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처럼 살자는 말은 아니고, #예술적사유
빈센트 반 고흐에 관한 책을 읽고 있었어. 문득 그의 삶이 오늘날 취준생이나 방황하는 청춘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지. 나는 80만 취준생들, 혹은 꿈을 꾸고싶지만 힘든 청춘들에게 그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후기 인상파의 대표주자, 세계적인 천재 화가 등의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빈센트 반 고흐. 그의 걸작들은 현세에 천문학적인 가격으로 측정되지. 하지만 알 사람들은 알겠지만 고흐는 생전에 그림을 단 한 점밖에 팔지 못했어. 당시만 해도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는 화가가 아니었거든. 그의 청춘 시절은 여러모로 아주 지독한 일상의 연속이었지. 뭐 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고 말이야. 그럼에도 이상과 꿈으로 가득했지만 불안과 방황, 그리고 정신착란 등은 그의 발목을 계속해서 붙잡았지.
반 고흐의 그림과도 같은 짧고 강렬한 인생을 보고 있으니깐 말이야, 이시대 너와 나같은 젊은 청춘들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물론 내가 말하는 비교대상의 잣대는 반 고흐과 같은 비범한 예술성이 아니야. 고흐의 젊은 시절 불안과 방황이지. 우리는 간혹 학교에 다니면서, 취업을 준비하면서, 혹은 살아가면서, 꿈이 있거나 없거나, 사랑을 알거나 모르거나, 인간관계에 허덕이거나 혹은 ‘나’라는 존재가 무엇인지 알거나 모르거나와 같은 수많은 형체 없는 물음표에 둘러싸이고는 하니깐.
장담컨대 우리는 모두 그런 고민들을 하지. 하지만 애석하게도, 사람들은 보통 그런 고민을 하기 싫어하거나 단순한 슬럼프로 치환해버린다는 것이지. 그런 것들은 때로 심하게 변질되어 우울증이나 일종의 자괴감이나 패배의식 따위로 이어지기도 하거든. 요즘같이 나만 빼고 미친 듯이 흘러가는 세상이라고 느낄 때는 더더욱 말이야.
사실 그런 방황은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고결하고 아름다운 ‘시기’라고 생각해. 우리가 방황하고 힘든 이유는 간단해. 진실을 알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그 고난 속 숨겨진 ‘진실’을 쉽게 알지 못하기에 더 값진 것이겠지? 난 아주 조심스럽게 (결국 고흐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가 '진실보다 더 진실한 것을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
자꾸 진실진실 거리는데 ‘진실’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예를들어, 눈에 보이는 5만 원 권 20장은 확실히 100만 원이라는 물질적인 가치가 있잖아.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진실이지. 하지만 이것보다 훨씬 더 진실한 것은 무엇일까? 이것들보다 더 진실한 것은 내가 그리는 그림, 꿈, 미래와 같은 무형의 것들이야. 실재 하는 실체 이상이(이를테면 영혼이나 잠재적 가치)담겨있으니깐. 말도 안 되는 유토피아적 발상이냐며 반론할 수 있겠지만 이건 분명히 진실보다 더 진실일수도 있는 말이지.
애플의 스티브 잡스형은 생전에 '위대한 일을 하겠다'라는 가치를 품었다고 해. 그리고 단순히 돈을 벌어다 주는 전자기기가 아닌 예술적 가치가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했지. 공학과 예술의 만남이었지. 실제로 오늘날의 애플의 전자기기는 우리들에게 단순 전자제품의 가치를 너머 예술 작품과도 같은 이미지를 주고 있어. 그리고 현재 애플은 세계 시가총액 1위 물질적 가치가 따라왔어. 애플의 이천 조가 넘는 시가 총액보다 더 진실하고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백만 원을 훌쩍 넘는 아이폰? 고객 충성도? 애플의 베어먹은 사과 로고? 디자인? 아마 내생각에는 머리카락이 무성했던 시절 어린 잡스형이 갖고 있던 "위대한 가치를 가진 일을 하겠다"라는 작은 꿈이 아니었을까.
고흐는 자신이 쫓는 '진실'을 그림을 그리는 행위에서 찾았어. 사랑하거나 이별하거나 비가오나 눈이오나 돈이 있거나 없거나 모든 자신의 일상에서의 진실을 그림 그리는 행위에서 찾았어. 그리고 후대에 우리가 아는 화가 빈센트 반 고흐로 각인되었어. 이런 본질적인 문제는 사실 수백 년 전 셰익스피어 작품 속 덴마크 왕자 햄릿도 고민해온 문제였지. "사느냐 죽느냐 (To be or not to be)" 말이야.
나도 그런 생각 해봤거든, 내가 왜 살지?
반 고흐는 결코 모차르트나 베토벤처럼 6세 혹은 7세 때부터 어려운 클래식 피아노를 치는 선천적이거나 압도적인 재능을 보이지 않았어. 오히려 어떤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지. 심지어 그림을 그릴 때도 말이야.
심지어 반 고흐는 만 27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 한국 나이로 대략 29살에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한 거야. 그것도 아홉수에 말이지. 1880년이었어. 그리고 반 고흐는 1890년 만 37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는데 정작 그가 그림을 그린 기간은 10년이야. 그리고 그는 10년이라는 기간 동안 약 900여 점의 그림을 그리지.
30살이 다돼서야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고 불혹이 되기 전 사망할 것이며, 겨우 10년이라는 기간 동안 남긴 작품들 때문에 사후 위대한 화가가 될 것이라는 것을 그는 알았을까?
더 넓게 보려면, 숫자에 연연하지 말자. 숫자는 인간의 편의에 의해 만들었지 우주나 자연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회사에서는 숫자를 강요하지만 인생에서는 아닐수 있다. 이건 고흐 형이 어느정도 퀄리티로 증명해 주셨다.
천재적 재능으로 똘똘 뭉친 위인들의 교집합은 “My way” 지. 우린 아마 반 고흐의 인생 정도라면 묻지 마 마이웨이의 연속이 아니었을까? 하겠지. 하지만 아니야. (결론은 맞았지만.) 고흐는 오늘날의 많은 청춘들처럼 누구보다도 불안해하고 방황했어. 때로는 세상에 도태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외로움에 사묻혀 사랑을 갈구했어. 지독하게 괴로운 젊은 시절을 보내기도 했지. 그는 실제로 어른이 되어서도 반듯한 직장 하나 없이 경제적 자립을 하지 못하는 자신의 상태에 대한 비관을 했어. 또한 아버지로부터 받는 자신에 대한 한심한 눈길을 아주 많이 의식했으며 한평생 아버지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어 했지. 때로는 낮아진 자존감에, 주위의 기대와 의식속에 살아가는 우리 청춘과 너무도 비슷하지?
고흐는 목사의 집안에서 태어났어. 그는 어린 시절 돈벌이로 미술작품을 파는 화상일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그는 "가난한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이런 미술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나"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해. 세계적인 천재 화가가 했던 생각치고는 지나치게 현실적이지 않아?
고흐는 젊은 시절 어느 쪽에서도 쉽게 적응하지 못했어. 이후 신앙심을 바탕으로 좋은 전도를 하는 목사를 꿈꾸기도 했는데 성직자는 고흐와 맞지 않았지. 목사의 아들이기도 했던 고흐를 쉽게 내칠 수 없던 선교단체는 고흐를 탄광의 무급 조수로 일하도록 시켰어. 아마 자존심이 많이 상했겠지. 고흐의 신앙심은 흔들렸어. 동시에 그의 시선과 관심이 점점 비슷한 처지의 고달픈 광부들에 주목하게 돼. 그리고 고흐는 열악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겠다는 마음을 먹게 돼.
고흐의 인생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하는데, 그건 바로 가난하고 고달픈 자들, 즉 "소외된 것들에 대한 관심" 이였어. 고흐는 실제로 그들에게 위로가 되고 좋은 영향을 끼치고 싶었던 것이지.
그럼 반 고흐는 어떻게 수많은 걸작들을 남길 수 있었을까?
위에서 말한 것처럼,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대변하고 위로하는 그림을 그리겠다는 열망, 바로 이 작은 열망에서부터 시작이었어. 끝없는 방황 끝에 마침내 자신이 해야 하는 일,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은 거야. 그리고 주변으로부터 흔들릴 때마다 계속 그림을 그려나갔지.
열심히 노력했다가 나태해지고, 잘 참았다가 조급해지고,
희망에 부풀었다가 조급 해지는 일을 또다시 반복하고 있다.
그래도 계속해서 노력하면 수채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겠지.
그게 쉬운 일이었다면, 그 속에서 아무런 즐거움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야겠다.
- 빈센트 반 고흐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중>
빈센트 반 고흐는 미술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영혼을 담아 그리고 싶어 했어. 하지만 그에게도 모순이 좀 있었지. 과도한 음주나 문란한 생활을 하기도 했거든. 뿐만 아니라 본인의 귀를 자르고 자살시도까지 할 만큼 심리상태가 온전하지 못했어. 그리고 직장 하나 없이 평생 동생 테오에게 용돈을 받아쓰며 본인이 하고 싶은 그림만 그렸지. 그리고 사후, 그는 현대 미술의 가장 영향력 있는 위인이 되어있지. 생전 그의 드라마 같은 지독한 일상들은 분명 특이하지만 전부 본받을만한 내용은 아니야.
그런데 반 고흐는 왜 그렇게 까지 그림을 그렸어야 했을까? 싶더라고. 아니 인간적으로 너무 지독하잖아. 인생이. 그렇지 않아? 그는 무엇을 보고 어떤 것을 생각하고 느꼈길래 그렇게라도 그림을 그려야 했을까? 그의 예술이 생전 누구에게도 사랑받고 인정받지 못했는데 말이야.
그가 했던 말 중에서 그 물음의 힌트를 알 수 있었지.
"나는 학리적인 의미에서 정확한 형태를 그리고 싶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부정확함을, 그러한 뒤틀림을. 그러한 현실의 변형과 수정을 습득하는 것이 나의 최대의 열망입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거짓이라고 말하겠지만 이것이야말로 글자 그대로의 진실보다 더 진실하지 않겠습니까."
- 빈센트 반 고흐
그의 그림이 다소 유아스럽고 정상적이지 않다며 혹평하는 자들에 대한 반 고흐의 반론이었어. 알다시피 반 고흐 그림은 전반적으로 왜곡되어 있고 변형이 있어. 쉽게 말하면 반 고흐는 자신이 느끼고 생각하는 비사실적인 묘사가 사실적으로 그린 그림보다 더 진실하다는 힘을 믿는 화가였어. 자신만의 예술적 사유로 말이야.
그건 남들이 눈으로 보는 만큼만 보려 하지 않고, 자신만의 시각으로 모든 영혼과 내면의 본질을 보고, 느끼며, 그릴수 있는 능력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때로 너무 많은 것들을 단순한 시각과 수치에 의존해. 물론 오감에 의존한 생명체이니 맞는 말이 다만은, 우리들의 내면이나 잠재력까지 시각화할 수 있을까? 그건 인간의 오감 능력 밖이겠지. 반 고흐는 대자연의 가치와 인간의 영혼을 그린 화가라고 생각해. 인간의 시력으로는 쉽게 볼 수 없는 아름다움과 사랑을 그려내고, 보여주고, 또 나누고 싶었던 것이 그의 “꿈”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이처럼 ”보이는 것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은 사실 미시적인 양자물리학에서나 나올법한 멘트지. 달리 말해 (조금 끼워 맞춰보자면) 오히려 빈센트 반 고흐야 말로 미친 듯이 정교하고 과학적이며, 또 근거 있는 초월적인 화가이자 인간이었을 수도 있다는 말이지. 몇 수 앞을 내다본 예술가랄까.
결론은 지구인들의 시선과 숫자에 우리들을 함부로 끼워 맞추지 말자. 당장 눈에 담기는 세상이 절대 네 전부가 아닐테니 말이야.
우리는 우리 자체로도 또 다른 우주야.
"우리가 살아가야할 이유를 알게 되고, 자신이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존재가 아니라 무언가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사랑을 느낄 때인 것 같다."
- Vincent van Gogh (빈센트 반 고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