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2.23.
왜 하필 이곳이었을까. 하루라도 묻지 않은 적이 있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출동이었다.
망망대해 위에 떠있는 조각배 마냥 구급차는 심하게 흔들렸다. 손잡이 하나에 의지한 채로 고령의 환자의 가슴팍을 있는 힘껏 눌렀다. 갈비뼈가 부러지면서 손이 깊숙이 들어갔다. 옆에 앉은 반장님은 그 와중에도 어떻게든 인튜베이션(기도삽관)을 시도하고 계셨다. 슬쩍 고개를 들어 차창을 바라보았다. 병원까지는 불과 5분이 채 걸리지 않을 거리였다. 그러나 늘 느끼는 거지만 그 시간은 길었고, 순간순간은 마치 버퍼링에 걸린 것처럼 버벅거렸다.
“잠깐만!”
어느새 인튜베이션을 마치고 엠부백으로 산소를 넣어주던 반장님이 소리치며 나를 말렸다. 환자와 연결된 AED(자동 제세동기)에서 안내음과 함께 심전도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무덤 같은 정적이 흘렀다. 제발 돌아와 주기를. 나도 모르게 기도가 흘러나왔다. 잠시 후, 기계는 엄숙하게 선고했다. ‘전기 충격 치료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결국 그는 사망했다. 의사는 AED가 내렸던 이미 사망진단을 한 번 더 반복했다. 또다시 누군가의 죽음이었다. 익숙한 허무가 몰려왔다. 더 이상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반장님 한 분이 밖으로 나가셨다. 아마도 환자의 사망 사실을 가족들에게 알리려는 것이었다. 나는 환자에게 다가가 사용한 장비들을 수거했다. 환자를 바쳤던 들 것과 담요. AED 패치와 엠부백, 산소통까지도. 싸늘하게 식어버린 환자의 가슴 정중앙은 움푹 들어가 있었다. 그곳은 이미 멈춰버린 심장이 있는 자리였다.
응급실을 나서는데 환자의 보호자들이 보였다. 이미 고인이 된 그의 소식을 들은 그곳은 눈물과 흐느낌이 지배하는 중이었다. 타인의 죽음에 익숙해진 것과는 별개로, 타인의 슬픔에 마저 익숙해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최대한 눈을 마주치치 않은 채로 지나쳐 가려는데 그 중 하나가 나를 불러 세웠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 말을 하기 위해서였다.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이 빠져나가듯이 입속에서 맴돌던 말들이 자취를 감췄다. 얼결에 나도 모르게 그들을 따라 고개를 숙였다. 내게 인사했던 그녀는 다시 뒤돌아서 가족에게로 돌아갔다. 그 뒷모습이 화살처럼 내게로 날아와 가슴 깊숙이 박혔다. 들여다보면 내 가슴에도 움푹 파인 자리가 있을 것만 같은 알싸한 통증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돌아오는 길 위에서 나는 물었다. 왜 하필 이곳이었을까. 평소와 다름없이 식사하던 도중 갑작스런 호흡곤란과 함께 발작을 일으키며 쓰러진 환자는 옆에 있던 요양보호사 덕에 빠르게 심폐소생술을 받았다. 119 구급대원들 간의 손발도 잘 맞았고, 이송 역시 짧은 시간 내에 이뤄졌다. 다시 시간을 돌려 그 순간으로 돌아가더라도 그보다 더 잘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쨌거나 환자는 죽었다. 전쟁터로 따진다면 우리는 패잔병이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가족들은 우리에게 고맙다며 고개 숙여 인사 했다. 도대체 왜? 무슨 자격으로 우리가 감사 받을 수 있는 거지? 이미 환자는 죽어버렸잖아. 관자놀이가 쑤셔왔다. 부끄러웠다.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몰려왔다. 차라리 그들이 내게 보여준 게 원망이었다면, 감내하기가 더 쉬웠을까.
그 순간 무전기에서 우리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또다시 출동이었다. 고개를 돌려 MDT(출동지령단말기)를 바라보았다. 번화가에서 발생한 차대 보행자 교통사고였다. 사이렌이 울리고, 운전대를 잡은 반장님은 힘껏 엑셀레이터를 밟았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 환자는 도로의 가장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와 부딪혔다던 차량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뺑소니 사고인 모양이었다. 외상처치가방과 함께 부목을 들고 환자에게 다가갔다. 가까이서 살펴보니 환자의 발목이 심하게 돌아가 있었다. 골절이 의심되었다. 통증이 심할 것 같았다. 하지만 환자는 평온한 얼굴이었다. 반장님이 그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그가 대답을 위해 입을 열 때마다 알싸한 알코올 냄새가 풍겼다. 아무래도 술을 먹었나 보다. 그리고 그 술이 통증까지 잡아먹은 모양이었다.
부목을 감고 환자를 병원으로 이송했다. 환자는 가는 내내 조용했다. 보호자도 술을 먹은 것 같았지만 얌전했다. 문제는 병원에 도착해서 발생했다. 환자를 베드에 옮겨놓고 돌아가려는데 보호자가 씩씩거리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핸드폰이 떨어져 액정이 깨졌다는 이유였다. 남자 반장님이 나서서 보호자를 달랬다. 여자 반장님은 우선 내게 장비들을 가져다놓으라고 하셨다.
들 것을 끌고 응급실을 나가려는데 이번엔 보호자가 나를 막아 세웠다.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는데 어딜 도망 가냐면서. 그리곤 나를 밀치더니 내 이름표를 거칠게 잡아 뜯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간호사들이 서둘러 달려와 그를 내게서 떼어놓았다. 그가 부르는 내 이름 뒤엔 상스런 욕설들이 따라붙었다. 마음속에서 분노가 둔탁하게 틈을 비집고 올라왔다. 나는 그가 응급실에서 쫓겨 나가는 걸 잠자코 지켜보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내 이름표가 붙어있던 자리엔 흉한 자락이 나풀거렸다. 왜 하필 이곳이었을까. 그 자락을 보며 나는 다시 묻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많은 일들이 있었다. 환자의 잘린 손가락을 찾아 마당을 헤집어 보기도, 누군가의 죽음을 막기 위해 야산을 뛰어다니기도 했다. 오늘처럼 주취자에게 시달려야 했던 적도 있었고, 바로 옆에서 누군가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던 적도 있었다. 그 때마다 번번이 내 물음은 반복되었다. 왜 하필 이곳이었을까. 특별한 경험을 해보고자? 숭고한 사명에 감동해서? 그것도 아니라면, 단지 남들보다 조금 더 편한 군생활을 하기 위해서?
나는 군인이었다. 의무소방원이었다. 오늘은 내가 입대한 지 꼬박 1년이 되는 날이었다. 방으로 돌아와 여분의 이름표를 방한복의 흉한 빈자리에 채워 넣으며 생각했다. 의무소방은 남들은 평생을 겪어보지 못할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매순간 재난이 자리한 그곳에서 눈물을 마주하고, 절망을 목도하는 것. 누군가의 고통과 죽음에 익숙해지는 것. 사회의 가장 약하고 추한 부분을 들여다보는 것. 숭고한 희생은 듣기 좋은 구실일 뿐이다. 내가 이곳에서 지난 1년간 배운 건, 그 와중에도 무덤덤해지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를 쓰는 것뿐이었다.
고개를 들면 삶이 있고, 돌아보면 죽음이 있었다. 그러니까 이건 어느 날 갑자기 삶과 죽음의 경계에 발을 들이게 된 한 사람의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