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부터 아내가 부산하다. 뭔 일로 그렇게 부산을 떠는지 눈치를 살피고 있는데, 모두 나오라는 호출이 떨어졌다. 전을 부쳐야 한다면서 작업지시를 했다. 나는 배추전을 좋아해서 배추전을 맡았다. 막내는 동태전, 굴전, 연근전을 부치기로 했다. 아내는 막내를 도우면서 총감독도 겸한다. 장남은 갖가지 잔심부름 담당이다. 부엌이 후라이팬 두 개면 딱 이어서, 부득이 일을 그리 나눴다. “배추 좀 씻으라”, “막걸리 사와라”, “후라이팬 닦게 휴지 좀 갖다 다오” “창문 열어라, 초미세먼지에 질식하겠다” 이런 건 다 장남 몫이다. 난 배추전을 직접 부쳐보진 않았어도 어깨 너머로 종종 보기는 해서 대충 요령은 안다. 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들기름을 몇 방울 친 다음 달군다. 배추에 밀가루 반죽을 묻혀서 후라이팬에 얹고 적절히 익혀지길 기다렸다가 뒤집기를 반복한다. 이 정도야 식은 죽 먹기다.
아내는 명절 때마다 전 부치기가 힘들다고 투정하면서도, 은연중에 유세를 부렸었다. 별 것도 아닌 걸 가지고 말이다. “내가 배추전이 어떤 건지 한번 보여 줄게”라고 일단 큰 소리부터 쳤다. 아내 코를 납작하게 해줄 요량이었지만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그만 전이 재대로 뒤집어지지 않아 떡이 되고 말았다. 잠시 기다리는 사이에 너무 타버리고, 만만치가 않다. 결국 아내가 쟁쟁대는 소리를 감내해야 했다. “전이 좀더 익은 다음에 뒤집어라”, “후라이팬이 달궈지면 불을 낮춰라” “후라이팬이 더럽다. 좀 닦아라” 그렇게 장장 세시간이 넘게 잔소리에 묻혀 정신 없이 꼬박 일만 했다. 두 아들은 설 연휴를 맞아 오랜만에 푹 쉬려고 했겠지만, 차라리 직장에 나가는 편이 편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막내가 “앞으론 전 대신에 피자로 하면 어떻겠느냐”고 할만도 했다. 그래도 큰 형수님이 맡겨준 걸 내 마음대로 바꿀 수야 없지 않은가? 아내도 여전히 차례상에는 전이 꼭 있어야 하는 줄로만 안다.
일을 마치고 막걸리 파티가 벌어졌다. 아내도 두 아들도 갓 부친 배추전을 안주 삼아 한잔씩 들이켰다. 예전 설날에 고향에서 먹던 배추전하고는 또 다른 맛이다.“엄마, 시골에서는 누가 전을 부쳤었어?” 막내가 묻는 말에 아내가 어이없다는 듯이 “내가 부엌에서 종일 이렇게 만들었잖아. 너는 먹기만 하고 그것도 몰랐니?” 명절 때면 우린 가다서다를 반복하면서 일산에서 고향 상주까지 일곱 여덟 시간을 달려갔었다. 흩어졌던 형제들이 오랜만에 함께 모이면 자연스럽게 막걸리를 마시곤 했는데, 으레 배추전이 안주로 나왔다. 이런저런 이야기하면서 신나게 먹고 놀 동안, 아내는 형수님들과 둘러 앉아 전을 부치느라 여념이 없었다. 낯선 시갓집에 도착하자마자 잠시 쉴 틈도 없이 일만 했었다.
내가 결혼하고 처갓집에 보낸 이바지 음식에도 배추전이 있었던 모양이다. 처남이 “그 맛 참 이상하더라”고 해서, “몇 번만 먹어보세요, 자꾸 생각날 겁니다.”라고 한 적이 있다. 배추전은 경상도 음식이어서인지, 타 지방 사람들에겐 낯설고, 또 뭔 맛인지도 잘 모르는 듯하다. 서울 태생인 아내도 그랬었다. 하지만, 이젠 젓가락이 절로 간다고 할 만큼 즐겨 찾는 음식이 되었다. 개운하고 담백하여 먹을수록 당길 뿐 아니라, 배가 금방 꺼지니 느긋하게 앉아서 막걸리 안주로 삼기에 안성맞춤이다.
몇 해전 큰 형님이 제사를 물려받고부터 모든 게 바뀌었다. 울산 형님은 고향 상주로 부모님을 찾아가고, 나는 가까운 김포 큰 형님 댁으로 차례를 지내러 가게 되었다. 명절에도 이산가족이 된 것이다. 아버님이 편찮아서 먼 길을 다니시기 어려우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큰 형수님은 우리 보고 전만 장만해 오면 나머지는 다 준비해 놓겠다고 했다. 전이야 그냥 후라이팬으로 간단히 부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김포 큰 형님 댁이야 넘어지면 코 닿을 거리다. 부모님을 뵈러 갈 수 없어서 좀 아쉽긴 했지만, 명절이 참 편할 거리고 막연히 기대했다. 전 대신 다른 걸 맡았으면 정말 그랬을 것이다. 전을 맡지 말았어야 했다. 전을 부치는 게 어떤 건지 잘 아는 아내가 필사적으로 막았어야 했다.
큰 형님 댁에서 쇠는 첫 명절이다. 뭐든지 첫 번째를 잘 해놔야 한다. 그 다음부터는 그대로 이어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선지 아내는 지금까지 해 오던 차례 대신에 반드시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미리부터 조바심을 냈다. 나는 예배 순서지를 만들어 가방에 잘 챙겨 넣었다. 그런데 어째 전 보자기가 너무 빈약했다. 전날 온 식구가 다 함께 그 고생을 했는데도 막상 싸놓고 보니 초라하기가 그지없다. 결국 장남에게 과일도 한 박스 들게 해서 빈약함을 감추어야 했다.
형님은 절을 하고 조카가 술을 따랐다. 나도 같이 절을 했었지만, 아내가 조바심을 낸 덕분에 이제부턴 두 아들과 함께 뒤에 도열해 서있기로 했다. 좀 어색했지만 시간이 흐르면 익숙해 질 것이다. 차례상 위에는 과일과 고기, 떡, 미역탕국, 술 등 갖가지 음식이 푸짐하다. 보아하니 근사해 보이기는 해도 배추전 만큼은 힘들이지 않고 장만한 듯하다. 그런데 내가 부친 배추전이 정말 초라한 형색을 하고서 구석에 처박혀 있다. 내 일당이 얼만데, 들인 공으로 치면 가장 귀한 대접을 받아야 마땅하지 않은가?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곧 이어 예배까지 드리고 나니 배가 살살 고파왔다. 사실 차례고 예배고간에 음식을 앞에 두고 시간을 끄는 것은 참 고역이다. 뭐니뭐니해도 먹는 게 최고 아닌가? 음식이 한 상 차려져 나오자마자 나는 배추전에 먼저 손이 갔다. 이때가 아니면 맛보기 힘든 별미다. 고생한 보람이 있어선지 역시 최고다. 그런데 다들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맥이 풀릴 즈음 형수님이 젓가락으로 배추전을 하나 들어올렸다. 뭐라고 할까? 빈말이라도 호평일거야. 나도 모르게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거 탔잖아, 누가 부쳤어?”
순간 나도 모르게 아내 쪽을 힐끗 바라보며 책임을 돌리려 했다. 그러다 마지못해, “아, 그거 내가 했는데요”
하필이면 탄 걸 집어들 게 뭐람. 나름 고르고 골라서 담아왔는데도 그런 게 걸리다니, 속이 터질 노릇이다.
“처음 한 거 치고는 잘 했네, 맛있다”
마침 형님이 한 마다 거들었다. 그 한 마디가 내겐 배추전보다도 훨씬 더 맛깔스럽고 개운했다. 그제서야 먹을 맛이 나고 살맛이 났다.
전은 주로 어른들이 먹었다. 이럴 바엔 막내 말대로 피자로 바꿔야 하나? 피자는 고생할 필요도 없이 그냥 사기만 하면 그만이고, 제법 인기도 있을 것이다. 살아있는 사람이 편하고 잘 먹어야지, 죽은 사람이 먹을 리도 없지 않은가? 한번 하고 말 일이라면야 배추전이든 뭐든 상관없지만 때마다 하려니 사실 막막하다. 차라리 종일 걸려서라도 고향으로 달려가는 게 훨씬 편할지도 모를 일이다.
“형수님, 전 부치는 거 보통 일이 아니던데요, 이거 안 하면 안 되요?”
“정 힘들면 사와도 돼, 전도 파는 데가 있어”
그런데 아내가 초를 친다.
“사기는요? 정성껏 장만해야지요. 넷이서 하면 금방 해요. 배추전은 파는 데도 없고요”
정말 잘났다. 그 힘든 일을 앞으로도 계속 할 모양이다. 자기가 총감독인양 이것저것 시켜대더니 아예 생각까지 달라졌다. 가족이야 힘들든 말든, 마구 부려먹으면 그만이란 말인가? 이젠 이렇게 지내야 할 팔잔가 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예전이 좋았다. 고향 가는 길이 막히는 거 빼고는 다 좋았다. 놀고, 먹고, 자고, 그땐 참 좋았다. 호시절은 끝났다. 과거로 돌아갈 길은 막혔다. 뭔가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그냥 이대로 갈 것이다. 그나저나 아들녀석이 결혼이라도 좀 했으면 좋으련만.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면 새로운 세상이 열리게 마련 아닌가? 피자의 시대가 열릴까? 여행의 시대가 열릴까? 이미 저만치 앞서가는 집안들도 많다고 들었다. 그러면 혹 배추전이 영영 사라져 버리는 건 아닐까? 안되지, 그건 안되지. 절대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