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얘기는 험담으로도 끝이 없고 자식얘기는 칭찬으로도 끝이 없는 내가 이상한 사람일까.
남편과 살아온 시간은 어언 30년이 넘었다.
남편과 나, 둘 다 연애에는 소질 없고 주변머리 없이 맹탕 같은 성격들이었다. 당시 흔했던 중매, 요즘 식 소개팅으로 만나 결혼했다. 교제기간을 1년이나 거쳤는데도 서로의 결정적인 성격파악엔 실패했다. 결혼 후 10여 년을 피 터지게 싸웠으니 말이다. 연애 경험이 전무하니 실전인 결혼의 성공은 어림없는 기대였다.
직설적 기질의 불의 성향인 나. 소심한 내향적 성향의 물의 기질인 남편.
물불 안 가리고 매사에 앞장서는 직진 본능 아내를 참고 또 참다가 물이 아닌 얼음으로 되갚아 주는 남편, 상극의 두 사람이 만난 것이다.
금성여자 화성남자처럼 우리는 각자의 언어로 자신만의 세상을 서로에게 강요했다. 10년을 싸웠고 그 후 10년은 맞추어보려다 다시 싸웠고 최근의 10여 년은 평행선을 그어놓은 각자의 방식으로 살고 있다.
말 많은 나는 하루종일 떠들던 직업에서 벗어나 집에 들어온 순간부터 조용한 명상분위기로 휴식을 취하는 패턴이 적절하다.
나와달리 말없던 남편이 갱년기를 맞아서인지 어느 날부터 말을 걸어오는 빈도가 높아졌다. 나는 TV 삼매경에 돌입, 대화를 원천 봉쇄하는 나름의 비책을 발휘했다. 그토록 대화를 원했었기에 부처님처럼 묵묵부답 말없던 남편의 변화는 뜻밖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말 많은 여자가 거부하는 부부의 변이가 발생한 것이다.
'우리는 정말 맞지 않아'가 정답이었다.
눈치코치 없던 남편은 자기중심 여자의 삼매경수법에 적응하며 휴식모드의 고유 공간에서 유튜브마니아가 되었다. 각자의 하루 패턴이 정해졌으니 이게 바로 윈윈이 아니겠는가. 서로에게 바람직한 상태임이 분명하다.
[부부 감정치유]의 저자 심리학교수 죤 가트맨이 분류한 부부의 추상적 공간은 '좋음' '중립' '끔찍' 이란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서로의 의견일치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행복한 부부는 65%의 시간을 '중립'의 시간에서 보내는 반면 불행한 부부는 45%를 보낸다고 한다. 또한 20%의 차이가 이혼의 결과를 만든다며 이 끔찍의 상태를 바퀴벌레 숙소라고 명명한다.
우리 부부의 나란히 가는 중립의 상태가
바퀴벌레숙소를 만들지 않은 이유였다. 물론 좋음의 공간이 더 많다면 행복의 시간도 늘겠지만 '끔찍'의 상황이 멈춘 지금 우리는 편안하다.
'나이 들면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야 한다'는 누군가의 명언이 떠오른다.
나이 들면 부부야말로 꼭 필요한 때 입을 여는 적당한 거리 유지가 필수임을 믿는다.
유별난 듯 보이는 우리 부부 사는 모습에 이해인지 초월인 듯 무심한 작은 아들과 달리 큰 아들은 기회만 되면 우리 부부를 좋음의 공간으로 불러내려고 애쓴다.
이 나이쯤 되면 서로 붙어있는 모습이 특이한 거라고 설명해도 효자마인드의 큰 아들은 안 들리나 보다.
남편생일을 위한 이벤트로 우리 부부를 위해 호텔객실을 예약했다니 말이다.
유행 같은 성향분석인 MBTI에 나타난 E와 I 보다 극명하게 다르고 T와 F의 차이를 훨씬 뛰어넘게 다른 나와 남편이다. 이런 우리 부부에게 두 아들이 있어 감사한 결혼이다.
그럼에도 부러운 건 하나 있다.
공원 산책 길 두 손 꼭 잡은 내 또래의 남녀를 보며 불륜이거나 재혼일 거라고 킥킥대는 내 말을 백 퍼센트 공감해 주는 딸 가진 엄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