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02.
내가 겪은 첫 번째 죽음은 우리 외할머니였다.
할머니는 재작년에 돌아가셨다. 중간고사가 슬슬 고삐를 쥐며 다가오는 한 주였다. 먼저 수업이 끝난 나는 여자친구를 기다리며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 때 전화가 왔다. 아버지로부터였다. 전날 저녁에 부모님은 급하게 G시로 올라가셨다. 전화를 받으면서 나는 문득 줄리언 반스의 소설 제목을 떠올렸다. 몸은 벌써 일어나 열람실 밖으로 나가는 중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아버지의 담담한 전언 때문인지, 아니면 그 ‘예감’ 때문인지는 몰라도 눈물이 나진 않았다. 전화를 끊고 잠시 우두커니 서 있었다. 해야 할 일들을 생각했다. 우선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 저녁 약속을 취소해야할 것 같다고 했다. 오랜만에 가기로 약속했던 동아리에도 오늘은 어렵겠다고 말했다. 자리에 펼쳐놓은 책들을 가방으로 쑤셔 넣으며 가장 가까운 시간의 기차표를 서둘러 예매했다. 내일 있을 수업의 교수님들께는 가면서 연락을 할 작정이었다. 기숙사로 돌아오자마자 간단하게 짐을 챙겼다. G시까지는 이곳에서 2시간 가까이 되는 거리였다. 도착하면 아마 밤일 것이다.
처음으로 본 누군가의 장례식은 생각보다 덜 시끄러웠고, 덜 슬펐다. 울음이 없진 않았지만 웃음도 종종 있었다. 그러나 이따금씩 슬픔은 날카롭게 우리 사이로 틈입했고, 그 예리한 칼날에 우리 가족은 자주 떨었다. 나 역시 헐렁한 상복을 입고 오른팔엔 띠를 두른 채 손님들을 정신없이 맞았다. 낮은 빠르게 흘러갔으며 밤은 무료하게 기어갔다. 잠은 거의 자지 않았다. 그 대신 향이 꺼지지 않도록 지켰다.
엄마의 두 눈에는 너무 울어버렸는지 그림자가 통째로 앉아 있었다. 할아버지는 종종 말없이 할머니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참담한 얼굴이었다. 60년에 가까운 세월을 함께 보낸 동반자는 더 이상 그 곁에 없었다. 황량함이란 단어만으로는 정의할 수 없는 어떤 감정이 할아버지의 얼굴에 어려 있었다. 빈소로 이어지는 복도엔 고인의 부고를 알리는 모니터가 있었다. 나는 할머니의 이름을 바라보았다. 알고 있었지만 마치 처음 본 듯이 그 글자가 낯설었다. 돌이켜 보면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아직 그녀의 죽음을 실감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할머니는 화장 되었다. 죽기 직전에 그녀는 세례를 받았다고 했다. 우리는 그녀를 어느 성당에서 운영하는 납골원에 안장 했다. 한가로운 도시의 변두리에 위치한, 작지만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곳을 끝으로 우리는 각자의 일상을 향해 돌아갔다. ‘엄마, 자주 올게요.’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할머니께 인사했다. 뒤로는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색색의 햇살들이 부산하게 쏟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반년이 흘렀다. 나는 휴학을 했고, 얼마 후에 의무소방원으로 입대했다. 2달 간의 훈련소 과정을 마치고서 자대를 배치 받은 지 갓 2주가 지났을까. 아직 야간근무에 적응하지 못해 쏟아지는 잠과 지난한 줄다리기를 벌일 때였다. 잠결이 채 가시지도 않은 이른 아침에 출동벨이 귀를 난잡하게 두드렸다.
"구급출동, 구급출동! ○○구급, 구급출동입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 같다는 신고입니다. 현장에 경찰 출동 요청했습니다. 직원 출동 시 안전 운행."
첫번째 망자였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 들어갔을 때 기이한 적막이 마치 젤리처럼 환자의 집주변에 내려앉아 있었다. 그 불투명한 속을 억지로 뚫고 가는 듯 문간을 넘어서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했다. 들고 온 AED를 반장님께 건넸다. 반장님은 패치를 꺼내더니 그것을 환자에게 부착했다. 나는 패치의 전선을 기기와 연결하고 전원을 켰다. 이윽고 기계에서 심전도를 체크하겠다는 음성이 흘러 나왔다. 모두가 침묵 속에서 다음의 말을 기다렸다. 전기 충격 치료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짧은 정적 끝에 기계는 미련 없이 담담하게 선고했다. 이 문장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했다. 환자는 이미 사망했다. 그게 다였다.
누군가 울음을 터뜨렸다. 침묵의 틈바구니 속에서 푸른색 감정이 비죽비죽 튀어나왔다. 나는 환자를 바라보았다. 얼굴은 핏기가 가신지 오래였다. 온기마저 잃어버린 창백한 피부들 사이로 검버섯이 오목조목하게 피어있었다. 뻣뻣하게 굳은 환자의 턱은 환자의 입을 부자연스럽게 벌렸다. 아마도 그 사이로 환자는 마지막 숨을 내뱉었을 것이다.
잠시 후, 경찰이 왔다. 더 이상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장비를 정리하고 구급차에 올랐다. 이제 한 시간 후면 교대를 한다. 고단한 야간 근무가 끝을 목전에 두었다. 초짜가 상대하기엔 무난한 죽음이었음에 안도하며 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방금 본 침묵 속의 울음들을 상기했다. 고인이 마지막 숨을 내쉴 때 그들은 새벽장을 보고 있었다고 했다. 때문에 아무도 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건 그들에게 아마도 상처로 남을 것이었다.
그런 이유로 나는, 아주 오랜만에 할머니를 떠올렸다.
할머니를 마지막으로 뵌 건 추석 때였다. 그날은 따스한 집이 아닌 낯선 병원에서 할머니를 뵈었다. 큰이모네와 외삼촌은 벌써 다녀갔다고 했다. 우리 가족이 꼴찌였다. 병실에 들어가자 환자복을 ‘걸쳤다’라는 단어가 어울릴 만큼 야위신 할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할머니는 폐암 말기였다. 그렇지만 한동안 내게 그 단어는 낯선 이방인에 가까웠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우리는 함께 메기탕을 먹으러 다른 지역까지 다니곤 했으니까. 그 때 할머니에겐 고집의 낯을 띤 생기가 어려 있었다. 그 생기는 메기탕 두 그릇을 너끈히 해치웠다. 그 생기를 보며 부모님과 나는 종종 안심하곤 했었다.
할머니는 병원에 들어선 내게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그 생기는 그녀에게서 보이지 않았다. 평소라면 나와 내 동생들의 이름을 부르며 등을 쓸어주었을 사람이었다. 할아버지께서 나를 가리키며 내 이름을 불렀다. 누군지 알아보지? 할아버지가 담담하게 물었다. 할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계속 웃고 있을 뿐이었다. 엄마는 수면제 때문에 그렇다고 하셨다. 할머니는 점점 잠이 많아진다고 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스스로의 통증이 괴로워서, 수발드는 사람의 수고를 덜고자.
그 해, 외가에서 맞이한 추석은 2시간이 전부였다. 저녁을 함께 먹을 시간조차 우리에겐 주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정확히 일주일 후에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화장터로 가는 길에 나는 할머니의 관을 들었다. 생각보다 그건 작았고 생각보다 많이 가벼웠다. 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더듬어 보았다.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한 병실에 누군가에게 의지해 간신히 앉은 채로, 할머니는 내게 웃어 보였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바라볼 뿐이셨다. 그런 그녀의 앞에서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마치 찾아올 곳을 잘못 찾아 온 이방인마냥 안절부절 떨었다. 나는 결국 그녀에게 아무 말도 건네지 않았다. 할머니에게 나의 마지막 모습은 바로 그런 모습이었다.
할머니의 관을 올려놓은 벨트가 천천히 움직였다. 관은 기다란 터널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걸로 모든 건 끝이 날 터였다. 우리는 작별하지 못했다. 고인의 발인 전날에 가족들에게는 마지막으로 고인을 뵐 시간이 주어진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 가지 않았다. 조문객들이 계속 밀려오고 있었다. 누군가는 빈소를 지켜야 했다. 그리고 나는 그 책임을 내 몫으로 두었다. 덕분에 오래된 미련이 다시 한 번 돋아났다. 무딘 통증이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웹툰 ‘죽음의 관해서’를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온다. ‘삶은 단 한번 뿐이야. 무슨 반전을 기대해?’
그리고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크루’에게 ‘사라’는 이렇게 말한다. ‘기억을 어딘가에 잘 감추었다 해도, 깊은 곳에 잘 가라앉혔다 해도, 거기에서 비롯한 역사를 지울 수는 없어.’
죽음은 그냥 끝일뿐이다. 상처는 그냥 상처일 뿐이다. 후회했을 때 돌이킬 수 있는 방법 같은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만이 가능할 뿐이다. 상처가 아문다고 해서 상처 받았다는 사실이 바뀌진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내겐 그녀가, 할머니가 그랬다. 이별은 근사하지 못했고, 마지막 모습은 고작 그런 것들뿐이었다. 그걸 뒤바꿀 순 없다. 이미 끝은 와버렸고 리셋의 여지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삶은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의 연속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우리는 매번 준비해야만 한다. 후회하지 않도록,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그렇게 필사적으로 삶은 죽음을 향해 다가가는 것이다.
내가 첫 번째 죽음으로부터 배운 건, 오로지 이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