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13.
술을 마신다.
안주로 나온 과자를 씹는데 마주 앉은 동기 녀석이 물었다.
"너희도 안 좋은 거 많이 본다며. 너는 트라우마 없어?"
트라우마? 그런 게 있었다면, 진즉에 보직 변경하고 도망가지 않았을까. 웃으며 장난스레 되묻는다.
그런가. 하긴 그렇겠네. 녀석은 싱겁게 관심을 거둔다. 그러더니 소주 한 병을 더 시켜 위풍당당하게 흔든다. 다시 술잔을 채운다. 짠하는 소리와 함께 잔을 비운다.
트라우마. 트라우마라...
가만히 나를 거쳐 간 사람들을 떠올린다. 하나같이 아프고 병든 사람들뿐이다. 그 속에서 생각나지 않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면 당연히 거짓말이겠지. 그러니까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 정도라면, 내게도 있다.
자대를 배치 받은 지 한 달쯤 지났을 때였다. 그날은 일요일이었고, 아침 7시를 조금 넘겼을 시점이었다. 아침 일과를 마치고 돌아오니 아직 잠에 취해 널브러진 선임들이 보였다. 나는 이미 잠을 깬지 오래였다. 겉옷을 챙겼다. 남은 근무 시간은 사무실에서 보낼 생각이었다. 그 때였다. 출동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자살시도 환자였다. 현재 그는 11층에서 위태롭게 매달려 있다고 했다.
이후의 기억은 파노라마처럼 드문드문 퍼져 있다. AED와 인투베이션 세트. 외상처치가방과 분리형 들것. 경추보호대와 구출용 고정대, 담요 등등. 손에 잡히는 대로 장비들을 챙겼다. 아득한 메아리처럼 선착한 구조대가 보내는 무전이 들려왔다. '요구조자 추락, 요구조자 추락!' 자살시도자가 중증외상환자로 둔갑하는 순간이었다.
반장님을 따라 구조대가 부르는 곳으로 달려갔다. 목격자인지, 보호자인지 한 남성이 화단을 가리키며 울부짖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소방학교에서 보았던 사진들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기이하게 뒤틀린 팔다리. 뼈가 곳곳에서 튀어나오고, 살들이 뭉개져 있다. 머리는 박살나고 지면 위로 뇌수가 흩어져 있다. 그 모든 장면이 코너를 돌면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속이 역하게 뒤틀렸다. 구역질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간절하게 솟구쳤다.
코너를 도니 누군가 화단 위로 널브러져 있었다. 벌거벗은 상반신이 창백했다. 그 순간 의식을 어지럽히던 장면들이 사라졌다. 다시 무념이 찾아왔다. 반장님들이 찾는 대로 가져온 장비를 건넸다. 경추 보호대로 목을 고정하고 AED 패치를 연결했다. 맥이 미약하게나마 잡혔다. 분리형 들것을 전개해 환자를 실었다. 혀가 말린 탓에 기도삽관이 어려워 산소포화도가 자꾸 떨어졌다. 반장님은 일단 환자부터 옮기자고 말씀하셨다. 나머지 처치는 구급차 안에서 할 작정이었다.
한바탕의 소통을 마치고 돌아오니 몸이 휘청일 듯 무거웠다. 긴장이 풀려서 그런가 보았다. 얼른 씻고 자고 싶었다. 방금 이송한 환자의 예후는 많이 불안했다. 다만 혈압과 맥박이 비교적 안정적이었고, 외상이 생각보다 심하지 않은 게 희망이라면 희망이었다. 119구급대원이 할 수 있는 건 모두 끝났다. 나머지는 신과 의사들에게 기댈 영역이었다.
눈을 떴을 땐 벌써 한낮이었다. 늦은 점심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주간 근무를 서던 선임에게 아침에 이송한 환자는 어떻게 됐냐고 물었다. 선임은 잠시 생각하다가 이내 떠오른 듯 눈을 반짝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죽었다더라, 그 사람."
내가 그 환자를 잊지 못하는 건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심각한 외상으로 인해 내게 못 볼꼴을 안겨 주어서도 아니었다. 그는 추락환자 치고도 외상이 없는 편에 속했다. 떨어지면서 나무에 긁힌 상처만이 있었을 뿐, 이렇다 할 골절도 보이진 않았다.
그러니까 내가 환자를 잊지 못하는 이유는 다른 데에 있었다. 그 날, 그의 부모님은 어떤 일로 집을 비우셨다고 했다. 그 사이 형제들은 자기들끼리의 우애를 다질 요량이었는지 술을 함께 마셨다. 새벽까지 이어진 술자리는 각자의 얼굴에 붉은 자취를 남기고 입꼬리를 풀어놓았다. 새벽마저도 지나 동이 터올 무렵이 되었을까. 갑자기 큰 형의 삿대질이 시작되었다. 타깃은 막내 동생이었다. 아마도 평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들을 늘어놓은 모양이었다. 작은 형 역시 놓치지 않고 맞장구를 쳤다.
그는 형들의 불만을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그리고 잠시 쉬는 시간이 찾아왔을 때 두 형이 화장실을 간 사이 그는 홀로 베란다 난간 앞에 섰다. 두 형은 그가 단지 술을 좀 깨고자 나간 줄로만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잠시 후, 화장실에서 돌아온 두 형이 마주한 건 난간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막내 동생의 모습이었다. 놀란 형들이 119에 신고를 했고, 동생을 끌어올리고자 애썼다. 하지만 그 순간, 그곳에 있던 모두의 바람은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 모두가 그가 매달려 있던 하늘을 지켜보고 있던 가운데 그는 붙잡고 있던 난간을 스스로 놓았다. 그의 나이는 고작 18살, 내 동생과 나이가 같았다.
환자의 사인은 다발성 장기 손상으로 인한 쇼크사였다. 겉은 멀쩡했던 그 아이의 속은 마치 태풍을 통째로 삼킨 듯 곳곳이 패인 채로 망가져 있었나 보다. 마냥 추락이 준 충격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형들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막내 동생의 마음은 이미 그 시점부터 맹렬한 바람에 조금씩 망가졌는지도 모른다.
그가 정말 떨어져 죽으려고 했는지는 나는 모른다. 어쩌면 술기운이 부추긴 충동이 그를 베란다로 내몰았는지도 모른다. 난간에 매달린 채로 그는 후회를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이유가 무엇이든 그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다. 환자를 들 것에 싣고 달려가면서 큰 형은 우리에게 애원했다. 살릴 수 있죠? 내 동생 살 수 있는 거죠? 구급차에 올라서도 그의 애처로운 목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이번엔 막내 동생을 향한 것이었다.
"형이 너한테 했던 말은 다 거짓말이야. 그러니까 그냥 살아주기만 해. 다 필요 없으니까 제발 죽지만 마!
"형 말 들려? 미안해. 형은 그냥 너만 있어주면 돼. 듣고 있어? 미안해... 그러니까 제발 죽지 마!"
주호민 작가의 웹툰인 <신과 함께>를 보면 아홉 개의 지옥이 등장한다. 그중 염라대왕이 다스리는 여섯 번째 지옥을 발설지옥이라고 한다. 발설(拔舌). 혀를 뽑는다는 뜻이다. 그곳은 말로써 죄를 저지른 사람이 가는 곳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남는다. 왜 하고 많은 죄들 중에서 저승의 왕은 말로써 지은 죄를 벌하는 것일까. 예를 들자면 살인이나 강간, 폭력 같은 범죄도 있지 않은가.
펜은 칼보다 강하다. 마찬가지로 말의 힘 역시 세다. 그러니까 말은 누군가를 강간할 수 있다. 누군가를 폭행할 수 있다. 그 날 내가 마주한 환자가 당한 것처럼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었다. 굳이 멀리서 찾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당장에 들려오는 뒷담화도 그 사례들 중 하나이다. 어쩌면 저승의 왕이 말이 지은 죄를 관장하는 이유도 그것일지도 모른다. 인간이 지은 죄 중에선 말로 비롯된 죄가 가장 많고, 또 무겁기 때문에.
이따금씩 망자를 마주할 때마다 나는 그 가족을 떠올린다. 어느 날, 갑자기 닥쳐온 재앙 이후에 그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중년의 부부는 하룻밤 사이에 사랑하는 막내아들을 잃었다. 두 형은 평생을 지고 가야 할 무거운 상처를 얻었다. 무심코 던진 자신의 말은 하나뿐인 동생을 상처 입혔고, 결국 그를 베란다의 난간으로 내몰았다. 그건 자살이었지만 동시에 타살이기도 했다. 그 대가로 그 가족은 현실에서 지옥을 얻었다.
시게마츠 기요시의 소설 ‘십자가’를 보면 이런 문장이 나온다.
십자가의 말은 평생 등에 져야 하는 말이지.
그 말을 등에 진 채 계속 걸어가야 해.
아무리 무거워도 내려놓을 수 없고 발길을 멈출 수도 없어.
걷고 있는 한, 즉 살아 있는 한 계속 그 말을 등에 지고 있어야 하는 거야.
그러니 말하자면 앞으로도 그들은 계속 불행할 것이다.
한 인터넷 방송 진행자가 있었다. 나도 잘 아는 사람이었고, 심지어 그 사람의 팬이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방송을 진행하지 않는다.
그는 사람들을 상처 입혔다. 말로써였다. 그는 몇 차례의 사과 방송을 했고,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도 공식적인 사과 영상을 올렸다. 상처 입은 모든 이에게 연락을 돌리고 직접 쓴 사과문을 팬카페 등에 게재했다.
그러나 상처는 흉터가 되어서라도 끝끝내 남는다. 상처는 극복하는 게 아니라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감히 말의 힘을 우습게 본 그는, 나중에서야 그 힘을 알았겠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피해자들이 존재하고, 그는 이미 가해자였다.
아마도 내가 그의 방송을 보는 일은 다신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