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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주민 Sep 02. 2021

요즘의 관계

쿨하게, 쿨하더라도, 그저 '쿨함'을 넘어

#1

밀레니얼은 우울의 감정이다.


도전, 자유로움, 당돌은 사실 일면일 뿐이다. 이유 모를 방황과 불안. 뿌리의 거세, 익히 알고 보아 왔던 전통적인 관계의 해체와 안갯속을 걷는듯한 대안의 모호함, 도래하지 않은 새로운 질서에 대한 혼돈, 의구심.


버스, 정류장이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돌이켜보니, 새천년이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개봉한 작품.

영화 <버스, 정류장> 스틸컷 중


“모르겠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고 살아야 하는 이유를....”


그들의 상처와 결핍은 전통적인 가난과 궁핍과는 다르다. 관계의 해체이고 배제다. 전형의 부재이다. 가장 가까이에, 의례 공기처럼 존재할 줄 알았던 둥지에서조차 따스함은커녕 냉소와 소외를 체감할 뿐이다. 슬픔은 부적응한, 혹은 방치된 순수한 자들의 몫이다.


그러나 결국 슬픔이 슬픔에게 말을 건넨다. 무표정의 교감일 뿐이라도 버스 옆자리에 같이 앉는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00병’, ‘00증’ 이란 전문화, 세분화된 용어로 사람을 분류하고 낙인을 매긴다. 그리고 피한다. 거르고 경계한다. 정상인을 찾아. 그러나 우리의 연대는 정상 범주 안에서만 작동할 수 없다.


결국 결핍과 아픔이 손을 내민다. 그대의 손으로, 너에게. 역시 아픈 나에게.



#2 요즘의 관계


엉기고 밀착, 일치단결, 집착하는 관계가 아닌, 쿨하면서도, 서로의 할 일과 안부를 묻고 잠정적인 쉼터가 되어주는 관계. 나로서, 너로서. 그러나 그저 쿨한 것만은 아닌 순간의 진심을 담아. 그리고 다시 각자의 자리로


On the other hand,

쿨한 관계가 어디까지 가능할까.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요즘 ‘것’들은 느슨하고 선 긋는 관계를 좋아한다, 상황 파악 못하고 38선을 넘어 관심 던지고 내밀고 들어가면 꼰대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쿨하게 아니면 말고 식의 건성스런 관심(같아 보이는)을 누가 좋아할까. 신뢰할까. 쿨함만으로 진심이 담길 수 없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반성이기도 하다. 결국 구체적인 말과 행위로 마일리지 쌓듯 신뢰와 경험과 정이 모인다. 실망스러울 땐 꺼내 쓰더라도 좀처럼 고갈되지 않는 관계의 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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