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전주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에 다녀왔다. 짧은 연휴기간에 맞춰 가까운 곳으로 떠나는 여행이었음에도 설렘은 어느 장기 여행 못지 않았다. 내겐 첫 영화제였고, 영화도 잔뜩 예매해두었다.
설렘이 클수록 늘 하는 생각이 있다. 이번 여행에서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특별히 아픈데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저 이 여행이 완벽했으면 하는 마음에 드는 생각이다. 컨디션 난조라도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면야 상관 없겠지만, 제한된 일정에서 의연해지기란 그리 쉽지 않다. 오히려 여행까지 왔는데 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 때문에 마음까지 아프기 마련이다.
안타깝게도 출발 당일 아침에 좋지 않은 느낌이었다. 짐을 쌀 땐 느끼지 못했었는데, 문밖을 나서 쌀쌀한 공기를 들이마시자마자 쎄한 기분이 들었다. 쎄한 기분이 들었다는 그 자체가 나쁜 징조였다. 몸이 외부 자극에 민감해져서 온 세포가 경계심을 바짝 세우고 있는 듯한. 그래, 기분탓일 거야. 육감을 무시하며 아침용 샌드위치를 꼭꼭 씹어먹었건만, 전주에 도착해서도 크게 나아지진 않았다. 날씨는 화창했고 미세먼지도 없었고, 거리에 온통 영화제 포스터와 굿즈 같은 볼 거리가 가득했다. 기분이 업될수록, 그와 대비되어 몸은 더욱 축 가라앉고 있었다. 결국 첫 영화관에서 상영 내내 잠에 빠져들었고 (동행도 잠들었던 것을 보면 영화 탓도 꽤나 컸던 것 같지만 난 헤드뱅잉까지 했다), 숙소에 돌아오는 길에는 타이레놀을 사 먹고 지쳐서인지 금방 잠에 들었다. 내일은 100% 컨디션의 내가 되는 꿈을 꾸면서.
100%가 아닌 상태로 여행할 때 가장 어려운 건 동행을 대하는 일이다. 동행이 내 눈치를 보게 되기 때문이다. 나약해진 나 때문에 동행은 "힘들면 이번 영화는 취소하고 쉴까?", "오늘 일정은 네 마음 내키는 대로 해도 돼" 같은 말을 수시로 반복했고, 나약한 몸만큼이나 여려진 마음은 유치하게도 그런 말에서 위안을 얻었다. 그는 어쩌면 나보다 영화제를 훨씬 기대했을텐데 잘도 무심히 그렇게 말해주었다. 쿨하고 직선적인 그의 배려심에 무척이나 고마웠는데, 마음 한켠에는 내가 그의 입장이었다면 똑같이 말해줄 수 있었을까 싶어서 고맙고 또 미안했다. 부끄럽지만 난 동행에게 내가 받은 만큼의 배려를 해주지 못한 것 같다. 참으로 이기적인 마음이란 건 알지만, 내가 아프다는 핑계로 상대의 헌신적인 이해와 배려를 요구했는지도 모른다. (부디 나만 이런 못되먹은 마음을 가진 것은 아니길.)
자연스레, 지난 여행에서 만났던 많은 사람들에게 과연 난 어떤 동행이었을지 돌이켜보게 됐다. 스스로에게 후한 점수를 주기가 어려웠다. 낙제점까진 아니고 평균 정도는 되려나.
최하점은 내 첫 유럽여행 아니었을까. 5년 전 여름, 대학생 2학년이었던 나와 친구는 이탈리아 부라노 섬을 향하는 보트에 타고 있었다. 그런데 친구의 안색이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생리통이 너무 심해졌다며 아랫배를 부여잡고 선체에 기대어 쭈구려 앉았고, 보트는 속력을 내고 있었지만 도착하려면 한참이 남아 있었다. 어떡하지? 나는 바보같이 괜찮냐 물어보며 그저 안색을 살피는 일밖에 할 수가 없었다. 친구는 그럴 때마다 "응, 괜찮아.."만 힘없이 반복할 뿐이었다.
막상 섬에 도착하니 앉아있을 수만은 없어서 살살 둘러보았다. 친구는 보트에서 내리자 다행히 기운을 어느 정도 되찾은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난 속으로 걱정하면서도 괜히 내가 먼저 신경쓰면 미안해할까봐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던 것 같다. 나름의 배려랍시고 더 즐거운 척, 더 문제 없는 척. 하지만 어둑해진 시간 다시 돌아간 숙소에서 겨우 깨달았다. 실은 친구가 내내 괜찮지 않았었음을.
늦었지만 몇년이 지나고 전주에서 누군가의 진심 어린 배려를 받고 나니 비로소 그날의 일이 선명해졌다. 정말 바보였나 싶을 정도로. 당시 나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었다. 우리의 여행을 잘 해내기 위해서. 아마 친구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우리가 함께 하는 시간을 망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배려받고 싶은 속마음을 눌러가면서 서툴게 괜찮은 척 했던 거였다. 그 때의 내가 좀 더 나은 동행이었다면 "괜찮은 척 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냥 다음 배 타고 돌아가자."고 먼저 말해줬을텐데. 왜 그리 어려운 말도 아니었는데 쉽게 꺼내질 못했을까. 그랬으면 네가 좀 덜 아팠을까.
난 요즘에는 때로는 동행과 함께, 때로는 혼자서 여행을 떠난다. 동행과 함께하는 여행일지라도 중간중간 각자의 시간을 보낼 때가 있다. 그치만 그건 서로 다른 취향이나 결정을 존중하기 위함이지 혹시나 갈등이 생길까봐 회피하기 위함은 아니다. 함께 있는 동안 만큼은 여전히 '우리'의 시간을 잘 보내고 싶다. 나는 부족한 점이 많은 사람이니, 다음 번 여행에서도 배려심과 이기심 사이에서 헤맬지 모른다. 다만 '우리'가 되어 떠나는 여행을 앞두고 있을 때면 또 생각할 거다. 우리 함께하는 여행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