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제가 인천국제공항공사 기획실에서 근무할 당시, 경영전략 업무를 수행하며 가장 민감하고 뜨거운 이슈 중 하나는 단연 항공기 제작사의 미래 전략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특히 **보잉(Boeing)**과 에어버스(Airbus) 두 글로벌 항공기 제작사의 상반된 시장 예측과 전략이 업계 전반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키고 있었는데, 이는 단순한 기체 개발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공항의 인프라 설계 방향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의사결정과 직결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보잉은 항공시장의 향후 트렌드를 Point-to-Point 모델, 즉 거점 없이 도시 간 직항 네트워크가 중심이 될 것으로 내다보았습니다. 이에 따라 기존 대형기보다 연료 효율성이 높고 다양한 공항에서 운항이 가능한 중형 장거리 항공기 B787 드림라이너(Dreamliner) 개발을 추진했습니다. 이 기체는 장거리 노선을 직항으로 연결하면서도 연료 소모와 탄소배출을 크게 줄일 수 있는 기술적 진보를 제시했고, 결과적으로 항공사들의 비용 절감과 유연한 기단 운영에 이상적인 선택지가 되었습니다.
반면, 에어버스는 기존의 대륙 간 이동과 환승 중심의 Hub-and-Spoke(허브-스포크) 모델이 지속적으로 지배적인 구조일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이에 따라 항공 수요가 집중되는 허브공항에 초대형 항공기를 투입해 공급 효율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을 세우고, 역사상 가장 큰 여객기인 A380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A380은 최대 800명 이상 탑승이 가능하고, 2층 구조로 설계된 기체 크기만큼 항공사에게 높은 수익성을 안겨줄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지만, 이 거대한 기체는 예기치 못한 인프라 문제를 동반했습니다.
특히 인천국제공항조차도 이 초대형 기체의 운항을 위해 제2단계 확장사업 당시 터미널 및 계류장 설계를 대폭 수정해야 했습니다. 계류장 폭을 넓히고, 탑승교를 이중화하며, 활주로와 유도로 구조까지 일부 변경해야 했습니다. 공항 설계 초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복잡한 요구사항이 후반부에 반영되면서, 전체 공정과 예산에도 영향을 미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시장은 보잉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A380은 소수의 항공사에 의해 제한적으로 도입되었고, 기체 유지비와 운항 유연성 문제로 인해 점차 퇴출 수순을 밟았습니다. 반면 B787은 항공사들의 중장거리 노선 확대 전략에 부합하며 전 세계 항공기 발주량의 중심으로 자리잡았고, 오늘날 항공업계의 '주력기종'으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이 사례는 단순히 항공기 판매 경쟁에서의 승패를 넘어, 항공기 제작사의 전략이 공항 인프라의 구조, 투자 우선순위, 장기 개발계획에까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산업 전반에 각인시킨 사건이었습니다. 이후 전 세계 주요 공항들은 단순히 초대형 기체 수용을 위한 인프라 확장보다는, 다양한 항공기와 운항 모델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설계와 기능 분산형 운영 시스템을 지향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다수의 공항이 허브공항보다는 지역거점공항(Mid-size Regional Hubs)과 연계한 네트워크 구조를 개발하며, 다중 활주로의 독립운영, 터미널 모듈화 설계, LCC 전용터미널 분리 운영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게 되었으며, 이는 공항 경영의 패러다임 전환으로 이어졌습니다.
즉, 항공기 제작사는 항공사만을 고객으로 두지 않습니다. 공항, 항공정책, 인프라 설계자, 정부, 투자자까지 그 전략의 파장은 전방위적입니다. 기체 하나의 설계방향이 전 세계 수십 개 공항의 설계 기준과 수용 능력을 바꾸고, 심지어 항공정책의 우선순위까지 바꾼다는 점에서, 항공산업의 본질은 "연결"을 넘어서 시스템 간의 상호의존성과 전략적 연쇄효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