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의 말뿌리 찾기(3) : 복달임, 개장국과 육개장
‘삼복지간(三伏之間)에는 입술에 붙은 밥알도 무겁다.’
삼복염천을 이렇게 잘 표현한 말이 또 있을까요? 연일 30도가 넘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 기력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모습이 눈에 선하게 들어옵니다.
삼복(三伏)은 삼경일(三庚日)이라고도 하는데 하지(夏至)부터 입추(立秋)를 막 지난 기간 중에 세 번 들어있는 더운 날을 가리킵니다. 낮이 제일 길다는 하지(夏至)를 지나 세 번째 경일(庚日)이 초복(初伏)이고, 네 번째 경일이 중복(中伏), 그리고 입추로부터 첫 번째 경일이 말복(末伏)입니다. 이때는 일 년 중 태양이 가장 높이 뜨고 낮이 길어집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북반구는 지표면이 태양으로부터 가장 많은 열을 받는다고 합니다. 날이 더울 수밖에 없겠죠. 이때의 더위를 염천(炎天; 불타는 날씨), 증염(蒸炎; 찌고 불타는 더위)이라고 하는 까닭을 알겠습니다.
이렇게 더운 날을 왜 복날이라고 했을까요?
伏(복) 자를 보면 ‘사람[人]’ 옆에 ‘개[犬]’가 있습니다. 이 글자는 아주 오래 전부터 개가 사람과 함께 살아왔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사람이 개처럼 엎드려 있다’는 뜻을 나타냅니다.
이것은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과 관련이 있습니다. 봄은 목(木), 여름은 화(火), 가을은 금(金), 겨울은 수(水)의 속성을 갖는다고 합니다. 오행설에 의하면 ‘火克金(화극금)’이라 하였으니 쇠[金]는 불[火]을 이길 수 없습니다. 즉, 불은 쇠를 녹여버리기 때문에 ‘금(金)’의 기운을 가진 가을이 ‘화(火)’의 기운을 가진 여름에 눌려서 굴복한 날이라는 것입니다. 경일(庚日)을 복날로 삼은 것도 ‘庚’이 오행으로는 ‘金’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면, 복날은 음기가 양기에 눌려 땅에 바짝 엎드려 있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것이죠.
예로부터 복날에는 더위를 물리치고 지친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특별한 음식을 마련해서 먹었습니다. 이것을 ‘복달임’이라고 합니다. 복달임은 ‘복달’이라고도 하는데, ‘복이 들어 기후가 지나치게 달아서 더운 철’을 뜻하기도 하고, 복날에 그해의 더위를 물리친다는 뜻으로 고기로 국을 끓여 먹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는 말입니다. 아마 날(날씨)이 달아올라 더운 복날이라는 말이 음식을 먹는 행위까지 가리키게 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참고로, 삼복더위를 복달더위라고도 한다는 것을 알아둘 만합니다.
복달임 음식으로 요즘은 삼계탕(蔘鷄湯)을 많이 먹지만 중병아리를 잡아서 영계백숙(←軟鷄白熟 연계백숙)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팥죽을 쑤어 먹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복날 음식이라고 하면 ‘개장국’이 으뜸이었습니다. 지금은 대개 보신탕(補身湯)이라고 하지만, 원래는 개장‧개장국 또는 구장(狗醬)이라고 하였습니다. 개장국은 말 그대로, 된장을 풀어 만든 ‘장국’에 개고기를 넣어서 끓인 국이라는 뜻입니다. 개고기를 꺼리는 사람들은 이 ‘장국’에 소고기를 삶아 찢어 넣어 만든 ‘육개장’을 먹었습니다. 그러니까 ‘육개장 = 육(肉) + 개장’의 구성을 갖는 어휘라는 점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흔히들 개고기를 먹는 풍속이 우리나라에만 있어온 것이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 개고기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아주 오래 전부터 세계적으로 즐겼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공자가 개고기를 즐겼다는 이유로 사대부들도 앞다퉈 먹었다고 하고요.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베트남 등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전통적으로 개고기를 먹었고, 서양에서도 2차 세계대전 때까지는 많은 나라에 개고기를 먹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법으로 금지하고 있거나 사회적 통념으로 금기시한다고 합니다.
보신탕(補身湯)이란 말은 최근에 생긴 말인데, 88올림픽 때 서양 사람들이 싫어한다는 이유로 보신탕 판매를 금지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때, 사철당이니 영양탕이니 하는 괴상한 말이 생겨나기도 했었죠.
이렇게 동양에서는 일 년 중 가장 더운 날을 '개'와 연관지어 인식하고 있는데, 놀랍게도 서양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양에서도 가장 더운 날을 'Dog Days'라고 합니다. 이 시기는 대체로 7월 3일부터 8월 11일까지이니까 우리의 삼복과 시기가 겹칩니다.
이 기간을 Dog Days라고 하는 것은 하늘의 별자리와 관계가 있습니다. 옛날 지중해 연안의 여러 나라에서는 아침에 해가 떠오를 때 견성(犬星, Dog star; Sirius)이 뜨는 이 시기에 태양의 열기가 더욱 뜨거워져서 낮의 더위가 극성을 부렸다고 합니다. 시리우스 별은 천체 중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별로서 큰개자리에 속해 있습니다. 사람들은 태양의 열기에 시리우스 별의 별빛이 더해저 더위가 심해진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시리우스 별리 떠오르는 이 시기를 Dog Days라고 불러왔다고 합니다. 이래저래 동서양을 막론하고 개는 더위와 관련이 많은가 봅니다.
입술에 붙은 밥알마저도 무겁게 느껴지는 복날, 여러분의 무엇으로 복달임을 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