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존과 혁신의 다이내미즘

[ 사회혁신 영국기행 16.최종] 다음이 더 기대되는 코벤트리

by 이웃주민

https://brunch.co.kr/@jmseria/15


작별의 시간이다. 생에 소중한 순간을 새로운 땅에서, 그것도 사회를 이롭게 바꾸려는 시도로 움틀대는 곳에서 머무른 호사를 누렸다. 국경을 넘어 그들은 뜻을 같이하는 동료이자 친구들이다. 미처 선물로 줄만한 것들을 한국에서 가져오지 못했다. 아쉬운대로 아시안 마트에 가서 초코파이와 간식으로 할만한 한국 과자를 몇개 엄선해서 샀다. 그리고 옆서에 꾹꾹 눌러 편지를 썼다.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는 이 공간을 항상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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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CUSE 식구들이 준 선물박스 / 중: 떠나며 남긴 편지 / 우: 떠나는 날 엔터프라이즈 허브에서 CUSE 스텝들과 함께


마지막 날 들른 엔터프라이즈 허브에서, 줄곧 일정을 챙겨주었던 코벤트리대학 사회적기업(CUSE)의 마리아마와 동료 스텝들은 활짝 웃음을 지으며 “고맙다”고 말했다. 이어 옆서를 잘 보이는 선반 공간에 세워두었다. 그러고는 그들 역시 커다란 박스를 내게 안겨주었다. 잉글리시 티, 과자, 빵 초콜릿 등 간식류와 함께, 범상치 않아 보이는 커다란 맥주도 한병 함께 넣어주었다. 마리아마는 “브렉시트 반대와 이민자 포용기조를 주장하던 조 콕스 하원의원이 극우주의자에 의해 피살되고, 그 슬픔과 극복을 기념하기 위한 비영리기관에서 동참하는 양조장들과 함께 만든 것”이라고 했다. 떠나는 기차역에서 마셔보니 에일맥주의 진한 맛이 애잔한 사연과 더불어 그대로 전해졌다. CUSE와 코벤트리 혁신가들은 아무런 연고도 없이 대뜸 오겠다고 요청한 나를 고맙게도 따뜻하게 맞이해주었다. 떠나는 순간까지 감사한 마음이 컸다.



걸어가기로 했다. 싸이클 웍스(Cycle works) 숙소에서 짐을 가지고, 코벤트리 기차역까지 넉넉잡아 약 30분 걸리는 거리였다. 2주간 익숙하게 오가던 캠퍼스와 도심지를 차례로 지나가며 무거운 캐리어를 덜컹덜컹 끌었다. 신식 기숙사에서 콘크리트 도로인 링로드, 형형색색 젊은이들이 북적이는 캠퍼스 한복판, 중세를 보존한 도심지, 활기찬 쇼핑가, 그리고 다시 삭막한 링로드를 지나 코벤트리역에 당도했다. 변화무쌍한 다양한 얼굴의 코벤트리, 무너지고 쌓아올리고를 반복한 도시의 모습이 마지막 순간까지 엿보였다.


여전히 그리고 계속 코벤트리는 과거를 등에 엎고 부단히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가깝게는 2021년 문화도시 행사를 개최할 때 재생 분위기는 절정을 이룰 것이다. 폭격의 폐허에도 남아있는 대성당의 돌기둥처럼, 변하지 않는 코벤트리도 있을 것이다. 모던대학 코벤트리의 젊은 트렌디함이 생성하는, 변하고 새로 치장하는 코벤트리도 있을 것이다. 여러모로 다음 방문이 더 기대되는 코벤트리다.




# 로컬 더 들여다보기

코벤트리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지역박물관들: 교통뮤지움, 허버트뮤지움

(Coventry Transport Museum, Herbert Art Gallery & Museum)


코벤트리에 가면 꼭 들러야 할 곳이 있다. 수준급 박물관들이 바로 도심 가까이에 있다. 코벤트리 교통박물관과 허버트 아트갤러리&박물관, 두 곳 모두 흥미로운 컬렉션들로 보는 이를 맞이한다. 예술적 가치는 물론 코벤트리라는 도시의 굴곡진 역사 자체를 품고 있는 전시들이 많아서, 박물관을 가는 거 자체만으로도 도시의 파노라마를 한번에 품은 느낌을 들게 한다. 게다가 영국의 국공립 박물관은 무료이고 이곳들 역시 그러하다.


누구나 자유롭게 문턱 없이 드나들 수 있는 곳, 영국에도 많은 공공 공간, 서비스가 있겠지만, 이방인인 여행자로서 직관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영국의 공공성(Public)은 ‘프리패스’ 박물관들에 깃들어있다. 묻고 따지지 않는 열린 공간, 그것도 명작과 지역사회의 수작 등 최고의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는 곳의 무조건적인 개방, ‘공공 박물관’ 투어 만으로도 영국 여행은 의미가 있다.



교통 박물관: 자동차, 자전거 제조업 도시를 일목요연하게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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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 박물관(Coventry Transport Museum)은 ‘자전거 혹은 자동차’ 매니아라면 눈이 휘둥그레질 오리지널 전시물들을 보여준다. 코벤트리는 자전거 생산의 원조도시였다. 거기서 비롯해 영국의 대표 자동차 생산지(재규어 Jaguar 등)로 발전한 역사를 지녔다. 박물관은 코벤트리의 산업사를 1800년대 중후반 ‘자전거의 태동’부터 1980년대 이후 신식 ‘스포츠카’까지, 시간순서대로 동선을 꾸려서 관객들을 인도한다. 무려 240대 이상의 자동차와 상업용 운송수단, 100대 이상의 모터사이클, 200대 이상의 자전거들이 각자의 시간대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자전거만해도 참 다양하다. 시대별로 어떤 형태와 디자인이 유행을 했고, 기능적인 필요에 따라 변화해간 모습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중간중간 기념비적인 사건들도 배치해놨다. 1905년 한 공장에서 하루에 1369대의 자전거를 생산해 최대 신기록을 세웠다는, 이를 기념해 자본가, 노동자들이 함께 우르르 몰려나와 공장 앞에서 위풍당당하게 자전거를 샘플로 세워두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당시의 제조업 중심 시대상과 도시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1910년대를 넘어가면 오토바이, 자동차 등으로 교통수단이 진화한다. 옛날 흑백영화에서나 봤음직한 클래식 자동차들부터 도처에 널려있다. 당시만해도 자동차는 특권층만 탔을 것이고, 지금과 같은 대량생산이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자동차들의 디자인들이 다 제각각이다. 색깔도 형형색색. 함께 간 옆지기도 신났다. 녹색에 매끈하면서도 고풍스러운 디자인을 지닌 1938년대 자동차 앞에서 사진을 찍어달란다. 지나가던 중에 영국의 로얄패밀리, 와우, 여왕이 탔다는 모델까지 있다. 웅장하고 거대한 압도하는 검정색 클래식카다. 요즘으로 따지면 최고급 방탄카의 옛날 버전일 것이다. 이어서 코벤트리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2차대전의 폭격, 그로인한 자동차 등 제조업들이 어떻게 피해를 입었고 다시 어떤 방향으로 재건을 시작했는지 등등을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


자동차 산업의 특성은 강한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을 잉태하는 것이기도 하다. 박물관은 이러한 역사와 현상도 빠뜨리지 않은채 담고 있다. 화려했던 영국 제조업이 몰락하는 시간대를 지나가는 순간, 각종 거친 구호를 건 피켓과 파업 관련 전시물들이 관객들의 감각을 긴장하게 한다. 공권력은 “여기 선을 넘지 마시오”라고 내걸고 있고, 노동자들은 “공정 계약을 위한 파업”, “야근 수당 없이 야간 노동 없다”, “파업을 위해 노동자의 와이프들도 단결한다” 등등의 피켓으로 맞서고 있다. 그러나 결국 코벤트리와 영국의 자동차 산업은 몰락했다. 예컨대 모리스 엔진의 코벤트리 공장은 1981년 문을 닫았고, 그 결과 1500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실업자가 됐다. 당시의 신문기사, 문헌, 사진들을 박물관은 차곡차곡 그러나 한눈에 들어오게끔, 그 시절의 첨예한 갈등과 격동 속으로 안내한다.



하버트 박물관, 지역사회의 역동적인 시공간적 흐름을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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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버트 박물관(Herbert Art Gallery & Museum)은 코벤트리대학 본관 바로 건너편 항상 젊은 학생들로 북적이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처음에는 대학 건물인줄 알았다. 코벤트리의 기업인이자 자선가였던 알프레드 허버트 경(Sir Alfred Herbert)의 이름을 따서 1960년에 문을 열었다. 눈에띄는 컬렉션으로는 1800년대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의상전시, 그 중에서도 19세기를 보여주는 여성의류가 돋보인다고 꼽인다. 나아가 현대의 다문화적인 코벤트리의 모습을 반영하는 인종별, 커뮤니티별로 다채롭게 표출되고 있는 의류 아이템을 지속적으로 수집하며 전시의 폭을 넓히고 있다.


특히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코벤트리의 각 시대와 이슈에 따른 일상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는 지역 전시물들이었다. 일종의 아카이빙이기도 했다. 예컨대 19세기, 혹은 20세기 초반에 코벤트리안들은 어떤 방에서 어떤 가전제품 등을 쓰고 살았는지 소소한 일상의 물건들을 자연스럽게 전시해놓았다. 2차대전 공습 시절의 대피 방공호는 어떠하였는지, 싸이렌 소리가 어떻게 울려퍼졌는지, 폭격을 피해있으며 무료함과 불안함을 달래기 위해 ‘모노폴리’(MONOPOLY) 종이판 게임을 했던 흔적들도 고스란히 남겨두었다.


또한 코벤트리는 과거 제조업 일자리 수요, 1950~60년대의 재건 프로젝트 등으로 많은 이주민 노동자들을 불러들여 새로운 삶의 터전이 되기도 했다. 주로 남쪽 아시아, 캐리비언, 아일랜드 등에서 이주해왔다. 그들은 산업노동은 물론 국가의료체계(NHS)에서 간호사로 일한 사람도 많았다. 박물관은 “그들은 우리 사회에 녹아들면서도 지역의 삶과 문화를 더 풍요롭게 했다”고 설명했다.


“이주민들은 코벤트리에 영구히 정착해 살면서, 영국문화를 받아들이고 동화되어갔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들 스스로의 다양한 문화들을 통해 영국인들의 삶에도 많은 면에서 영향을 미쳤다.”


이주민 커뮤니티의 의상들, 새롭게 가져온 조리도구 등의 생활물품들 등 그들이 코벤트리에 심어놓은 문화와 삶의 흔적도 전시관 한편에 묵직한 자리를 차지했다. 또한 코벤트리안들이 겪었던 급격한 산업변화의 혼돈과 시민들 스스로 권리를 위해 투쟁했던 역사들도 중요하게 놓여져 있었다. 특히 1970년대 이후 경제적인 성공이 끝나고 쇠락이 시작된 시기, 낙관주의의 분위기가 완전히 사라지고 공장이 문을 닫고 해고의 일상화 등등 불안정과 대치가 만연했던 시기들을 아프게 조명해놓았다.


거기에 더해 한면을 크게 차지하여 수많은 여성들의 얼굴과 목소리가 담긴 수십개 스크린 영상물들이 쉼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여성으로서 지역사회에서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모순, 차별, 구조적인 억압이 있었는지, 그것을 어떻게 자각하고 행동해왔는지, 실제 주민들의 생생한 모습을 통해 나타났다. 한국은 물론 세계적인 센세이션을 주고 있는 ‘미투’(Me Too) 운동의 물결은 이런 풀뿌리 여성들의 부단한 자각과 행동으로부터 잉태되었을 것이다.



#부록1. 코벤트리 관련 정보

- 위치: 영국 잉글랜드 웨스트미들랜즈 주(West Midlands)

- 인구: 366,785명 (2018년 기준, 영국에서 17번째 규모)

- 도시의 대학: 코벤트리대학교(Coventry University), 워릭대학교(University of Warwick)

- 지방정부 구성: 시의회 노동당 39석(다수 집권당), 보수당 14석, 무소속 1석

- 사회적기업 도시 지위 획득(2016년, Social Enterprise Place city) from Social Enterprise UK

- 가는 법: 런던 유스턴(London Euston)역에서 기차로 약 1시간


#부록2. (연재에서 소개한) 코벤트리 사회혁신 그룹 관련 정보

- 코벤트리대학 사회적기업 웹사이트: www.coventry.ac.uk/cuse

- 코벤트리대학 엔터프라이즈 허브 주소: 5 Whitefriars St, Coventry CV1 2DS UK

- 코벤트리 사회적기업 도시: coventrysecity.com

- Priory Visitor Centre 웹사이트: www.coventrypriory.co.uk

- 돌봄 사회적기업/플랫폼 Carenet365 웹사이트: carenet365.org.uk

- 코벤트리 난민이주민센터 웹사이트: covrefugee.org

- 리얼 정크푸드 프로젝트 코벤트리 웹사이트: www.therealjunkfoodprojectcoventry.org

- Rising Cafe 웹사이트: www.risingcafe.co.uk/coventry



[이 연재를 엮고 보완하여 단행본으로 출판하였습니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6361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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