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의 파업을 보며...
나는 소방서에서 일했다. 의무소방원이었다. 그게 뭔가 싶겠지만 별거 아니다. 그냥 의경 같은 거다. 다만 소방서에서 먹고 잘뿐이다. 나는 주로 구급차를 탔다. 1239건. 지난 23개월간 복무하면서 내가 공식적으로 나간 출동 건수다. 지방의 소도시에서 근무한 것치고는 출동 건수가 제법 많다. 뭐, 그래도 그만큼 재밌었다. 보람도 있었다. 잠깐이지만 소방관이 되는 걸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도 있었을 정도로.
나는 나의 고향이기도 한 여수의 소방서에서 근무했다. 여수는 전라남도의 남쪽 끝에 위치한 작은 도시다. 인구는 30만 명이 좀 안 된다. 물론 전라남도의 다른 도시들과 비교하면 제법 큰 축에 속하지만 그래도 작다. 하지만 이 작은 도시에도 사건사고는 매일 일어난다.
하루는 손가락이 절단됐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을 나갔다. 소방서 근처에서 피아노 가게를 운영하던 아저씨였다. 아무래도 그라인더를 사용하다가 사고가 난 것 같았다. 나는 구급대원 반장님을 도와 지혈을 했다. 잘린 손가락은 수습하여 생리식염수에 적신 거즈로 덮어두었다. 이렇게 응급처치는 끝이 났다. 남은 건 최대한 빨리 병원으로 가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내가 근무하던 당시, 여수에는 접합 수술을 할 수 있는 병원이 없었다. 결국 우리는 여수에서 차로 2시간 정도 거리에 떨어져 있는 광주의 한 병원으로 환자를 이송해야만 했다. 접합 수술의 성공은 절단물의 손상 정도와 얼마나 빨리 수술실에 들어갈 수 있느냐가 결정을 짓는다. 하지만 그 환자는 아까운 2시간을 도로 위에서 허비해야만 했다. 신고가 늦게 이뤄져서, 구급대원의 조치가 미흡해서도 아니다. 환자를 수술할 수 있는 병원이 환자 근처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절단물이 손가락이어서 다행이었다. 만약 절단 부위가 팔이나, 다리였다면……. 결과는 더욱 끔찍했을 것이다.
이러한 경우는 의외로 비일비재했다. 하루는 실수로 건전지를 삼킨 아기를 광주의 대학 병원으로 이송했던 적이 있었다. 헤어드라이기가 폭발하는 바람에 손에 심한 화상을 입은 환자를 부산의 화상 전문 병원으로 이송한 적도 있었다. 버스 전복 사고가 발생했을 땐 환자를 치료해줄 수 있는 병원을 찾아 여수와 순천의 병원들을 헤매고 다녔다(그렇게 겨우 찾은 병원에서도 배드가 없어서 무려 1시간을 대기해야 했다).
그래도 여수는 비교적 나은 편이었다. 전남에서 제법 큰 도시답게 응급실을 갖춘 병원이 5개나 되었다. 권역응급의료센터도 비교적 가까운 곳(순천)에 있었다. 물론 서울의 대학병원들과 비교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지만 이것도 감지덕지다. 전남의 다른 도시들은 상황이 더 열악하다. 환자가 발생하면 다른 지역으로 이송하는 것이 일상이다. 소방서가 아예 없는 도시도 있다(구례의 경우, 순천 소방서에 속한 ‘구례 119 안전 센터’ 하나가 2만 명이 넘는 구례군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상황이다).
2015년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병원 중 30%가 수도권에 위치해 있다. 의사는 48.9%(4만 4144명)이 수도권에 몰려 있다고 한다. 의료 서비스의 수준 차이도 꽤 크다. 오죽하면 강원도에서 아이를 낳으면 중국이나 스리랑카보다 더 많은 산모들이 죽는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다. 아무리 우리나라의 인구 중 절반이 수도권에 몰려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이건 좀 심하다.
이렇듯 수도권과 지방의 의료 격차는 너무나 극명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커지고 있다. 지난 2018년, 여수의 한 병원은 경영난을 이유로 결국 문을 닫았다. 그렇게 응급실을 가진 병원은 4개로 줄었다. 그런 와중에 또 다른 병원은 의사와 배드가 없다는 이유로 응급실을 닫아버렸다. 자연스레 나머지 세 병원으로 환자가 몰려들었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왜 자꾸 자기들 병원에만 환자를 이송하냐고 하소연했다. 우리는 미안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다른 병원이 없었다. 그게 안 되면 환자를 순천으로 이송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게 지방 의료의 현실이다.
현재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 ‘비대면 진료 육성’ 등을 기본 골자로 한 의료 법안을 추진 중이다. 이에 대한의사협회 등은 반대 의사를 나타냈다. 급기야는 지난 8월, 코로나19로 인해 의료 인력이 부족한 와중에도 파업이라는 초강수까지 두었다. 다행히도 지난 4일, 법안 내용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조건으로 정부와 대한의사협회가 극적인 합의를 이뤄냈지만, 전공의들은 원점 재검토가 아닌 법안의 완전 철회를 주장하며 여전히 병원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하고 있다. 의대생들 역시 국가고시 시험 응시를 거부하며 반대 의사를 보이고 있다.
의사들이 법안을 반대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현재 의사 수는 정부가 생각하는 것처럼 부족하지 않으며, 지방의 인프라 부족과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지 않는 한 의사를 늘리고 재배치해봤자 의료 서비스의 질을 개선하는 데는 아무런 효과를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한 공공의대에 관해서도 입학 조건과 효과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의무복무 기간인 10년에 대해서도 너무 짧다는 의견이 나왔다.
결국 의사들의 말에 따르면 중요한 건 의료 서비스의 격차를 가져오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단순히 인원을 늘리고 재배치하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물론 그들의 이러한 의견은 십분 이해하고 존중한다. 더군다나 이번에 도입되는 의료 법안의 경우, 의사 본인들의 생계와 미래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칠지도 모르니 의사들로서는 더욱 예민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처지와 말에 나는 공감은 할 수가 없겠다.
분명한 팩트는 ‘의사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전국에 얼마나 많은 의사가 있든 간에 지방과 내과, 외과, 산부인과 같은 필수 진료과, 소아외과나 감염내과 괕은 특수 진료과에는 의사가 부족하다. 물론 의사들이 말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거기에만 매달리는 건 너무 이상론적이다.
가령 지방과 수도권의 의료 격차 문제를 놓고 보자.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선 지방의 인프라와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 하지만 이때 말하는 ‘개선’이란 단순히 병원을 더 짓는 것만으로는 모자라다. 의사들이 만족하며 지방에서 거주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의료를 비롯해 교육과 사회, 문화 등 전방위적인 측면에서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대한민국의 개발 역사를 고려하면 지역 격차가 시작된 역사만 해도 자그마치 반세기가 넘는다. 이를 해결하려면 그보다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될 것이다.
한편 현재 대한민국이 처한 의료 현실은 너무나 암울하다. 이미 절벽 앞에 서 있다. 시장의 손에만 맡기기에는 너무 심하게 망가졌다.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기만을 기다리기에는 지금 이 순간에도 병원이 없어서, 의사가 없어서 고통받고 죽어가는 환자들이 있다. 지금 당장 그들을 도울만한 마땅한 대책도 없이 무작정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만을 주장하고 나선다면 교통사고로 다친 환자에게 응급처치도 없이 무작정 X-RAY나 CT부터 찍자고 아우성치는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현재 정부가 제시한 법안에 허점이 많은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건 협의를 통해 수정하고 보완하면 될 일이다. 공공의대의 의무복무 기간이 짧다고? 그렇다면 기간을 늘리면 된다. 확대되는 의대 정원 숫자가 너무 많다고? 그렇다면 협의를 통해 적정 수준으로 조절하면 될 일이다. 공공의대의 입학 기준이 의심스럽다면 그 기준을 재논의하거나 명확히 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지금의 의사들은 이러한 노력은커녕, 무조건 반대만을 외친다. 정부가 제시한 의료 법안을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은커녕 무조건적인 법안의 철회만을 주장한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누가 그걸 모르나? 그건 유치원생도 할 수 있는 말이다. 중요한 건 이미 벌어진 의료 격차와 지금 당장 고통받고 있는 환자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느냐는 것이다. 정부의 제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의사들도 거기에 상응할만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공중보건의랑 퇴직한 의사들을 활용하자는 거지 같은 발상은 도대체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다. 그게 그들이 말하는 의료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이란 말인가?).
하지만 의사들은 그러지 않는다. 그리고 바로 이게 내가 의사들의 이번 파업을 공감하지 못하는 이유다. 그저 밥그릇 싸움에 불과하다고 보는 이유다. 그들은 이번 의료 법안이 통과되면 대한민국의 의료 시스템이 붕괴될 거라고 말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놔둬도 대한민국의 의료 시스템은 붕괴된다. 아니, 어쩌면 이미 시작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도화선은 벌어질대로 벌어진 의료 격차에 대한 정부와 의사의 무관심이었다. 스파크는 의사의 파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