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_에필로그

2019.01.20. (D+7)

by 뮤노

“음...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잘 모르겠네요. 일단 처음 의무소방 생활을 이곳 학동에서 시작했는데 이렇게 마무리도 학동에서 하게 되어서 개인적으로 정말 뜻 깊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생각나는데, 네... 그동안 여러모로 챙겨주시고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센터장님과 팀장님들, 그리고 반장님들께 정말 많이 감사했습니다.


특히 현장에서 같이 고생했던 구급대원 반장님들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아요. 그리고 우리 K와 J에게도 좀 더 좋은 선임이 되어줄 수 있었을 것 같은데 그래주지 못해서 많이 미안하고, 또 그동안 함께 잘 지내줘서 정말 고맙다고 말하고 싶네요. 남은 군생활도 몸 건강하게, 또 즐겁게 마무리했으면 좋겠습니다. 어... 저는 이제 한 걸음 물러나서 제자리로 돌아가겠지만 어디에 있든 항상 여러분들을 응원하고 있겠습니다. 이곳에서 보낸 시간들은 좋은 추억으로 소중하게 간직하며 살겠습니다. 그동안 다들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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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13일에 나는 전역했다. 지금은 오랫동안 준비해왔던 일본여행을 위해 여권을 찾으러 가는 중이다. 지난 일주일은 제법 바쁜 축에 속한다. 복학을 준비했고, 은행 일도 몇 가지 처리해야 했다. 가족들과 여행도 다녀왔다. 주말에는 친척 결혼식과 여자친구를 만나러 갈 겸 서울에 올라가야 한다. 날씨가 제법 춥다. 더 두껍게 입고 나올 걸 그랬다. 버스에서 내려 곧장 시청으로 향했다. 그러려면 소방서 앞을 필연적으로 지나가야 한다. 지난 2년 간 내가 생활했던 바로 그곳이다. 남들은 전역하면 자대를 향해서는 오줌도 누지 않는다던데 운 좋게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군생활을 한 내게는 어쩔 수 없는 숙명인가보다.


문득 소방서 옥상을 바라보았는데 누군가 널어놓은 빨래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불과 1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내가 하던 일이다. 문이 활짝 열린 소방서 차고에는 중형펌프차와 구급차가 비어있었다. 대형펌프차는 이제 막 나가려는 중이었다. 불이라도 난 걸까. 혹은 교통사고?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단순한 훈련상황? 잘 모르겠다. 하긴 이제 그런 것들이 나랑 무슨 상관이라고. 고개를 돌리고서 나는 다시 발걸음을 힘차게 내딛었다. 문 하나를 두고서 그들과 나의 세상은 이렇게 갈라진다. 저 안에서 바깥을 부러워하며 전역을 기다리던 병사는 평화로운 이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사이렌 소리는 이제 더 이상 들려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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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서에서 보낸 마지막 밤을 생각했다. 내일이면 헤어지게 될 얼굴들에게 간단히 인사를 건네고 방으로 돌아와 후임과 치킨을 시켜 먹었다. 석달 전쯤 소방서에 처음 배치되어 군생활을 시작한 후임은 내게 심정이 어떤 지를 물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특별한 감흥은 없었다. 사실 말출을 나왔을 때부터 이미 전역을 한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일요일 전역이라 전역식을 금요일에 미리 한 영향도 컸다.


그렇게 치킨을 다 먹은 후, 마지막 뒷정리까지 하고 방으로 돌아가려는데 소방서의 야경이 눈에 들어왔다. 주말의 소방서는, 특히 밤이 되면 이곳은 고요함을 넘어서 우주의 적막함을 떠올리게까지 한다. 담벼락 너머에서는 주변 술집에서 틀어주는 어느 가수의 음악이 들려오고 있었다.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그 풍경을 바라보았다. 가슴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이건....... 난생 처음 느껴보는 이상한 감정이다. 내일이면 이곳을 떠나야한다는 사실 때문일까? 그토록 떠나고 싶어 했으면서? 아아... '그리워하게 될까, 그리워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의 대답은 결국 긍정의 몫으로 돌아가는 것일까.


나는 눈을 가만히 감았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 감정에 나를 내맡기고 천천히 눈을 떴다. 흘러 가는대로 발걸음을 놓았다. 한 장면씩 꼼꼼하게 소방서의 구석구석을 눈에 담았다. 갑자기 2년 전, 미래를 기약하며 학교를 떠나던 날이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지금 이 감정은 그 때와 비슷한 것 같다. 하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다. 그날에 나는 적어도 다시 학교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오늘의 소방서는 내 삶에 있어서 영원한 마지막이 될 것이었다. 더불어 내 젊음의 일부와도 작별도 고해야 했다. 돌이켜보니 바로 그 사실들이 나를 슬프게 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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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9건. 지난 23개월 동안 공식적으로 내가 나간 출동 건수의 총합이다. 그래도 제법 바쁜 곳에서 복무를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계산해보니 생각보다는 건수가 조금 적다(물론 비공식까지 합하면 저것보다 조금 더 많긴 하겠지만).


여하튼 그동안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좋은 선임/직원이 있었는가 하면 나쁜 선임/직원도 있었다. 챙겨주고 싶은 후임이 있었다면 불편한 녀석도 있었다. 나이롱 환자들을 만날 때면 자주 귀찮았고 우리를 막 대하는 주취자들 앞에선 자주 주먹을 쥐었다. 환자를 병원에 데려다주고 나면 오늘도 한 건 했다는 생각에 뿌듯함을 느꼈으며 결국 구해내지 못했을 때는 무력감과 절망감에 동시에 빠져야 했다.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절박하게 살아주기를 바라는 감정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도 배웠다.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들일수록 더 자주 아픈 현실에 서글프던 때도 적지 않았다. 종종 유치원에서 견학 온 아이들이 나를 ‘소방관 아저씨’라 불러주며 감사 인사를 전할 때면 갑자기 솟아난 사명감에 가슴이 뜨거워진 적도 있었다.


모두 다 하나같이 반짝반짝 빛나는 소중한 기억들이다. 내가 일기에서 이야기한 사례들은 아주 일부에 불과하다.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했지만 그들 모두의 이야기를 온전하게 원숙한 솜씨로 적어내지 못한 것은 그저 미안하고 부끄러울 따름이다. 부족하기만한 나라서 더더욱 그렇다. 그렇지만 분명히 말하고 싶었다. 영광스러웠다. 타인을 돕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로 누군가의 인생에 선한 영향을 불러왔다는 사실이. 영웅들의 곁에서 그들과 같은 이름으로 불리며, 같은 시공간 속에서 함께 있었다는 사실이. 여러분들의 곁에서 지난 23개월 간 나는 행복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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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아주 오랫동안 기다려온 이 일기의 마지막 문장이다. 나는 샐린저의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 속에서 ‘홀든 콜필드’의 마지막 대사를 골랐다. 그간의 시간을 뒤로하고 나는 드디어 내 삶의 2분기에 진입한다. 그동안 미숙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했다. 이건 내 이야기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나를 스쳐간 수많은 이들을 위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러니 이 마지막 문장은, 바로 그들을 위해서다.


“난 이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한 걸 후회하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건, 이 이야기에서 언급했던 사람들이 보고 싶다는 것뿐.
이를테면, 스트라드레이터나 애클리 같은 녀석들까지도.
모리스 자식도 그립다.
정말 웃긴 일이다.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
말을 하게 되면, 모든 사람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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