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5.18. (D-249)
우연히 튼 텔레비전에선 드라마가 방영 중이었다.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남자가 차를 거칠게 몬다. 그런 그를 여러 대의 순찰차가 추격하고 있다. 그러다 맞은편에서 남자의 차를 발견한 순찰차 한 대가 중앙선을 넘어 남자의 차를 들이받는다. 초로의 경찰은 망가진 순찰차를 빠져 나와 남자의 차 앞에 선다. 한심하다는 감정이 그의 주름들 사이로 스쳐 지나간다. 그 순간 단발마의 총성이 울린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초로의 경찰은 머리에 피를 흘리며 쓰러진다. 고요하던 도시는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된다. 뒤늦게 달려온 경찰들이 한참동안 총격전을 벌인 끝에 겨우 범인은 제압된다. 뒤늦게 동료가 다가가 총에 맞은 경찰의 맥박을 확인한다. 고요하다. 동년배로 보이는 그 동료는 아무 말 없이 서글픈 얼굴을 가로 젓는다.
노희경 작가의 신작 드라마 <라이브>의 한 장면이다. 눈치 챘듯이 2년 전 발생한 사제 총기 사건의 재연이다. 당시 사망한 경찰도 드라마 속의 경찰과 나이가 비슷했다. 벌써 2년이나 지나버린 지금 이 시점에서 남은 그 가족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의무경찰로 복무하고 있다던 그의 아들은 제대 후 지금 어떤 길을 걷고 있을까. 당시 그와 함께 근무한 동료 경찰관들은 뿔뿔이 흩어져 지금은 또 어떤 사선을 넘나들고 있을까.
지난 1일, 주취자를 구조하러 갔다가 폭행당한 구급대원이 뇌출혈로 쓰러진지 1달 만에 끝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녀에겐 같은 직업의 남편과 2명의 아들이 있었다. 소방당국은 그녀의 죽음을 순직 처리할 계획이며 그녀를 숨지게 한 주취자에게 강력한 처벌을 요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녀의 죽음이 순직 처리가 된다고 해서, 그녀를 살해한 그 주취자가 설령 사형 선고를 받는다고 해서 대체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 아내의 빈자리를, 어머니의 빈자리를, 자식의 빈자리를, 동료의 빈자리를 매꿔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면서. 억울하게 멈춰 서야만 했던 그녀의 삶은 또 누가 보상해줄 수 있단 말인가.
지날 3월엔 동물구조를 위해 출동한 소방관 3명이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한 명은 결혼한 지 6개월 밖에 되지 않은 신혼이었고, 나머지 두 명은 임용을 코앞에 두고 있던 실습 소방관이었다는 점에서 더더욱 안타깝다. 오늘은 그런 그들이 사망한지 49제를 맞이하는 날이다. 그들의 죽음 이후, 소방당국에선 동물구조나 시건개방 같은 비응급상황의 출동은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앞으론 인명구조와 긴급을 요하는 출동에만 신경을 쓰겠다는 다짐이다(물론 그게 잘 지켜지고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겨진 사람들을 향해 뻗는 시선을 가로막을 수는 없다. 함께한 지 고작 6개월 만에 아름다운 신부를 떠나보낸 남편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며칠 후면 정식 소방관이 될 것이라며 기뻐하던 딸의 빈자리를 매일 아침마다 목도해야하는 부모의 심정은 어떠할까. 그녀들의 죽음을 바로 곁에서 지켜보아야 했던 그 기관원 소방관은 지금 이 순간 어떤 지옥을 헤매고 있을까.
그러니까, ‘어느 날 내가 갑자기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예감을 품고 사는 삶은 어떤 삶일까. 나와 같이 일하던 반장님은 한 번은 내게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비가 억수로 퍼붓던 날, 물탱크가 터져 가게가 잠기게 생겼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그는 현장에서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터진 물탱크 옆에 가스통 세 개가 널브러져 끊어진 호스 사이로 LPG 가스를 열렬하게 내뿜고 있었다. 자칫하면 화재로 번질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반면 당시 그가 가진 보호구라곤 고작해야 화재 진압에 쓰이는 방화복 한 벌 뿐이었다. 그것만으론 LPG 가스통 세 개가 불러올 폭발로부터 안전을 장담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가만히 지켜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하는 수 없이 그는 일일이 손으로 그 모든 가스통들을 다 잠갔다. 다행이도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다. 반장님은 정말 식겁한 경험이었다며 내게 미소 지었다. 그렇지만 내겐 그 미소가 답답하기만 하다. 만약 누군가 무심코 담배꽁초라도 던졌다면, 혹은 작은 스파크라도 튀었다면 나는 저 순박한 미소를 볼 수 있었을까.
한 번은 호텔 앞에 누군가 쓰러져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적이 있었다. 거구의 남자가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길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술 냄새가 눅진하게 풍겼다. 혈압과 산소포화도는 모두 정상으로 나왔다. 단순 주취자였다. 단순 주취자의 경우, 경찰에게 인계하는 것이 원칙이기에 우리는 경찰을 기다리며 그를 깨웠다. 술에 단단히 취했는지 몇 번을 꼬집고 흔들어도 도무지 일어날 줄을 몰랐다. 억지로 일으켜 보려고도 했지만 장정 두 명으로는 아무리 용을 써도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그가 가지고 있던 핸드폰을 뒤져 아내의 연락처를 알아냈다. 마침 현장엔 경찰도 도착한 참이었다. 경찰들과 겨우 힘을 합쳐 남자를 일으키고 아내를 바꿔주었다. 비몽사몽한 와중에 건성으로 아내와의 통화를 마친 그는 우리에게 다시 핸드폰을 건넸다. 여자 반장님은 그의 아내에게 환자를 경찰에게 인계하겠다는 마무리 통화를 하고 핸드폰을 도로 그에게 돌려주었다.
그 때였다. '퍽'하는 소리와 함께 여자 반장님의 짧은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말릴 새도 없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반장님께 핸드폰을 돌려받은 남자가 갑자기 핸드폰을 집어 던진 것이었다. 놀란 경찰관들이 달려와 남자를 억지로 눕히고 제압했다. 어찌나 힘이 센지 경찰관 두 명이 달려들어도 쩔쩔 매고 있었다. 우리도 도와주고 싶었지만 소방공무원에겐 그럴 권한이 없었다. 기껏해야 주취자의 공격을 피하는 것, 혹은 팔을 잡는 것 정도만이 허용될 뿐이었다.
경찰들이 인근 순찰대에 지원을 요청하는 동안 나와 남자 반장님은 여자 반장님의 상태를 살폈다. 다행이 팔을 좀 스쳤을 뿐이었다. 하지만 자칫 얼굴이라도 맞았다면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핸드폰이 날아간 곳으로 가 환자의 핸드폰을 주워 왔다. 어찌나 세게 던졌는지 액정은 박살이 나 있었다. 잠시 후 순찰차 한 대가 더 도착했고, 남자는 자그마치 다섯 명의 장정들이 달려든 후에야 수갑을 차고 경찰차에 실렸다.
떠나기 전에 경찰 중 한 명은 혹시라도 방금 폭행 건으로 신고라도 할 생각이라면 성심껏 도와줄 테니 이 번호로 연락을 달라며 여자반장님께 명함을 주었다. 그 친절함에 반장님은 되려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다치지 않았으니 되었다. 반장님의 그 말이 내겐 무거운 짐으로 남았다. 아마도 그녀에게 이러한 일은 처음이 아니었을 것이다. 폭력에 무덤덤해지기 위해서 그녀는 얼마나 많은 감정들을 속으로 삭혀야 했었을까.
만약 드라마 속의 경찰이 운 좋게 목숨을 건졌다면 그는 징계 위원회에 섰을 것이다. 본인의 안전을 확보하지 못한 점, 용의자의 돌발 행동을 예상하지 못하고 팀 전체를 위험에 빠뜨린 점, 차를 들이받는 식의 과격한 제압으로 용의자를 흥분 시킨 점 등등.
아산 소방서에서 세 명의 젊은 소방관이 죽었을 때 내려온 지침 중 하나는 반드시 작업 중엔 고임목을 설치라라는 것이었다. 차량에선 내릴 땐 반드시 좌우를 살펴 안전을 확인하고 현장에서 작업 중에도 필요한 경우 안전 삼각대를 설치하거나, 수시로 주변을 살펴 안전을 확보하라는 지침도 함께 내려왔다. 마치 그들이 스스로 주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목숨을 잃은 것이라도 되는 마냥(트럭 운전사의 전방 주시 태만에 대해선 어떤 말도 없었다).
이번에 주취자의 폭행으로 사망한 구급대원과 관련해서는 ‘현장 활동 중 반드시 헬멧을 착용하라’는 지침이 내려왔다. 하지만 사망한 그 구급대원도 헬멧은 착용했었다. 그녀가 사망한 이유에는 비단 무지막지한 폭행의 물리적 충격만이 있진 않을 것이다. 그녀에게 그토록 무례했던 환자는 그 주취자가 처음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번에 내려온 지침에서도 피해당한 소방관들이 적절한 피해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줄 수 있는 법률적 서비스에 관해선 단 한 줄의 언급도 없었던 모양이다. 아마도 여전히 검토 중, 그리고 앞으로도 검토 중이겠지.
우연히 보았던, 10년 전에 발행 된 선집의 어처구니없는 대응요령들이 떠올랐다. 가능한 환자를 자극시키지 말 것. 무리한 대응은 피할 것. 가급적 경찰과 공동 대응할 것. ‘너희의 안전은, 너희 스스로가 확보하라’는 중앙소방학교 교관들의 말은 틀린 게 아니었다. 그 누구도 우리의 안전을 고려해주지 않는다. 하물며 우리가 속한 이 조직에서 조차도.
내가 근무하는 센터의 사무실에는 ‘출근한 모습 그대로, 안전하게 퇴근하자’란 말이 걸려 있다. 소방관에게 제1의 직업윤리가 무엇이냐고? 남을 위한 무조건적인 희생? 친절과 봉사? 아니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살아남는 것. 그것이 그들의 첫 번째 직업윤리다.
오늘은 모두가 그렇게 못 즐겨 안달하는 불금이다. 나는 오늘 야간 근무를 선다. 가까이서 지켜본 소방관의 삶은 콜센터 상담원들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우리는 얼굴도 알지 못하는 누군가를 도우러 간 그곳에서 멸시와 위협을 받는다. 오늘은 또 어떤 환자를 만나, 또 어떤 모욕을 듣게 될까. 설마 뉴스의 한 구석을 차지하게 될 그 사람이 ‘나’는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