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를 준비하는 사람들과 심사를 받는 사람들은 어떤 감정일까 궁금했다. 평소 일정대로 움직이다 보면 심사를 받을 땐, 내가 준비한 자료를 기반으로 어떻게 하면 잘 전달할지 생각하기 일쑤고, 심사를 할 때면 심사의 중점을 어디에 둬야 할지, 주관기관 담당자의 이야기를 듣고 시작하기에 "심사"라는 두 글자를 두고 조금은 깊게 이해해본 적이 없다.
그러다, 최근 들어 심사를 6~7건을 요청받았고, 서면평가와 대면평가 통틀어 250개사의 사업계획서 심사를 하게 되었다. 필자 역시도 과제를 제출하기도 하기 때문에 창업자가 어떤 마음으로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고 제출했는지 몇 가지만 봐도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물론 대충 본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렇다고 심사를 전문적으로 하는 것도 아니기에 "극히 개인적인 사업계획서 심사 관점"에 대해 풀어보려고 한다.
대부분의 심사위원은 기관에 도착하면, 개인정보보호 등 필수서류들을 작성하고, 서로 명함을 교환하며 인사를 나눈다. 물론 처음 뵙는 분들도 있지만 심사를 많이(?) 다니시는 분들도 계시기 때문에 1~2명 정도는 초면이 아닌 경우가 많다. 어쨌든, 그렇게 인사를 나눈 후에는 심사 자리에 착석하여 심사 준비를 하게 되는데, 이때부터는 정말 손이 떨릴 때도 있다. 과제 지원금이 1~2억이라고 했을 때, 하루 동안 그 공간에서 결정되는 지원금이 20~30억이라고 했을 땐, 그만큼 책임감 이상의 사명감(?)이라는 감정이 든다.
쉽게 말해, 지원금이 꼭 필요한 기업이 선정될 수 있도록 공평한 심사는 물론, 기업의 성장 가능성과 대표자의 잠재력까지 읽어내야 한다. 참 어려운 숙제지만 당일 심사에 최선을 다하면 좋은 기업들이 잘 성장하더라.
과제의 성격과 평가표를 동시에 살펴봅니다.
심사 자리에 착석하면, 사업이 어떤 성격인지 살펴본다. 개발과제인지 사업화 과제인지, 아니면 공모전이나 경진대회인지 큰 맥을 보는데, 이유는 1년 미만 기업을 3:1 경쟁률로 최종 15명 선발한다고 했을 때, 누군가는 개발중일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제품을 판매하여 매출을 발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무조건적으로 매출이 발생하는 기업에게 높은 점수를 줄까? 아니다. 취지에 따라 심사 점수가 달라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아이디어 공모전 심사를 가서, 공모전 취지를 잘 읽다 보면 이런 글귀가 적혀있다.
"본 아이디어 공모전은 창업을 준비하는 예비창업가들이 세상을 바꾸려는 혁신의 노력을 담은 아이디어.... 어쩌고저쩌고..."
잘 보면, 포인트는 2가지다.
1) 창업을 준비하는 예비창업가
2) 혁신의 노력
그런데, 공모전 지원자격이 1년 미만이라고 했을 땐 이미 사업자를 내고 매출을 발생시키고 있는 사람들도 지원하기 때문에 이제 막 시작한 예비창업가의 경우 승산이 없다. 절망적일 수밖에...
그래서 심사를 하는 필자를 평가표를 기반으로 반드시 예비창업가라면 아이디어 발상도 좋지만, 이후 개발과 사업화를 해야 하니 가장 중요한 고객 니즈가 무엇이고, 시장 수요가 얼마나 있으며, 어떤 기술력과 비즈니스 스킬로 매출을 발생시킬 건가요?라고 물어본다. 꼭 이렇게 질문하면, 아직 예비창업자가 아이디어만 있다고 답변하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다.
심사위원은 그 이야기가 듣고 싶은 게 아니다. 물론 길을 걷다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오를 수 도 있겠지만, 그 이후에 고객 니즈가 정말 있는지 재차 확인하고 검증하고 테스트하는 것을 빼먹으면 안 된다. 이런 말을 조언해주면 페이스북 주커버그 이야기를 하면서 그 사람은 검증 없이 재미로 아이디어로 여기까지 온 거 아니냐고 반문하시는 분들도 간혹 있어 당황하긴 하지만, 어쨌든 고객의 니즈를 담아내지 않은 서비스와 제품은 매출 발생이 정말 어렵다.
심사위원은 아이디어를 떠올린 다음에 어떤 행위를 했는지가 궁금한 거다.
1) 그 결과가 어떠했으며
(시장에서 고객들을 만나보세요)
2) 실제 개발로 이어질 수 있는지
(개발 가능성과 예산은 알아보세요)
3) 개발계획은 세웠는지
(지원금 받아서 그냥 외주 맡긴다고 하지 마세요)
4) 비즈니스 모델은 설계했는지
(어떻게 돈 벌지 생각하세요)
참 생각 말고 실행할 게 많다.
사업을 준비한다는 것은 재밌고 흥미롭지만, 실제 사업화가 시작되면 머리털 빠지게 정신없고 바쁘고 예민해지고, 가정에 소홀해지며, 늘 자금에 쪼들려, 사업을 계속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하다 보면 어느 순간 빠져나오지 못하는 늪에 빠지게 되고, 빠져나오면 사는 거고, 못 빠져나오면 폐업하는 거고, 그렇게 믿었던 사람들은 다 떠나가고 남은 건 빚과 우울증.
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아니지 라고 긍정적인 생각을 해야겠지만, 주변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동일 패턴으로 창업에서 폐업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기에 조금 끄적여봤다. 어쨌든 삼천포로 글이 빠지기 전에!
그래서 결론.
심사위원은 심사를 하는 과제의 개요와 취지, 선발되어야 할 기업들의 컨디션이 무엇인지 꼼꼼하게 살펴보고, 그에 맞는 평가표의 배점을 보고, 어디에 중점을 두고 평가를 해야 할지 당일 심사의 나름대로 기준을 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업계획서를 작성할 땐, 과제의 취지와 의도를 잘 이해하고, 공개된 평가표의 점수 중점에 따라 사업계획서의 강약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할 예정이다" 보다는 "~해봤더니 이랬다"라는 실행력 있는 문구와 증빙자료가 1점이라도 더 높은 점수를 안겨줄 것이니, 꿈을 쓰듯 작성하지 말고, 잘했던 못했던 고객을 만나는 과정과 개발의 과정들을 최대한 상세하게 작성해야 한다. 본인이 예비창업자라면 지원이 필요한 이유가 명확해야 하며, 지원 전과 이후의 KPI를 기대효과에 살짝 언급하는 것도 좋다. 또 매출을 발생하고 있는 기업이라면, 지원의 목적이 개발 고도화 또는 사업화(마케팅)에 있기 때문에 그 이유 또한 명확하게 언급하고, 예상 성과를 기존의 사업성과와 비교하여 숫자로 비교해서 작성하면 더욱 좋다.
아이템명과 대표자를 같이 봅니다.
10~20장 정도의 사업계획서를 정독하는 건 솔직히 힘들다. 물론 최대한 읽으려고 하고, 이해하려고 하나 제한된 심사시간이 있기 때문에 편중되게 심사를 할 순 없다. 그래서 필자는 사업계획서를 딱 열면, 아이템명을 한번 쓱 보고, 바로 대표자를 본다. 즉, 대표자가 아이템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역량이 있는지 기술력이 있는지 관련된 업에 종사했었는지, 레퍼런스는 있는지를 보게 되는데, 필자의 경우 80%는 여기서 결정되는 것 같다.
1) 학력
2) 경력
3) 레퍼런스
4) 기술력
5) 네트워크
위 5가지의 내용이 잘 담겨있다면, 대부분 사업계획서의 전반적인 내용을 살펴보지 않더라도 감이 온다.
"아, 괜찮겠다"
혹은
"음..."
물론 심사기준표를 살펴보면 점수 비중이 있긴 하나, 기술력도 마케팅도 비즈니스 모델도 대표자를 중심으로 팀이 만들어내기 때문에 이 창업자가 과연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인가를 보게 된다. 그런데 창업자 소개가 짧아도 너무 짧다. 아쉬운 경우도 허다하다. 구글, 삼성 , LG 출신이라고만 써놓고, 그래서 경력이 몇 년이니까 잘할 수 있다고만 작성하면 사실 어떻게 평가를 해야 될지 모르겠다.
예를 들어,
삼성 출신이라면 그래도 부서에서 어떤 일을 했고, 어떤 프로젝트를 누구와 함께 진행해봤으며, 성과는 어땠고, 지금의 개발하려고 하는 아이템과 어떤 연결성이 있는지를 적어주면 좋을 텐데 그런 부분은 통 두리째 빼버리니 10점 만점에 8~9점 받을 수 있는 것을 6~7점을 줄 수밖에 없는 거다.
자, 결론.
대표자 소개란을 작성할 땐, 경력만 몇 년 몇 년 적는 게 아니라, 지금의 아이템과 연관성이 높은 경력과 레퍼런스, 성과를 중심으로 작성해야 한다. 14년 경력, 19년 경력만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요소는 극히 적다. 그러니, 나를 어필하는 것도 기술이라 생각하고 그동안 해왔던 일들을 쭉 떠올려보고, 어떤 성과를 달성했었는지를 고민한다면 충분히 진심과 실력을 담아낼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
마지막으로, 3 STEP만 기억하자.
"차별성 - 비즈니스 모델 - 시장 진입 가능성"
심사의 꽃은 뭘까.
지금까지 필자가 던졌던 질문들을 떠올려보면, 아래 3가지가 아닐까 싶다.
1. 차별성 : 그래서 뭐가 달라요?
2. 비즈니스 모델 : 어떻게 벌거예요?
3. 시장 진입 가능성 : 어디서 어떻게 팔 거예요?
물론 더 궁금한 질문들도 많으나, 보통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들이다. 보통 개발을 어떻게 할 거냐 라고 물어보면, 지원금 받아서 외주 개발할 거라고 하는데, 필자는 외주가 나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다. 기획 없이 외주를 맡기다 보면, 개발비만 날려먹고, 서비스 운영은커녕 창업의 존폐 여부를 빠르게 고민하게 될 거다.
예비창업자의 경우, 평균적으로 지원과제를 통해 5,000만 원 내외의 자금을 받아서 최소 2,000만 원 이상의 자금으로 개발 외주를 맡기는데, 그전에 충분한 고객 검증과 비즈니스 모델 설계해서 충분한 피봇을 했으면 좋겠다. 앱 개발의 경우 바로 실전 돌격형으로 외주 맡기는 경우가 허다해서 멘토링을 하다 보면, 개발은 외주 개발사가 하고 있다고만 이야기하면서, 투자유치 이야기만 털어놓는다.
정말 중요한 아이템은 기획 없이 외주 맡겨놓고, 300억 500억 이야기만 하고 있는데, 참 안타깝다. 300억을 만들어 줄 본질은 빠져있고, 꿈 이야기만 대면평가 때 이야기하니 사실할 말이 없다. 그런데 이건 내부 개발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개발과 사업화의 연결고리를 충분히 풀어내지 않으면 과제평가에 있어서는 높은 점수를 기대하기 어렵다.
시장 진입의 경우도 마찬가지.
개발이 끝나면, 제조 아이템의 경우 홈플러스나 이마트에 입점하다고 쉽게 말하며, 와디즈 펀딩으로 1억 내외 매출 달성을 할 거라며 다른 사람의 유사 아이템 펀딩 성공 사진을 캡처해서 발표함은 물론, 앱 서비스의 경우 출시 3개월 목표가 10만 다운로드, 1년 목표가 50만 다운로드라고 말한다.
물론 높은 사업적 목표는 좋지만, 그에 맞는 치밀하면서도 구체적인 계획을 사업계획서에 표현하고 말해야 한다. 이 역시도 "~할 예정이다"와 다른 게 없기 때문에 높은 점수를 받기는 어려운 유형이다.
결론.
내 아이템의 차별성이 기술에 있는지 창업자의 비즈니스 스킬(기획력)에 있는지 잘 고민해봐야 한다. 꼭 기술이 있어야만 사업을 잘하는 것도 아니다. 사업은 마치 종합예술 같아서 이런저런 것들이 마치 하나로 잘 이어지고 뭉쳐졌을 때 포텐이 터지더라.
이건 그냥 팁
사업계획서 작성할 때, 요즘 들어 더 심해진 것 같은데, 대표자 소개와 아이템 차별성 소개란에 이런 내용은 적지 않아도 괜찮다.
공모전 수상 [우수상]
**패키지 지원사업 선정
**기술사업과 과제 선정
**대학교 창업경진대회 [대상]
**투자유치 발표 [투자의향서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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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사업계획서인지, 각종 지원과제 누가누가 잘하나 소개자료인지 분간이 안 간다. 이런 내용을 쭉 적는 사람들을 보면, 사업을 하려고 하는 건지 지원과제를 많이 받았으니 아이템 검증이 끝났다는 건지 모르겠다.
저렇게 과제 선정이 되었다고 작성하지 않더라도, 심사위원이 평가하는 관점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으니 조금만 더 본질에 집중했으면 좋겠다.
* 아무쪼록 필자도 라이브 커머스 서비스를 운영하면서 스타트업이 되어 실무를 하고 있는데, 사실 사업계획서 작성은 어렵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이 있듯이 필자가 꼭 그렇다.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다 산으로 빠질 때도 있고, 꿈이나 목표를 작성하게 되기도 하는데, 이건 작성하면서 계속해서 현실성 있는 내용을 채우려고 노력해야 한다. 스스로 뺨을 때려가면서 본질에 집중해도 모자란 시간들이 야속할 때도 있지만, 대기업이 아닌 이상 스타트업만의 성공방정식을 모든 스타트업이 잘 만들어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