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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 등기 한 번 해봤을 뿐인데

– 셀프 등기인의 불편함에서 시작된 디지털 공신력 혁신의 여정

by JM Lee

며칠 전, 지인의 부탁으로 법인관련 등기를 직접 처리하게 됐다. 처음엔 간단할 줄 알았다.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고, 온라인으로 신청하고, 수수료를 결제하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곧 알게 되었다. 한국의 등기 제도는 여전히 사법 중심의 관료제적 구조 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등기소는 법원 소속이다. 모든 절차는 ‘신중하게’ 진행되지만, 그 신중함이 반드시 ‘효율적’인 것은 아니다. 온라인 등기 시스템이 있긴 했지만, 복잡한 본인인증 절차와 의미 불명한 서식들, 그리고 전화로는 도저히 확인할 수 없는 친절함으로 인해 나는 결국 관할 등기소를 직접 찾아가야만 했다.
그 순간, 머릿속에 물음표가 생겼다.


“이건 국민을 위한 시스템이 맞는 걸까?”



1. 등기, 그 공적 증명의 구조적 모순


한국의 등기제도는 ‘등록주의’를 따르고 있다. 소유권 변동은 ‘등기’가 되어야 법적으로 인정된다. 그런데 중요한 건, 이 등기가 실제 권리관계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체관계와 등기 불일치: 부동산 계약은 했지만 등기를 하지 않는 사례, 의외로 많다. 국토부의 자료에 따르면 중소도시 기준으로도 3~5% 정도 발생한다고 한다.


공신력 부재: 등기부에 있는 사람은 소유자로 ‘추정’될 뿐, 진짜 소유자라는 보장은 없다. 선의의 제3자조차 보호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한다.


등기비용의 장벽: 간단한 등기를 하더라도 법무사 수수료, 등록세 등으로 수십만 원이 추가된다. 나는 이번 해산등기에만 20만 원 가까이 들었다. ‘셀프 등기’를 했음에도.


이쯤 되자, 궁금해졌다. “다른 나라는 과연 어떻게 하고 있을까?”



2. 글로벌은 다르게 간다 – 일본, 독일, 미국, 그리고 스웨덴


일본은 등록주의를 따르며 등기 정보 열람이 제한적이고 공신력이 없다. 디지털화는 일부 진행 중이나 여전히 관료적이다. 독일은 권리공시주의로 공신력을 부여하지만, 공증인 제도와 복잡한 절차로 인해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든다. 미국은 기록주의로 정부가 소유권을 인증하지 않으며, 타이틀 보험과 민간 시장 중심으로 운영된다. 자율성이 높지만 지역마다 차이가 크다.


스웨덴은 권리공시주의와 공신력을 갖춘 국가로, 가장 미래지향적인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공신력 보유: 등기부 내용이 실제 권리와 일치하며 제3자 보호도 명확하다. 스웨덴의 등기정보는 법적 신뢰도가 높고, 국민 신뢰도 또한 압도적이다.

운영주체 일원화: 국토청(Lantmäteriet)이 등기, 지적, 세금 행정까지 단일 공공기관으로 통합 운영하며, 업무 간 연계성과 책임성이 탁월하다.

블록체인 시범 운영: 세계 최초로 블록체인 기반 등기 시스템을 시범 도입하여, 실험 결과 기존 2일 소요되던 부동산 거래 시간을 수 분으로 단축하는 데 성공하였다. 위변조가 불가능하며 거래의 자동화 가능성도 열어두었다.

AI + GIS 기반 통합: 등기정보와 지적도, 위치 정보를 AI와 GIS 기술로 통합하여 시각화 및 자동검증이 가능하다.

모든 정보 공개: 부동산 권리정보는 누구나 온라인에서 쉽게 열람할 수 있으며, 정보 접근성과 투명성 측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3. 한국형 스웨덴 모델을 상상하다


스웨덴은 분명 혁신적인 모델이지만, 항상 '최고'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먼저 법률 문화가 다르다. 스웨덴은 고도로 투명한 사회이고, 국민들이 정부 시스템을 신뢰하며 법적 분쟁이 적다. 반면, 한국·미국·일본 등은 사법 중심의 소유권 분쟁이 많은 나라로, 강한 공신력 부여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또한, 스웨덴은 부동산 투기나 명의신탁 관행이 거의 없다. 한국처럼 부동산이 사적 자산 축적 수단인 경우에는, 지나치게 투명한 정보 공개가 사생활 침해 등 역기능을 초래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스웨덴의 제도는 고도화된 디지털 인프라와 전 국민의 디지털 리터러시를 전제로 한다. 이는 개발도상국이나 법제 미비 국가에는 큰 진입 장벽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를 단순히 '스웨덴을 따라가자'가 아니라, **“한국적 조건을 반영한 맞춤형 스웨덴 모델”**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 핵심 전략 5가지

등기 주체 이관 및 통합 법원 소속 등기소 → 국토부 산하 ‘부동산정보청’으로 이관 등기·지적·거래신고·세무 시스템 일원화

AI + 블록체인 등기 플랫폼 구축 AI로 매매계약서 진위 확인 블록체인 기반 등기 기록으로 위조 불가 조건 충족 시 자동 등기 전환

정보공개 단계별 등급제 도입 1단계: 주소·면적·담보 여부 공개 2단계: 권리 변동 내역 (이해관계자만) 3단계: 민감정보 (본인만 열람)

공신력 도입 + 타이틀 보험 시범 시행 일정 조건 충족 시 공신력 부여 대규모 거래에 타이틀 보험 시범 적용

비용 절감 + 민간 혁신 확대 무인 등기소, 전자 등기앱 보급 프롭테크 기업이 등기 API 활용 가능



4. 기술은 준비됐다, 의지만 필요하다


스웨덴의 블록체인 실험은 이미 2017년에 시작됐다. 에스토니아는 e-ID로 모든 부동산 정보를 통합했고, 미국도 민간 보험 시스템으로 자율성을 높였다.


우리가 늦은 건 아니다. 그러나 서두를 필요는 있다. 등기제도는 단순한 행정의 문제가 아니다.


**국민의 재산권을 보호하고, 사회의 신뢰를 설계하는 ‘인프라’**다.


예상되는 기대효과는 다음과 같다.


우선, 등기 처리 시간은 현재 평균 3일 이상 걸리는 절차가 30분 이내로 대폭 단축될 수 있다. 이는 스웨덴과 에스토니아의 사례를 바탕으로 실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비용 절감 효과도 기대된다. 현재 등기에는 평균적으로 150만 원가량이 소요되는데, 전자 시스템 도입과 민간 경쟁 활성화를 통해 이를 5만 원에서 10만 원 수준으로 줄일 수 있다.


또한, 이중매매나 사기 등 부동산 관련 범죄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블록체인에 기반한 기록의 불변성과 AI를 통한 문서 검증이 적용되면, 연간 1,000건 이상의 사기 사례가 감소할 수 있다.


부동산 시장의 투명성도 획기적으로 향상될 수 있다. 거래 정보와 권리정보가 모두 공개될 경우, 시장 참여자들은 더 신뢰성 높은 데이터에 기반해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


민간 분야의 성장도 빼놓을 수 없다. 등기 데이터를 API로 개방하고 민간 활용을 장려하면, 프롭테크 산업을 중심으로 연간 1조 원 이상의 신규 시장이 창출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행정 예산 측면에서도 효과가 기대된다. 무인화와 전자화가 도입되면 등기소 인력과 업무 처리 지연으로 인한 행정 낭비가 줄어들고, 연간 수천억 원 이상의 예산이 절감될 수 있다.



✍️ 맺으며 – 셀프 등기인의 작은 제안


법인 해산 등기를 하며 겪은 불편함은, 한 개인의 행정 실수가 아니라 시스템 설계의 문제였다. 그 시스템은 더 나아질 수 있다. 국민 누구나 쉽게, 빠르게, 안전하게 자신의 권리를 증명할 수 있는 세상.

나는 그것을 ‘디지털 공신력’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 시작은, 오늘의 불편함을 어제의 방식으로 넘기지 않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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