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
함께 걷고 있을 때,
하늘에 갑자기 커다란 구멍이 생긴 적이 있었다.
거대한 균열이 우리만을 쏙 빨아들였고,
정신을 차렸을 때 우리는 둘만 있는 우주선 안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때 나는 아마
헝클어진 머리를 먼저 신경 썼던 것 같다.
옷매무새를 다듬고 있었고,
너는 아이폰 카메라를 켜
네 머리와 얼굴이 괜찮은지 확인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다 그만 깔깔 웃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게 신경 쓰이냐는 듯.
너는 겁에 질리기는커녕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호기심과 총기가 섞인 눈빛으로
발아래 점점 멀어져 가는 지구를 지긋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너에게는 꿈인 것처럼.
너는 갑자기 정신을 차린 듯 발을 동동 구르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나는 너의 뒤를 밟았다. 너는 내가 따라오는지 상관없이 계속 앞으로 향해 나아갔다.
걸음이 점점 빨라지는 너를 뒤로한 채 나는 아마 서서히 발걸음을 죽였던 것 같다.
우주선 복도 통로 사이로 너의 발자국 소리가 점점 옅어지고 있었다.
나는 그날 지구가 그립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