려 자신이 쌓인 스트레스를 이런 상황에서 공격적으로 푸는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자신이 이해가 안 되거나, 공감을 못하겠으면 그냥 넘어가면 되는데, 그것에 또 일일이 반응을 하니까요.
저는 요즘 사람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을 주지 않고, 이해해주지 않으며, 서로 인정해주지 않으려는 태도가 만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이나 조금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회피하거나 멀어지지 굳이 다가가서 변화를 이끄려 하지 않습니다. 상대가 내 말을 들을 거 같지 않고, 어떤 부정적인 반응이 올 지 모르거든요.
이 모든 것은 '불안'에서 기인한다고 보는데요. 사람들은 사회가 주는 끊임없는 불안 때문에 이미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고 있고, 이 때문에 살아남고, 생존하는 데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과정에서 주위 사람들을 챙기기보다는 내 가족, 내 사람들만 챙기거나 적자생존, 각자도생의 생각을 갖기가 쉽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이해해주지 않고, 관심을 주지 않고, 인정을 해주지 않을 때 소외받는 사람들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부족한 인정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위험하거나 이상한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제가 일상에서 발견한 예시들인데요.
#1 수년 전에 알았던 지인이 저에게 연락이 와서는 대뜸 '네가 과거에 이런 이야기를 해서 내가 인생이 어려워졌다. 사과를 해라'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주장하는 바를 보니, 오해가 있고, 억울한 측면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화를 조금 해 보니 정상적인 대화가 되지 않겠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상대가 원하는 대로 사과를 해주고 마무리했지만, 마음속 한편이 많이 씁쓸했습니다. 이 사람이 수년 전에는 큰 문제가 없었는데, 왜 저렇게 된 걸까 하고요. 하지만 적극적으로 뭔가를 할 수는 없었습니다. 제가 도울 수 있는 선을 넘어선 거 같았거든요.
#2 저는 가끔 오전에 동네 앞 공원에서 달리기를 하며, 운동을 할 때가 있습니다. 이 공원의 중간에는 식수대가 있는데요. 어떤 노인분이 식수대 앞에서 꽤나 오랜 시간 동안 알 수 없는 행동들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생수 통 여러 개를 가져와서 물을 담고, 물 나오는 버튼을 의미 없이 누르고, 쓰레기 받이에 물을 받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던 거죠.
제가 운동을 30분에서 40분 정도 한다고 하면, 그분은 제가 오기 전에 이미 거기에 있었고 끝날 때까지도 거기에 있으신 걸로 보아 최소 1~2시간은 그 식수대 앞에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로 인해 사람들은 그 식수대를 이용할 수 없었습니다.
#3 정유정 사건은 '흔한 사이코패스의 잔혹한 살인'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저는 좋지 못한 기질을 가진 사람이 적절한 양육을 받지 못하고, 오랫동안 소외받아서 생긴 일로 보이기도 합니다. 이 사람이 적절한 양육을 받고, 적더라도 의미 있는 관계를 맺고 있었다면 이런 행동으로 이어졌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지요.
사회가 단절되고,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관심을 주지 않을 때, 주변으로부터 아무런 피드백이 없으니 혼자만의 생각을 하게 되고, 혼자만의 생각이 잘못된 방향으로 발현되면, 이상해지거나, 안 좋은 방향으로 심각해질 수 있습니다. 요즘엔 개인화된 정보 추천으로 인해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전혀 듣지 않거나, 차단도 쉽기 때문에 자신의 잘못될 수 있는 생각은 계속 강화될 수 있습니다.
이때 이 사회에서 제대로 자신을 지키지 못하고, 존재감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인정받고 존재감을 느끼기 위해서, 이상한 행동을 하고 더 나아가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또다시 악순환으로 이어지는데요. 사람들은 불안해서 주위 사람들을 챙기지 않고, 챙기지 않은 사람들이 인정받고, 존재감을 얻기 위해 문제를 일으키고, 문제가 일어나니 또다시 사람들은 불안에 빠질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처벌을 강화하고, 감시를 더 강하게 하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이것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예측해서 대비할 수도 없고, 결국 강력한 처벌이 주어진다 한들, 누군가가 피해를 보고 난 후겠지요.
사실 명확한 방향성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전쟁과 재해, 전염병으로 인해 전 세계 사람들이 불안한 가운데, 우리나라는 인구가 너무 많고, 주변 시선을 엄청 쓰는 문화, 저성장, 각자도생의 분위기까지 겹쳐 있어서 개인의 노력으로 뭔가를 해결한다는 건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래도 그나마 아이디어를 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개인단에서는 나 자신을 심적으로 챙기고, 주변 사람도 챙길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기.
국가적으로는 국민들의 불안을 줄일 수 있는 다양한 정책이 주어져야 할 거 같습니다. 경제적으로 안정되는 것도 필요하지만, 부자가 되어야만 괜찮은 인간이라는 인식 말고 다양한 삶의 형태를 보여주고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게 유도하고, 사회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챙기는 복지가 있어야 할 거 같습니다.
스스로의 실수나 실패에 대해 엄격하고 가혹하신가요? 그렇다면 이는 자존감이 낮은 것이 근본 원인입니다.
당신이 자존감을 높이고 자신을 힘들게 하는 가혹함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아래의 링크를 통해 저에게 연락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