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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김치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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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X세기소년 Oct 19. 2020

MIND KIT #2

김치 미러




4.



 “민우 씨- “


 그렇게 한참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김대리가 민우를 불렀다.


 “야.”

 “네!”


 김대리는 실실 웃으며 핸드폰으로 민우를 스캔하고 있었다.


 ‘-위잉’


 마인드 키트의 스캔음이었다. 민우는 당황해 재빨리 몸을 숨겼지만 이미 늦었다. 다른 여직원은 김대리의 행동이 재미있다는 듯 실실거리며 같이 웃어댔다.


 “회사 재미없는데 이런 깜짝 이벤트라도 있어야지. 안 그래 최민우씨?” 김대리는 익살스러운 눈으로 민우에게 쏘아붙였다.


 “저 대리님 그래도 마인드 키트는 일반인한테 사용하는건 안 되는 건데..”

 “야, 누가 모르니. 그냥 웃자고 한 건데 그런 눈빛으로 죽자고 달려들면 결과가 궁금해지는데? 민우씨?” 김대리는 기분이 나빴는지 민우를 비꼬았다.


 이어서 김대리는 민우를 스캔한 파일을 전문가용 마인드 키트에 전송하려던 참이었다. 원래 허가가 나지 않았지만 보험사의 사망보험팀은 업무 특성상 예외였다. 정부나 경찰의 허가 없이 업무 목적에 한정하여 사용할 수 있었다. 물론 직원들에게 쓰는 것은 불법이지만 그 순간 김대리를 막을 방법은 없었다.


 “이것도 말이야, 업무의 일환이라고 민우 씨. 팀원끼리 서로 어떤 감정인지 이해하고 그래야지. 조금만 기다려봐. 이것도 내가 민우씨를 다 알아가는 과정이니깐...” 주위의 직원들은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그저 구경거리라도 난 듯 민우를 지켜보고 있었다. 민우는 오랜만에 느껴지는 감정에 몹시 불쾌해졌다. 그의 안에서는 참을수 없는 분노가 끓어 오르고 있었다. 


 “적당히... 하시죠 민우는 결국 못참고 말했다.

 “뭐?"

 "그만 하시라고요."

 "하, 뭐라고? 최민우 씨, 야, 이게 그렇게 기분 나빠? 장난도 못 쳐? 너 그거 지금 나한테 무슨 표정이야? 뭐 진짜 키트 한번 봐?” 김대리는 민우의 불쾌한 표정을 보고 흥분해 있었다. 김대리의 흥분에 사무실에는 정적이 흘렀다.


 “아, 아닙니다. 제, 제가 부끄러워서...” 민우는 순간 화를 주체 못한자신의 상태를 깨닫고 아차 싶었다. 그는 바로 꼬리를 내린 자신의 처지도 너무 수치스러웠다.


 김대리는 민우의 스캔본을 전문가용 마인드 키트 기기에 갖다 대려 하고 있었다. 민우는 그때 입안이 바싹 타들어 갈 것만 같았다. 마인드 키트가 상용화 되고 있었을 당시만 해도 모든 심리 항목에 있어 고위험 등급을 갖고 있던 그였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는 현재 몰래 정부에서 제공하는 안정제 복용을 비롯해 다양한 자택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다행히도 마인드 키트의 사용이 제한되어 민간기업들이 더이상 인사 채용에 있어 키트를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그 덕분에 민우은 기적처럼 취업을 할 수 있었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키트의 진단 결과 역시 숨길 수 있었다. 특히 어렵사리 들어온 첫 직장인만큼, 자신의 심리 수치를 들킬 수는 없었다. 쫓겨날게 뻔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런 김대리 같은 인간에게 자신의 약점을 들키기는 더욱더 싫었다. 


 “대리님, 부장님께서 찾으십니다.” 한창 분위기가 싸 해졌을 때 리셉션 직원이 김대리를 찾았다. 김대리는 아직 화가 가라앉지 않았는지 한숨을 크게 쉬며호흡을 가다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알겠어요.” 김대리는 민우를 쳐다보며 나갔다. 




5.



 점심시간이 끝나고 사무실에는 김대리를 비롯한 직원들이 모여있었다. 민우가 들어오자 모두들 민우를 쳐다보고 수군거렸다. 민우는 이쪽저쪽 눈치를 보았다. 자리에 앉자 김대리와 부장이 그의 자리로 다가왔다.


 “오늘까지만 일해.”

 “네?” 민우가 되물었다.

 “오늘까지만 일하라고.”

 “네? 왜, 뭐 때문에 그러시죠?”

 “너 같은 정신병자랑 어떻게 일하냐 우리가” 김대리가 대답했다. 그러자 부장 역시 김대리에게 손짓으로 사인을 보냈다. 김대리는 사무실 중앙으로 걸어가더니 손뼉을 치며 모든 사망보험팀의 직원들을 주목시켰다.

 “자, 오늘 우리 사보팀으로 첫 출근한 최민우 주임의 마인드 키트 진단 심리상태 결과 보고입니다.”

 “저, 대, 대리님! 부장님 그게 아니라... 대리님! 부장님!"


 민우는 화들짝 놀라 괴성을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많은 낯선이들이 그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민우에게는 너무 생생한 꿈이었다. 부끄러울 틈도 없이 민우의 신경은 쇠약해지고 또 예민해져 있었다. 등줄기에서는 차가운 식은땀 한줄 한줄이 느껴졌다. 승객들은 아직 호흡이 바빠 헐떡거리는 민우를 쳐다보았다. 그제서야 민우는 이곳이 퇴근시간 지하철임을 인지했다. 민우는 자신의 영혼이 너무 혐오스러워 좀처럼 견디기 힘들었다. 집에 가려면 한참이나 남았지만 중간 역에 내려 버렸다.


 “하, 씨발.”


 민우는 다음 지하철을 기다리며 힘없이 욕을 뱉어냈다. 그의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민우는 집에 들어가 맥주캔을 땄다. 그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었지만 도무지 화가 누그러들지 않았다. 그는 마인드 키트를 작동시켜 자신의 상태를 체크했다.


 폭력성 : 8 PF, 공황장애 : 6 PF, 조울 증세 : 7 PF 


 이러다가는 자기 자신의 상태에 질식해 죽어버리거나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그럴수록 더 분노가 치밀었다. 민우는 정부에서 제공하는 심리치료 영상을 틀고 명상을 시작했다.


 명상을 하자 어느정도 안정이 되는 듯 했다. 민우는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그리고 ‘사망보험 분석 조사 신청서’를 작성해 회사에 제출했다. 민우는 홀로 생각했다. 피추현. 모든 건 그놈으로부터 시작이었다. 죽어 마땅한 놈이지만 죽음으로 죗값이 치뤄질 인간은 아니었다. 확실한 죗 값을 치르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죽음을 맞이한 그에게 복수하는 유일한 방법은 유가족에게 들어갈 보험금 수령을 빼앗는 것이었다. 물론 죽은 그가 보험금을 받을 일은 없겠지만 그 괴물을 혈육이랍시고 빚어낸 그의 가족에게 돈이 지급될 생각을 하니 참을 수 없었다. 민우는 이 기회가 자신에게 있어 사적으로도 또 일적으로도, 아주 좋은 동기 부여라 생각했다. 이제 남은 건 그의 죽음을 '완벽한 자살'로 만드는 작업이었다.




6.



 민우는 어젯밤 조사 신청서를 제출하고 잠이 들며 생각했다. 앞으로 있을 회사 내 자신에게 쏟아지는 모든 모진 발언이나 행동에 대해 잘 인내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으면 그 또한 사라질 것이었다. 이러한 동기부여 덕분에 민우의 멘털은 한층 업그레이드된 듯했다.


 “민우 씨 좋은 아침.” 김대리가 민우를 향해 말했다.

 “네. 대리님 안녕하세요.” 민우가 대답했다.

 “아, 민우 씨, 잠깐 둘이 얘기 좀 할까?”


김대리는 탕비실로 민우를 데려갔다.


 “좋은 거 물었던데.”

 “네?”

 “피추현이 결재말이야.”

 “네... 그게”

 “내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게. 배당금이 크더라고. 그놈 설령 자살이라고 해도 절대 못 밝혀. 그놈들도 수를 다 써놨을 거라고. 괜히 사망 사건 건드럈다가 실패하면 완전히 좆되는거 알지? 그 다음부터는 일 못하게해. 야 씨 보험금 뺏어서 먹고 사는게 우린데, 일 못하게 하면 그냥 나가라는거잖아. 그래 안그래? 잘못하면 역으로 고소 먹고 골치 아파진다고. 그러니까 내 말은, 같이 하자는 거야. 7:3 내가 7. 내가 자살로 만들어줄게.” 김대리는 계속해서 민우를 강하게 몰아붙이며 설득했다.

 “야 이 새끼야. 너 실무 안 해봐서 모르잖아. 네가 나름 예리하게 잘 보긴 했는데, 괜히 실패하면 너만 힘들어져. 내가 도와줄게. 이거 마무리 잘되면 어차피 네 이름으로 결재 올라갈 거니깐 이득이기도 하고...”

 “... 저.”

 “너도 여기서 탈출해야지. 안 그래? 야, 정신 차려. 사보팀은 회사원도 정규직이 아니야. 언제까지 저승사자 할 거야 너랑 나랑.”

 “네.”


 민우는 결국 김대리의 제안을 수락하게 되었다. 사실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 오후 김대리와 민우는 피추현의 집에 찾아갔다. 유가족의 집에 들어가기 전, 김대리는 민우에게 보험사의 마크가 새겨진 뱃지를 주었다. 자세히 보니 뱃지에는 렌즈가 달려있었다.


 “소속감 같은거 일하라고 준거 같아? 티 내지말고 렌즈 안돌아가게 차.” 


  김대리는 마인드 키트가 담긴 가방을 민우에게 건네며 말했다. 


 "네" 민우는 황급히 주섬 주섬 뱃지를 자켓에 매달았다.

 "야, 너 실내에서 자켓 벗으면 어떡하려고?"

 "아, 안벗겠습니다"

 "아이 시발, 진짜. 누가 그 소리하래?"

 "죄송합니다."

 "넥타이에 차라고. 이 돌대가리 같은 새끼야. 생각을좀 해봐. 내가 무슨 수학 문제 풀라했어? 시발 덜 떨어진 새끼 진짜." 


 유가족들을 마주한 김대리는 계획대로 보험 보상지급팀인척 위장해 피추현의 유가족들에게 쉽게 접근했고 동시에 그들을 뱃지에 달린 렌즈를 통해 스캔했다. 아무리 국가에서 보험사에 마인드 키트의 사용을 승인해 주었다고 하여도, 이 방식은 엄연한 불법이었다. 하지만 만에 하나 결정적인 심리 수치 하나에서 결정적인 단서라도 하나 잡는다면 보험사 입장에서 보험금 지급처리를 취소시킬 수 있는 즉효의 방법이기도 했다.


 “보험직원으로서가 아닌, 저도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뭐라고 드릴 위로의 말씀이 없습니다. 상심이 말로 형용할 수 없으시겠죠.” 김대리는 눈물을 글썽이며 이런 가식적인 멘트들을 가족들 앞에서 남발하며 애도했다.


 핸드폰의 마인드 키트 앱과 연동되어 있는 뱃지 렌즈는 실시간으로 작동하며 유가족들을 스캔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유가족들 모두 행복 수치가 치솟고 있었다. 피추현의 부모와 누나는 각자 높은 수치의 기대와 희망심리를 띄고 있었다. 민우는 속으로 그들이 피추현 만큼이나 사악한 인간들이라 생각했다.


 미끼에 걸려든 유가족들에게, 김대리는 마치 한 마리의 하이에나처럼 능숙하고 조심스럽게, 사망보험금 지급액에 관련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가족 개개인의 심리 수치는 그때부터 대놓고 치솟았다. 심지어 그들은 흥분 증상과 불안증세의 수치가 오르기도 했는데, 이것은 보험금을 타면 누가 가져갈 것인가에 대한 각자의 기대심리로 해석될 수 있는 증거였다.


 김대리와 최민우에겐 희소식이었다. 사망자 직계 가족 구성원중 둘 이상 의심스러운 심리상태의 수치를 보인다면 법적으로 사망 보험금 지급 관련, 재검토와 사기 의심 수사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들이 얻은 단서는 충분하고 넘쳐나고 있었다.


 "그러면 보험금 처리는 언제쯤 되는 거죠?" 피추현의 어머니는 눈물을 닦으며 김대리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7.



 민우는 김대리와 피추현의 집에서 나왔다. 회사로 복귀하는 차 안에서 김대리는 뒷좌석에 앉아 내내 콧노래를 불러댔다. 민우는 운전을 하며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묘했다. 피추현의 죽음으로, 그의 가족들은 지금 행복했다. 마인드 키트를 썼다는 것이 무색할 만큼 그들의 행복은 표정에 여실히 드러났다. 어쨌든 조사는 성공적이었다. 피추현의 생전 마인드 키트 진단 결과와 가족들의 마인드 키트 진단 결과를 단서로 들이민다면 분명 사망 보상보험지급에 관한 재검토와 제재가 들어갈 것이었다. 민우는 김대리를 바라보며 참 지독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에게는 사망 분석 보험팀에서 일하다 보면 누구나 느낀다는 일말의 씁쓸함이나 죄책감 따위는 없는 듯했다. 그 모습은 마치 학창 시절 민우를 괴롭히던 피추 현처럼 민우에게 오버랩되었다.


 "참 징글징글하다 그렇지? 저것들도 가족이라고. 하하, 아까 봤냐? 씨발 6억이라니깐 신나 갖고, 봤지? 수치 올라가는 거. 흥분해서." 김대리는 뒷좌석에 앉아 손 머리를 뒤로 한 채 떠들어 댔다.


 "거봐, 인마 나랑 하길 잘했지? 너 인마 나 아니었으면 이렇게 쉽게 했겠냐? 불법이고 나발이고 증거 잡으면 이 바닥은 끝이야. 야, 그리고 솔직히 저런 악마 같은 새끼들이 돈타가 면 이 사회에 발전이 있겠냐? 막말로 죽은 아들놈 원한 풀어주는 거야 우리가." 김대리는 전자담배를 물고 창문을 내렸다. 민우는 김대리의 마지막 말이 거슬렸다. 그리고 운전대에서 앉아 분노를 삭이며 심호흡했다.


 둘은 회사에 복귀하자마자 키트 분석 결과를 증거로 보고서를 제출했다. 상부에서는 바로 사망 보험 재조사 착수에 대한 연락이 왔고, 사망 보험 부서 부장은 귀에 입이 걸려 김대리를 호출했다. 그리고 삼십 분 뒤 민우도 호출했다. 부장은 민우에게 피추현 사망 조사 전반에 관련된 모든 보고서와 결과를 김대리의 실적으로 넘기는 게 어떻겠냐며 제안했다. 말이 제안이지 일종의 통보와 비슷했다. 두 사람은 이미 말을 맞추어 놓았고 민우를 그를 설득시켰다. 민우는 내키지 않았지만 그들의 입맛에 맞추어 주기로 했다. 달리 거절할 방법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이 되자, 사건은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듯했다. 경찰은 보험지급 관련 재검토 요청을 승인했고 보험사는 유가족들에게 그들의 마인드 키트 결과 수치들을 증거로 압박을 가하고 있었다. 법적 공방으로 가더라도 가족들이 승소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김대리는 민우에게 마지막 합의 처리를 지시했다. 사망금 보험처리 재 수사에 있어 보험사가 아무리 명백한 증거를 잡았다 한들 유가족들의 서명과 사인이 필요했다. 따라서 보험사들은 이 과정에서 소정의 금액을 통해 유가족들과 합의를 보는 정책을 만들어 놨다. 물론 그 과정은 험난하기는 하지만 약점을 잡힌 유가족들은 결국 단 한 푼이라도 더 받아내고자 합의서에 사인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김대리는 그 업무를 민우에게 지시했다. 직접 가족들을 대면해야 했다.


 “네가 직접 해봐야지 실력도 늘지. 이번건 잘하면 너 이제부터 내 라인타는거야.” 가증스러운 김대리였지만 동시에 속으로 마음이 편해졌다. '이런 기쁜 순간을 혼자 처리할 수 있다니!' 싶었다. 피추현의 사망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 있어 민우는 늘 설렘을 느꼈다. 심지어 민우를 괴롭히던 불안증세 마저 사라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추피현의 사망 사건은 자신에게 있어 커리어와 보상 그 이상의 가치였다. 마침내 자신이 만든 이 드라마에서, 마지막 절정을 향해 가고 있었다.






 다음화에 이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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