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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음식이 전 세계를 움직이는 이유

감각의 과학, 문화의 속도, 그리고 한 사회의 진화

by JM Lee

예전엔 솔직히 몰랐습니다.

왜 우리가 먹고, 입고, 즐기던 것들이 갑자기 세계 곳곳에서 유행처럼 번지는지 말입니다.

K-pop은 그렇다 쳐도, 김밥이나 떡볶이, 김치볶음밥 같은 익숙한 음식이 외국인들의 SNS 피드에 등장하는 걸 처음 봤을 때, 한편으론 신기하고, 또 한편으론 의아했습니다.


‘정말 이게 그렇게 특별한 걸까? 우리가 예전부터 먹던 그건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심리학자 김경일, 뇌과학자 장동선, 셰프 홍신애 세 사람이 나눈 대화를 듣게 됐습니다.


처음엔 그냥 흘려들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고개가 끄덕여지고 있었습니다.
‘아, 그래서 그랬던 거구나.’
그들의 이야기는 단지 전문가의 분석이 아니라, 제 경험과 생각을 꿰어주는 실마리 같았습니다.



한국의 트렌드는 왜 이렇게 빠를까 — 속도의 이유


제가 처음 느낀 건 한국에서 트렌드가 정말 빨리 바뀐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어제까지 줄 서서 먹던 디저트가, 일주일만 지나면 ‘너무 유행 탄다’는 이유로 외면받는 일이 흔했습니다.
그게 단순히 사람들의 변덕 때문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김경일 교수의 말에 제가 몰랐던 맥락이 담겨 있었습니다.
한국은 문화적으로 단일하지만 심리적으로는 서로를 아주 민감하게 의식하는 사회라는 것.
‘남들이 뭘 좋아하는지’에 귀를 기울이고, ‘나도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빠르게 움직인다는 겁니다.

제가 어릴 때만 해도 가족 단위, 학교 단위로 집단 속에서 눈치를 보는 문화가 익숙했습니다.


누구보다 먼저 뭔가를 시도하기도 하고, 동시에 남들과 다르면 튀지 않으려 애쓰기도 했습니다.
이런 ‘눈치+속도’의 구조가 한국 트렌드의 진짜 동력이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 속도는 단지 피로한 소비를 만드는 게 아니라, 세계가 따라올 수 없는 실험과 진화의 장이 되어주고 있었습니다.



‘맛있다’는 말 뒤에서 벌어지는 뇌의 반응


맛은 늘 감각적인 것이라 생각했지만, ‘왜 이 음식이 특별하게 느껴질까’를 깊게 생각해본 적은 많지 않았습니다.

장동선 박사의 설명을 들으며 처음 알게 된 건, 우리가 ‘맛있다’고 느낄 때 뇌가 어떤 방식으로 보상을 받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기대했던 맛과 실제의 맛이 다를 때, 그 차이가 도파민이라는 물질을 통해 쾌감을 준다는 말에 무릎을 쳤습니다.

문어가 탱글거릴 줄 알았는데 부드럽게 씹힐 때, 고소할 줄 알았는데 새콤한 맛이 먼저 튀어나올 때,
저는 늘 ‘오, 이건 좀 신기한데?’ 하며 즐거워했는데, 그게 단순히 입맛의 문제가 아니라 예상과 실제의 간극이 주는 쾌감이었던 겁니다.


그리고 이것은 단지 맛에 국한되지 않고, 우리의 감정에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말에 더 놀랐습니다.
기대보다 못한 건 실망이고, 기대 이상은 기쁨이라는 당연한 사실이 뇌과학적으로 그렇게 정교하게 설명될 수 있다는 것.

맛있는 한입 뒤에 뇌의 보상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맛’에 대한 제 인식을 바꿔놓았습니다.

‘맛’은 단지 입안의 반응이 아니라, 기억, 감정, 그리고 이야기와도 깊이 연결된 뇌 전체의 경험이었던 겁니다.



셰프는 감각의 예술가 — 감각은 훈련되고, 일부는 타고난다


제가 요리를 좋아하게 된 건 대학 시절이었습니다.
혼자 자취하며 만든 김치볶음밥이 제법 맛있다고 생각했지만, 친구들이 먹고 감탄했을 때는 내심 우쭐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똑같은 재료와 방법으로 만들었는데도 *‘오늘은 왜 이 맛이 안 나지?’*라는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 때부터 감각이란 무엇일까 고민하게 됐고, 홍신애 셰프의 말이 크게 와닿았습니다.

그녀는 “맛의 훈련은 80%까지 가능하지만, 나머지 20%는 타고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요리라는 게 단지 레시피를 따라하는 기술이 아니라, 아주 미세한 감각의 예술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국물의 염도, 식감의 밸런스, 향의 조화… 이런 것들은 책으로 배울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이걸 듣고 나서, 제가 좋아하는 맛집 셰프들이 왜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반복 실험을 하며 감각을 다듬는지를 이해하게 됐습니다.

그건 ‘기술의 반복’이 아니라, ‘감각을 훈련하는 과정’이자, 예술가로서의 수련이었던 겁니다.
그리고 한국은 이런 감각 예술가들이 끊임없이 실험할 수 있는, 아주 독특한 환경을 갖춘 사회였습니다.



음식은 문화고, 문화는 심리다.


한국 음식이 전 세계를 사로잡은 이유는 단순히 맛이 뛰어나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음식이 정서를 전달하고, 문화를 담고, 심리를 작동시키는 매개체였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의 명절 음식은 단순한 요리가 아니라 가족 구성원 간의 역할과 정체성을 상징하는 문화적 행위였습니다.

‘엄마의 김치찌개’, ‘할머니의 된장국’은 단지 재료의 조합이 아니라 추억과 정서를 자극하는 감각적 기억이었습니다.


이러한 감성은 해외에 진출한 한국 음식 브랜드에도 반영되었습니다.
프랑스 파리의 ‘파리바게트’가 현지에서 성공한 것은 단지 빵의 품질 때문만이 아니라, 현지 정서를 읽고 감성적으로 접근한 한국식 감각의 결과였습니다.


공간의 디자인, 음료의 구성, 매장의 분위기까지 모두 문화적 기획의 산물이었습니다.
한국 요식업은 단지 먹거리를 제공하는 산업이 아니라, 감정을 설계하고 경험을 판매하는 복합 문화산업이었습니다.



왜 트렌드가 한국에서 먼저 시작되는가?


대구 수성구가 서울보다 트렌드의 발신지로 주목받는 현상은, 소규모 지역의 긴밀한 커뮤니티 구조 덕분입니다. 작은 사회일수록 서로를 더 의식하고, 정보 교환이 빠르며, 실험적 제안에 더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이러한 지역 단위의 실험은 곧 전국 단위 트렌드로 이어졌고, 한국의 음식 산업은 이를 적극 활용합니다.

특히 디저트나 신메뉴의 경우, 소비자들은 단순히 원하는 걸 먹는 것이 아니라, 셰프가 제안한 감각을 받아들이는 구조로 움직입니다.


이처럼 한국은 제안→수용→변화의 사이클이 빠르게 이루어지는 역동적인 시장입니다.

그리고 이 구조는 한국 음식이 전 세계에 수출되는 과정에서도 강력한 기반이 되고 있습니다.

한국은 문화 실험의 마이크로 랩으로, 세계 트렌드의 전진 기지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은 실험실 안에 있다


한국은 지금도 문화와 감각의 실험실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제안을 만들고 수용하고 진화시키는 중이라는 사실을요.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음식이 있습니다.
맛은 단지 혀의 문제가 아니라, 기억과 감정, 그리고 감각이 교차하는 문화적 사건입니다.


이제 한국의 김치볶음밥, 달고나, 떡볶이는 단지 메뉴가 아니라, 이야기를 담은 하나의 메시지입니다.
그 메시지가 지금 세계 사람들의 입맛을 자극하고 있고, 그 안에서 한국이라는 감각 실험실은 더욱 깊이, 넓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vlvbdmXu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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