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항공기 해체 산업

국내 법제도 현황과 해외 선진 사례 분석

by JM Lee

항공기 해체 산업은 단순한 ‘퇴역 항공기의 폐기’에서 그치지 않는, 고도화된 자원순환형 첨단 산업입니다. 항공기 한 대의 생애가 끝났다고 해서 모든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수천 개의 부품과 고급 소재는 여전히 경제적 가치를 가지며, 이를 분해·재활용·재사용하는 프로세스는 글로벌 항공 생태계의 필수 요소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여전히 이 분야에 대한 제도적 정비가 미비한 상황입니다.


이 글에서는 국내 항공기 해체 관련 법제도의 현황을 살펴보고, 글로벌 시장의 구조와 선진국 사례를 통해 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합니다.



대한민국 항공기 해체 관련 법제도 현황


1. 현행 항공법의 한계


대한민국의 현행 항공안전법에는 항공기 해체에 대한 기술적 기준, 절차적 정의, 인증 요건이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법률적으로 항공기를 해체하면 ‘말소 등록’을 해야 한다는 절차는 존재하지만, 해체에 이르는 과정 자체는 민간 기업의 자율적 판단에 맡겨져 있는 실정입니다.


항공안전법 제15조에서는 "항공기를 해체한 경우 말소 등록을 신청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 해체 작업을 어떤 장소에서, 어떤 자격을 가진 사업자가, 어떤 기준에 따라 수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규정은 부재합니다.


정비를 위한 분해와 해체는 구별되지 않고 있으며, 재활용 가능한 부품을 어떤 기준으로 보관·판매할 수 있는지도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러한 제도 공백은 시장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으며, 중고부품의 재사용 안전성, 부품 이력 추적성, 친환경 해체 작업 여부 등에 대한 공신력을 낮추는 원인이 됩니다.



2. 현실에서의 사례와 충돌


대표적인 사례는 2023년 대한항공이 퇴역 항공기를 인천공항 내에서 자체 해체한 사건입니다. 이는 공항 부지에서 공식 허가 없이 진행된 것으로 간주되어 논란이 되었으며, 항공기 해체가 자원순환산업이자 항공안전과 환경문제를 동반하는 고위험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제도적 감시나 인증 없이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분해된 부품의 재활용 여부, 추적성, 인증 여부는 명확하지 않았으며,


항공기 동체를 잘라낸 금속 판넬을 활용해 기념품(네임택, 볼마커 등)으로 제작한 부분은 민간 창의력의 결과였지만, 이에 대한 법적 해석도 모호했습니다.




해외 항공기 해체 산업의 현황과 구조


1. 시장 규모 및 성장성


글로벌 항공기 해체 산업은 2023년 약 80억 달러 규모로 평가되며, 2033년까지 약 147억 달러에 이를 전망입니다. 연평균 성장률(CAGR)은 6% 이상이며, 특히 신재생 자원 순환, 항공사 비용 절감, ESG 전략 강화 흐름과 맞물려 더욱 확대되고 있습니다.


매년 약 400~500대의 항공기가 해체되며,

향후 20년간 퇴역 대상 항공기는 8,000대를 넘어설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산업의 크기를 넘어 항공정비(MRO), 자원 재활용, 교육, 부품 인증 시장과의 융합 성장 가능성을 내포한 분야입니다.


2. 선진국의 해체 클러스터 사례


프랑스 Chateauroux 공항: Bartin Aero Recycling이 주도하는 항공기 해체 전문단지. 연간 수십 대의 항공기를 해체하며, ‘괴물(Monster)’이라 불리는 초대형 분쇄장비로 동체 해체를 4시간 내에 완료. 재활용률 80% 이상.

미국 애리조나 Pinal Airpark: 세계 최대 규모 ‘항공기 무덤’ 중 하나. 사막 기후를 이용해 부품 부식 없이 장기 보관 가능. 은퇴 항공기의 부품을 기술 인증 후 재시장에 재투입.


이들 국가는 공항 인근 또는 항공기 전용 해체구역을 별도로 지정하여 운영하고 있으며, 관련 작업은 모두 환경 규정과 항공안전 기준에 따라 엄격히 관리됩니다.


3. 항공기 해체의 세부 프로세스


항공기 해체는 다단계로 구성된 정밀 공정입니다.

1단계: 항공기 운항 종료 및 말소 등록

2단계: 주요 장비(엔진, APU, 랜딩기어 등) 분리 및 상태 진단

3단계: 기체 구조물 해체 → 알루미늄, 티타늄, 탄소복합소재 분리

4단계: 부품 정비 및 인증 → 중고부품(USM) 시장에 재투입

5단계: 재사용 불가능 자재는 고철화 또는 화학 재처리



MRO 산업과의 연계성


항공기 해체 산업은 **MRO 산업(Maintenance, Repair, Overhaul)**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해체된 부품의 정비, 재인증, 유통은 MRO 전문 기술을 통해 이루어지며, 이 두 산업의 연계와 동시 성장은 항공산업 생태계의 지속성을 높이는 핵심 전략입니다.


싱가포르: 아시아 정비시장 점유율 25%. 정부 주도 하에 항공 MRO 클러스터를 조성하고, 해체 부품 재활용까지 연결된 통합 시스템 구축.

루프트한자 테크닉: 해체된 부품을 자체적으로 수리·개조하여 타 항공사에 공급. 연간 수천억 원의 수익 창출.


한국은 아직 MRO와 해체 산업이 분절되어 있으며, 항공기 생애주기(Lifecycle) 개념이 산업 전반에 자리 잡지 못한 상태입니다.



국내 항공기 해체 시도와 업사이클링 사례


대한항공: 2020년 B777-200 기체 해체 → 부품은 정비 또는 부품 재고화, 동체는 기념품 제작. ‘파트아웃(Part-out)’ 개념을 국내에 도입한 첫 사례 중 하나.

업사이클링 시도: 기체 동체를 절단하여 만든 한정판 네임택, 골프 용품, 키링 등이 출시 하루 만에 매진될 정도로 큰 관심을 받음. 이는 항공문화와 소비자 경험을 연결한 창의적 모델로 평가됨.



향후 과제 및 정책 제언


1. 법제도 정비


항공기 해체에 대한 법적 정의 명확화 필요

해체 작업 기준, 환경 규제, 부품 재활용 인증 체계 마련

전문 작업장 지정제도, 인허가 요건 설정


2. 산업 생태계 구축


공항 내 또는 인근에 항공기 해체 전용단지 조성

MRO, 인증기관, 부품유통사, 연구소 등과의 클러스터 형성

지방공항 유휴부지를 해체 클러스터로 전환 가능성 고려


3. 인력 및 기술 인프라 확보


항공 해체 전문 기술자 양성 교육과정 개설

정비·재활용 기술 연구개발(R&D) 지원

대학 및 전문교육기관과의 연계 강화


4. ESG·친환경 정책과의 통합


항공기 해체 산업을 탄소중립 전략의 일환으로 포함

재활용 자재 인증 시스템 마련 → 항공사 ESG 경영 지표로 활용



결론


항공기 해체 산업은 단순한 폐기 산업이 아닙니다. 이는 항공기의 **생애주기 관리(Lifecycle Management)**의 종착점이며, 정비, 환경, 기술, 소비자 문화가 융합되는 복합 고부가가치 산업입니다. 대한민국은 항공운송 분야에서는 강국이지만, 여전히 이 분야에 대한 법적·제도적 기반은 취약합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부의 전략적 관점과 실질적 지원, 그리고 업계의 기술 내재화와 도전 정신입니다. 항공기 해체 산업을 본격적으로 육성하는 것은 한국 항공산업의 다음 성장축을 만드는 것과도 다름없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항공기 제조 전략이 공항 설계를 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