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5.11. (D-256)
중앙소방학교에서 훈련 받을 때, 지나가는 교관들에게 마다 지겹게 들었던 말이 있다. 너희의 안전은 너희 스스로가 확보해야 한다. 그 누구도 너희의 안전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나 자신조차도 나를 보호하지 못할 것만 같은 경우엔, 만약에 그런 순간이 찾아온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여전히 그 기억은 시린 겨울에 머물러 있다. 완연한 봄을 지나 여름의 초입에 들어선 오늘에도 그 날을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몸을 웅크리게 된다. 때로는 살아남는 게 더 고통스러운 일임을 다시 한 번 상기 시켜주었던 그 날, 재천화재참사의 현장에도 봄은 찾아왔을까. 그 후로 벌써 5개월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우연히 본 인터넷 기사에서는 재천 화재참사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 중 40%에 해당되는 인원이 PTSD 증상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차라리 우리 중에서도 한 명이 죽거나 다쳤더라면 견디기가 보다 수월했을까. 믿기진 않겠지만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고자 달려갔던 소방관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PTSD(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이른 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이미 언론을 통해 익히 알려졌듯 이는 소방관이랑은 뗄레야 뗄 수가 없는 사이다. 실제로 통계를 살펴보면 소방관의 PTSD 발생률은 일반인에 비해 8배가 높다고 한다. 2017년 국가권익위의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소방공무원 중 17.5%에 해당하는 인원이 PTSD 증상을 경험한 적 있다고 대답하였다. 지난 5년간의 통계를 비교하면 순직한 소방관보다 자살로 목숨을 잃은 소방관의 숫자가 두 배는 더 많다. 아닌 게 아니라 나와 함께 구급을 담당했던 반장님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던 2014년 당시 지원출동을 나갔다가 뒤늦게 시신으로 수습된 단원고 학생 한 명을 이송한 이후, 이상하게 물만 보면 기분이 우울해지고 눈물이 흐르는 등의 PTSD 증상을 경험했다고 했다.
물론 중앙에서는 이러한 수요에 발 맞춰 건강검진과 함께 PTSD와 관련한 설문조사를 연 1회 이상 실시하거나 전문 상담인력의 배치, 심신안정실 운영 등의 다양한 예방책을 강구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일선에서는 여전히 그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지 못할 뿐더러, 그 결과 대부분이 평가를 위한 형식적인 조처에 그치고 있다.
그렇게 벌어진 빈틈의 사이에서 의무소방원을 비롯한 소방보조인력들은 고통 받고 있다. 많은 피해를 낳았던 2002년 홍은동 화재 참사 이후, 부족한 소방 인력의 보완을 위해 창설된 ‘의무소방’은 일반 소방관들과 마찬가지로 각종 재난 상황과 구조구급현장에 투입되어 활동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위험한 상황은 물론, 끔찍한 재난현장이 주는 충격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내 선임 중 두 명이 PTSD로 인한 수면장애, 공황장애를 호소하여 1달에 가까운 기간 동안 청원휴가를 다녀왔고 그 중 한 명은 끝내 의가사 제대를 했다. 내 첫 후임 역시 첫 출동에서 투신자살한 환자를 이송한 후, 그 사고가 주는 여파를 이겨내지 못하고 끝내 복무전환을 하게 됐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 의무소방원을 위한 PTSD 대책은 제대로 확립되어 있지 않다. 대부분이 정훈교육 등에서 면담 형식으로 간략히 이뤄지거나 구급대원들을 위한 상담교육에 ‘덤’처럼 얹힐 뿐이다. 그나마도 보여주기식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사실상 예방에 대한 조처가 전무하다고 보아도 좋다.
때문에 의무소방원 스스로가 자신의 상태를 알리고, 도움을 청하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그 상처를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프다’며 도움을 청하는 의무소방원의 숫자는 극히 적다. 일단 소방서에서 24시간 머물러야 하는 의무소방원의 복무환경 특성상 장기간 병원을 오가며 치료를 받는 것부터가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봤을 때 진짜 문제는 오히려 치료 받기에 부적합한 환경이 아니라 당당히 아프다고 말할 수 없는 억압적인 환경에 있다. 그러니까 '너희는 군인이니까'라는 바로 그 시선이 의무소방원이 자신의 상처와 고통을 말하는 데 가장 큰 방해요소라는 것이다. 기껏 어렵게 용기를 내어 치료를 위해 청원휴가를 내거나 정기적으로 병원을 오가게 되면 많은 직원들, 특히 주임급 이상의 직원들 사이엔 안 좋은 인식이 자리 잡는다. '군인이 이까짓 것도 이겨내지 못해서 어떡해?', '솔직히 너희가 전방에 있는 군인들에 비해 힘든 게 뭐냐?', '나도 의무소방원 하고 싶다. 아프면 아프다고 한 달이나 쉴 수 있고.' 어쩌면 의무소방원에겐 아프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아픈 것을 차마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게 만드는 현실이 더 서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의무소방원의 근무 환경이 일반적인 현역 병사들에 비해 더 나은 건 사실이다. 사회와 격리되지 않은 환경, 비교적 자율적인 분위기와 보장된 개인시간 등은 분명 매력적이다. 하지만 세상엔 마냥 쉬운 일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각자가 느끼는 정도의 차이일 뿐 저마다 고되고 힘들다. 의무소방원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의 근무시간이 끝나면 직원들은 퇴근을 하지만 의무소방원은 대기실로 돌아간다. 그곳은 24시간내내 출동벨이 울린다. 이렇듯 의무소방원의 생활은 늘 긴장의 연속이다.
현재 중앙에서는 의무소방원의 휴식을 보장해주기 위해 3교대 근무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언제나 인력이 모자란 소방의 사정상 의무소방원이 자신의 비번을 챙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만약 대형화재라도 터지는 날이면, 혹은 심정지 같이 누군가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순간이 오면 설령 자신의 근무가 아니더라도 의무소방원들은 오늘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고된 몸을 이끌고 현장으로 나선다. 나 역시 화재출동이 많은 달에는 신경성 복통을 달고 산다. 한번은 jtbc의 '비긴어게인'이란 프로그램을 보다가 화재출동벨과 비슷한 효과음을 듣고는 나도 모르게 뛰쳐나간 적도 있었다. 많은 이들이 부러워하는 의무소방원의 생활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를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온다.
“누가 그러더라. 세상에서 가장 폭력적인 말이 남자답다, 여자답다, 의사답다, 학생답다 뭐 이런 말이라고. 그냥 다 처음 살아보는 인생이라서 서툰 건데 그래서 안쓰러운 건데, 그래서 실수해도 되는데.”
사람이니까 아프다. 24시간 내내 긴장 속에서 살아가면서, 끔찍한 재난의 현장과 마주하고서 멀쩡한 사람들은 없다. 다만 아직 멀쩡한 줄 알거나, 혹은 멀쩡한 척 할 뿐이다. 대부분의 의무소방원은 입대 전 고작 스무 해 남짓한 삶을 살아온 일반인에 불과하다. 막대한 사명감이 아니라 국가에 대한 의무를 위해 온, ‘젊다’라는 수식어보단 ‘어리다’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 청춘들이다. 그런 그들에게 내뱉는 ‘너희들은 군인이니까’라는 말은, 고작 말 한 마디로 그들의 고통을 묵과하고 희생을 정당화하고 싶어 하는 누군가들의 바람이 아닐까.
육군훈련소에 있을 때면 아침마다 지겹게 외우던 복무신조가 있다. 하나, 우리는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며 조국통일의 역군이 된다. 둘, 우리는 실전과 같은 훈련으로 지상전의 승리자가 된다. 셋, 우리는 법규를 준수하며 상관의 명령에 복종한다. 넷, 우리는 명예와 신의를 지키며 전우애로 굳게 단결한다. 이 짧은 네 문장의 어디에서도 ‘아프지 말라’는 내용은 없다. 아픈 것을 참는 건 군인의 직업윤리가 아니다. 스스로의 아픔도 돌볼 줄 모르는 군인이, 소방관이 어떻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단 말인가.
저번 달 나의 공식적인 출동건수는 정확히 76건이다. 비공식적인 출동을 합한 숫자는 나조차도 모른다. 5명의 망자를 수습했고, 그 중에는 사망한지 약 2주 만에야 발견된 시신도 있었다. 태어난 지 한 달도 채 안 된 아기를 처치해야 했던 적도 있었고 대낮부터 술에 취한 주취자에게 얻어맞을 뻔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멀쩡하다. 그런 줄로 알고 있다. 앞으로도 그러기를 바랄 뿐이다.
PS.이 글을 쓰고 있던 와중에 드디어 의무소방원을 대상으로 한 PTSD 관련 심리상담이 처음으로 열렸다. 아직 그 효과를 체감하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이를 계기로 앞으로 더 큰 변화가 있기를 조용히 기원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