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06.
훈련소에 있을 때였다. 아무래도 논산에서 한 야외 숙영이 문제였던 것 같았다. 슬그머니 찾아온 감기 기운은 한동안 잠잠하더니만 후반기 교육을 위해 옮긴 중앙소방학교에서 터져 나왔다. 논산에서 받아온 약은 진즉에 떨어졌고, 급한 대로 교관들에게 상비약을 받아봤지만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설상가상으로 결막염까지 찾아왔다. 훈련이 끝난 후, 의무대를 들러 체온을 재보니 39도가 훌쩍 넘었다. 당장 외진을 나가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시간이 늦어 외래환자진료소는 이미 문은 닫은 후였다. 교관은 나와 동기 한 명을 구급차에 태워 응급실에 데려갔다. X-ray를 비롯한 몇 가지 검사를 마치고나니 의사는 내게 기관지염을 진단했다. 1회분이라고 생각하기엔 많은 약들과 링거주사가 우리에게 처방 되었다. 우리를 데리고 온 교관은 점호 준비를 위해 돌아갔다. 추레한 훈련복 차림으로 응급실 한 구석을 어색하게 차지하고 있는 우리에게 간호사 한 명이 다가와 커튼을 쳐 주었다. 그녀는 우리에게 열이 떨어지려면 시간이 좀 걸릴 거라며, 한숨 자두라고 했다. 고마운 말이었다.
잠에서 깼을 땐 벌써 10시가 넘어 있었다. 몸은 한결 가벼웠다. 체온 역시 37도까지 떨어져 있었다. 링거를 뽑고 밖으로 나가니 교관이 우리를 데리러 와 있었다. 몸 상태는 어떠냐며 안부를 묻던 그는 우리를 대신해 진료비를 계산했다. 응급실 창구 직원이 눈도 마주치치 않은 채 사무적인 어투로 가격을 말했다.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10만원이 훌쩍 넘는 금액이었다. 그것도 나 한 명에게만 청구된 금액이었다. 같이 간 동기의 진료비 역시 10만원이 넘었다. 그제야 교관들이 아침 점호마다 우리에게 쏟아낸 불만들이 하나 둘씩 떠올랐다. ‘의무소방원 1년 진료비로 책정된 돈의 절반을 너희들이 썼어. 알아?’, ‘너희들은 군대를 온 거냐, 병을 고치러 온 거냐?’ 나는 고개를 돌렸다. 나와 시선이 마주친 동기 역시 어안이 벙벙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1년이 흘렀다. 유난히 바쁜 날이었다. 교대점검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우리를 부른 단순 주취자를 경찰에게 인계하고 돌아오니, 이번엔 화재신고가 우리를 반겼다. 겨우 화재를 진압하고 소방서에 돌아와 늦은 저녁을 먹으려는데 이번엔 온 몸이 아프다는 한 할머니가 신고를 했다. ‘제발 밥 좀 먹읍시다.’ 잇속으로 새어나오는 짜증을 억누르며 구급차로 튀어나갔다. 먹구름이라도 지나가는지 바깥엔 소나기가 내리고 있었다.
현장에 도착해 초인종을 눌렀는데 아무도 응답하지 않았다. 문을 두드려 보았지만 인기척이 들리진 않았다. 혹시나 싶어 주소를 확인했더니 틀린 곳은 아니었다. 별수 없이 신고자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비밀번호를 알아내고 문을 열었다. 문을 열어보니 할머니 한 분이 힘겨운 얼굴로 침대에 앉아 있었다. 문을 열어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가느다란 음성이 그녀의 입술 사이를 비집고 튀어나왔다.
할머니는 허리가 아파 도저히 움직이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처방 받은 약이 도통 듣지를 않는단다. 보호자들은 어디계시냐고 물었더니 딸 두 명이 모두 다른 지역에서 거주하는 터라 자기 혼자뿐이란다. 남편과는 진즉에 사별했단다. 반장님은 우선 간단하게 혈압이랑 산소포화도를 체크했다. 다행이도 모두 정상수치였다. 일단 병원으로 가실게요, 라는 말과 함께 나는 그녀를 부축했다. 그 때였다.
“저기, 근데 병원을 가려면 지갑을 챙겨야 할까?”
갑작스런 그녀의 물음에 잠시 어안이 벙벙해졌다. 당연한 걸 굳이 왜 물어보시는 걸까. 그렇다고 했더니 그녀가 망설이다 다시 입을 열었다.
“병원비가 얼마나 드려나?”
“지금 외래환자 진료소는 문을 다 닫아서 응급실로 가셔야 되요, 할머니. 아마 응급실 진료비가 따로 청구될 거예요.”
할머니는 눈을 껌뻑거리며 우리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이제 가실까요, 라고 조심스럽게 재촉했더니 그녀는 힘겹게 일어나 침대 밑을 뒤졌다. 이윽고 그녀의 손에 주먹만 한 크기의 작은 주머니가 딸려 나왔다. 그 안에서 그녀는 꼬깃하게 접혀진 만 원짜리 지폐 두 장을 꺼냈다. ‘이걸로 충분할까?’ 불안한 얼굴로 그녀가 물었다. 내가 기초생활수급자라....... 마치 변명하듯이 뒷말이 따라 나왔다.
결국 그녀는 이송을 거부했다. 상태가 호전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어떻게든 참아보고, 다음날 외래진료소가 문을 열면 그 때 병원을 가겠다고 우리에게 말했다. 그런 그녀에게 우리는 만약 참을 수 없을 것 같으면 꼭 119를 다시 한 번 부르시라는 말밖에 해줄 게 없었다. 아마도 그녀는 동아줄이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119를 불렀던 모양이다. 하다못해 약이라도 처방해줄 줄 알았던 모양이다. 아시다시피 119는 돈을 받지 않으니깐. 그러나 구급차 내엔 그녀에게 처방해줄 약이 없었다. 우리는 환자 대신 씁쓸한 마음을 구급차에 싣고 돌아왔다.
그러니까 가난한 사람들이 더 자주 아프고, 더 많이 다친다. 2016년 기준, 응급실 의료비의 17%는 단골환자들의 지갑에서 나왔으며 그 중 1/3에 해당하는 수가 의료급여를 받는 저소득층에 속한다. 오토바이 사고를 당한 환자들의 다섯 명 중 한 명의 직업은 배달원이다. 특히 오토바이의 경우, 헬멧을 제외하면 몸을 지켜줄 어떠한 안전장치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부상의 정도가 심각하지만 많은 환자들이 비슷한 이유로 이송을 거부한다. ‘일이 너무 많아서’, 혹은 ‘일단 사장님께 먼저 연락을 드려야 해서.’
물론 이러한 현실에 발맞춰 현재 정부는 응급실 대불이나 의료급여 같은 제도들을 운용하고 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제도들이 그들을 병원비로부터 자유롭게 만들어주진 않는다. 응급실 대불 제도의 경우, 어디까지나 빌려주는 개념이지 대납의 개념이 아닐뿐더러 특정 응급환자들에게만 적용된다는 한계가 있다. 의료급여 역시 어디까지나 병원비를 보조해주는 개념이며, 선정이 까다롭고 절차가 복잡하다는 점에서 저소득층 환자 전부가 체감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그러고 보니 이 일기의 시작에서 나는 ‘의무소방원’을 두고 이렇게 말했었던가. ‘의무소방원은 사회의 가장 약하고, 추한 부분을 본다.’ 그렇다면 오늘 내가 만난 그녀는 사회가 가진 약함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사무실에 돌아와 뉴스 기사들을 뒤적거리다 한 곳에 시선이 머무른다. ‘문재인 케어’와 이에 전면 반대를 외치는 의사협회의 대립을 다룬 기사가 거기 있다. 문재인 케어를 쉽게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병원이 청구하는 의료비는 급여항목과 비급여항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건강보험은 이 중에서 급여항목을 정부에서 부담하도록 하고 있는데, 덕분에 우리는 병원비의 일부인 비급여항목만 부담하면 된다. 문재인 케어는 바로 이 급여항목을 전면적으로 확대하여 저소득층도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경제적 부담 없이 누리게 하겠다는 취지의 건강보험 개편안이다.
한편 이에 대해 반대하는 의사들의 논리는 다음과 같다. 우리의 생각과 달리, 사실 정부는 의료비 내 급여항목의 일체를 병원에 지급하지 않는다. 때문에 지불되지 않은 항목들은 고스란히 병원의 부담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이는 병원의 적자를 야기하는 주요 원인들 중 하나이다. 만약 문재인 케어가 급여항목을 전면적으로 확대할 경우, 병원의 적자는 늘어날 수밖에 없고 이러한 이유로 병원은 적자를 줄이기 위해 저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소위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환자를 가려 받는 현실이 도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둘 중 어느 것이 옳은 것인지 알지 못한다. 미국의 인지언어학자인 조지 레이코프가 그랬듯이 ‘정치란 결국 선의와 선의의 싸움’이니까. 가장 좋은 방법은 정부에서 병원의 수익을 보장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다수의 국민들에게 높은 세율을 물리지 않고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세상 안에서 병원에게만 무조건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것 역시 옳은 일은 아니다. 누가 더 희생하고, 누가 덜 희생하느냐. 정치는 곧 타협의 과정이라고, 로널드 레이건이 그랬던가.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겠다. 대화와 타협을 거부한 선의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건 ‘독선’에 불과하다. 새로이 의사들의 우두머리가 된 그가 보수성향인지, 진보성향인지는 내 알바가 아니다. 그러나 그가 이러한 불통의 전략을 끝까지 고수하겠다면, 그건 그가 그토록 증오해마지 않던 북쪽의 정권의 그간 행보와 다름없으며 그의 독선에 오늘도 가난한 환자와 단 한 명의 환자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헌신적인 의사는 고통 받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