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고양이를 그린 화가 루이스 웨인展'
강동문화재단은 고양이를 그린 화가로 유명한 ‘루이스 웨인’의 전시를 오는 8월 31일까지 강동아트센터 아트랑에서 개최한다.
전시장 내부로 들어서면 아기자기한 파스텔톤의 공간이 우리를 맞이한다. 마치 동화책 속으로 들어온 것만 같다. 벽면에는 루이스 웨인이 그린 고양이 그림들이 일렬로 우리를 맞이하고 있다. 복도 어딘가에서는 고양이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온다. 집사 생활 12년 차. 비록 그림이지만 고양이로 가득 들어찬 이곳을 보며 생각했다. 여긴 천국일까?
이번 전시에서는 루이스 웨인의 원화와 오리지널 판화, 미공개 작품까지 더해 100여 점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크리스마스 파티를 즐기는 고양이, 눈싸움하는 고양이, 장난치는 고양이 등 솔직하고 익살스러운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절로 미소가 나온다. 뿐만 아니라 루이스 웨인이 그린 광고 삽화들도 함께 찾아볼 수 있는데 이를 통해 당시 영국의 모습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이외에도 전시를 보다 깊고 풍부하게 즐길 수 있도록 미디어 아트와 '루이스 웨인 with ART STUDIO' 전시 연계 교육 프로그램도 함께 제공하고 있으니 관심 있는 사람은 참고해두면 좋을 것이다.
가끔은 그림 못지않게 텍스트에 집중해 보는 것도 전시를 즐기는 좋은 방법이다. 이번 전시는 영국의 국민 화가로 불리며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으나 정작 자신은 크고 작은 불행으로 점철되어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루이스 웨인의 삶을 6개의 섹션으로 나누어 함께 보여주고 있다.
루이스 웨인의 삶은 앞뒤가 다른 동전의 양면 같았다. 세상의 편견에 맞서가며 어렵사리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에 성공했으나 불과 3년 만에 병으로 아내를 떠나보내야 했던 삶. 고양이 그림을 그리며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으나 빈약한 현실 감각과 사업 실패로 정작 본인은 빚더미에 올랐던 삶. 지독한 가난 속에서 사랑하는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자신 역시 마음의 병으로 고통받던 삶.
“숨만 쉬어도 살아지는 삶인데, 왜이리 힘든지 모르겠어”
- 영화 <루이스 웨인: 사랑을 그린 고양이 화가> 중에서 -
전시장에 걸린 아기자기한 그림들과 텍스트에 흉터처럼 새겨진 삶의 비극 사이를 거닐다 보면 한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이토록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그가 붓을 놓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마지막까지 고양이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원동력은 대관절 어디에서 나왔을까. 단지 돈이 되기 때문에? 틀린 말은 아니겠으나 베들렘 병원에 입원한 뒤 돈을 버는 행위가 그에게 더 이상 무의미해진 이후에도 고양이 그림을 계속 그렸다는 걸 생각하면 그런 단순한 이유는 아니었을 것이다.
영화 <원더풀 라이프>에서 영혼들은 다음 생으로 넘어가기 전 이전 삶에서 가장 소중했던 기억을 하나 선택해야 한다. 선택된 기억은 마지막까지 남아 영혼과 함께 다음 생으로 넘어간다. 그렇기에 영혼들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신중하게 기억을 골라낸다.
어떤 기억이 있다. 이제껏 살아온 생애 전체를 뒤흔들고, 그 여진이 이후의 삶에도 남아 있는 그런 기억이 있다. 루이스 웨인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추측건대 루이스 웨인에게 그때는 사랑하는 에밀리와 고양이 피터와 함께 보냈던 1884~1887년이 아니었을까. 그 시기 그는 유방암으로 투병 중인 그녀를 위해 우연히 입양한 고양이 피터를 그려 아픈 아내에게 웃음을 주고자 했다.
어쩌면 루이스 웨인에게 고양이 그림은 에밀리를 추모하고,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때를 추억하는 유일한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크고 작은 비극으로 점철된 삶 속에서 그림을 통해서라도 가장 행복했던 그때로 돌아가고자 하는 간절함이 그로 하여금 붓을 놓지 못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사정을 알고 나니 마냥 귀엽기만 하던 고양이 그림들이 달리 보였다. 슬프고 애틋했다.
한편 언제부턴가 그의 그림 속 고양이들은 사람들의 행동을 흉내 내기 시작했다. 잭슨의 모자와 부츠를 신고, 저녁 식사 후 한가로이 농담을 나누었다. 잡지를 읽거나 바이올린을 연주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루이스 웨인에게 고양이 그림은 자기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는 방법이기도 했다. 그림 실력은 뛰어났어도 사람을 대하는 방법은 서툴렀던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늘 괴짜로 인식되었다. 어린 시절엔 구순구개열을 앓고 있어 친구들과 거의 어울리지 못했다. 학교엔 자주 결석했고, 들판이나 산에서 홀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성인이 된 후엔 자기보다 10살이 많은 여성과 사랑에 빠졌다는 이유로 또다시 주변 사람들의 눈초리를 받았다.
재미있는 점은 고양이 역시 19세기엔 편견의 대상이었다는 것이다. 당시 고양이는 강아지와 달리 주인을 따르지도 않고 노처녀들이나 키우는 이상한 동물로 여겨졌다. 허나 루이스 웨인은 자신의 그림을 통해 고양이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동물 중 하나로 만들었다(그 공로를 인정받아 후에 그는 국제 고양이 클럽의 회장이 되기도 했다).
사람들은 루이스 웨인의 고양이들에게 열광했다. 당시의 영국인들과 달리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고양이들의 모습은 사람들로 하여금 기묘한 해방감과 위로를 안겨주었다. 물론 루이스 웨인 역시 함께 위로받았다. 고양이들은 눈싸움, 달리기 등 어린 시절 그가 누리지 못했던 친구들과의 추억을 대신 재현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추억도, 가장 행복했던 그때도 재현했다.
"이것만 기억해 줘. 아무리 힘들고, 인생이 고되게 느껴져도 세상은 아름다움으로 가득하다는걸. 그걸 포착하는 건 당신에게 달린 거야. 그리고 그걸 보는 것도. 최대한 많은 사람과 나누는 것도." 루이스 웨인의 전기 영화에서 에밀리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 염원에 반응하듯 날이 갈수록 루이스 웨인의 고양이 그림엔 생기가 돌았다. 이제 그는 에밀리뿐만 아니라 영국인 모두에게 사랑받는 화가가 되었다.
전시관을 나오는 길, 고양이 그림들 사이에 숨겨진 진짜 고양이 사진 하나를 발견했다. 이 전시를 준비하던 누군가의 고양이였을까(어쩌면 그냥 정교하게 그린 고양이 그림이었을지도)?
우리는 모두 마음속에 나만의 고양이를 품고 있다. 실제로 키우는 반려동물일 수도 있고, 아니면 아직 아무에게도 드러내지 않은 나 자신의 모습일 수도 있다. 이번 주말, 날이 괜찮다면 루이스 웨인이 그랬던 것처럼 나만의 고양이를 찾으러 가보는 건 어떨까.
이번 전시는 강동아트센터 아트랑에서 오는 8월 31일까지 열린다.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매주 월요일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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