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_자살에 중독된 사람들

2018.12.22. (D-22)

by 뮤노

겨울이라 해가 늦게 뜬다. 아침을 차리러 나왔더니 밖은 여전히 깜깜하다. 누가 보면 여전히 새벽 3시인 줄 알겠다. 옷깃을 여미며 식당으로 얼른 들어가 온풍기부터 켰다. 식판을 셋팅하고, 전날 먹은 반찬들 중 상태가 좋은 것들로 꺼내놓았다. 이제 국만 끓이면 끝이다. 기다리던 차에 믹스커피라도 타먹을까 싶어 종이컵을 꺼내려는데 출동벨이 울렸다. 우리 관내 출동이다. 새벽 내내 그렇게 지겹게 울려댔으면 이제부터는 좀 조용할 만도 할 텐데....... 퇴근까지 기어코 부려먹을 작정인가 보다.


가스레인지 불을 끄고 급하게 밖으로 튀어나왔다. 구급차에 올라타니 벌써 탑승하신 반장님들께서 신고 위치를 확인하고 계셨다. 싸이렌 소리가 울리고 구급차는 부리나케 달려 나간다. 우리를 부른 건 ‘죽고 싶다’는 어느 남자의 신고전화였다.


한 손에 외상용처치가방을 들고 구급차에서 내렸다. 머리 위에 쓴 헬멧이 무거웠다. 그 무게를 견디며 고개를 들자 익숙한 빌라의 외관이 눈에 들어왔다. 다들 지쳤는지 이제는 별 말도 없이 묵묵히 4층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해당 집에 도착해 문을 두드리자 술에 취한 듯, 제법 눈이 풀린 남자가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벌써 우리와는 세 번째 만남이었다.


“돌아가셔도 되요. 아무 일 없어요.”


남자는 어기적어기적거리며 다시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걸터앉았다. 방구석에는 빈 녹색 술병들이 한 가득이다. 하다하다 이젠 죽고 싶다는 소리를 술주정으로 내뱉는 건가. 별일 없을 거면 애초에 신고는 왜 하는 거야? 그것도 여자친구 집에서 말야... 그 여자는 또 무슨 죄라고. 투덜대는 말들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그러나 이걸 말해봤자 해결될 상황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그저 알겠노라, 고개를 끄덕이고는 확인 차 다시 한 번 물었다. ‘정말 괜찮으신 거 맞죠?’ 그러자 남자는 일없다는 듯 손을 휘젓는다. 다친 곳도 없으니 굳이 병원으로 이송할 필요도 없다. 그냥 미이송 귀소다.


다시 발걸음을 돌려 계단을 내려간다. 무거운 다리 탓에 복도는 맥없는 발소리들로 웅성거린다. 피곤한 밤이다. 내가 아는 한, 방금 만난 남자의 나이는 서른넷이라고 했다. 그건 앞서 걷고 있는 우리 구급대원 반장님과 같은 나이였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소방서에도 소위 말하는 ‘블랙리스트’가 있다. 일명 상습신고자들이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본인의 소변줄을 갈아야한다며 부르는 14층 할아버지. 술만 먹으면 우리를 찾는 만득이 아저씨. 쓰레기 태우는 게 취미인 고물상 주인.


한 번 블랙리스트에 오르면 소방관들에게는 말 그대로 경계의 대상이 된다. 그렇게 되면, 필요한 경우 119종합상황실에서 출동 자체를 거부할 수도 있다. 편하다고 무분별하게 긴급서비스를 이용하다가 정작 필요한 순간에 제대로 도움을 받지 못하는 그런 상황이 올 수도 있는 것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블랙리스트들의 몫이다. 하지만 가끔은 안타까운 사람들도 있다. 오늘 내가 만났던 남자와 같은, 일명 '자살중독자들'이다.


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부정맥이 의심되는 환자를 막 이송하고 난 직후였다. 출동단말기로 새로운 지령이 날아들었다. 시건개방 관련 출동이었다. 지령서를 살펴보는데 옆에 뜬 주소가 유난히 낯이 익었다.


현장에 가보니 다른 센터에서 온 구급대와 구조대가 이미 도착해 있었다. 현관문은 이미 구조대원들이 개방해둔 상태였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천천히 집 안으로 들어갔다. 먼저 들어와 있던 구급대원이 우리를 발견하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방바닥에는 한 남자가 가지런한 자세로 누워 있었다. 또 다른 구급대원 한 명은 그의 위에서 연신 가슴압박을 실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는 이미 죽었다. 환자와 연결되어 있는 AED는 아무 반응도 없었다. 피부는 창백했고, 다리에는 피가 몰린 탓에 검붉은 시반이 남았다. 목에 남은 자국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목을 매단 것 같았다.


우선 이대로 계속 있을 수 없으니 가져온 들것에 환자를 실었다. 우연히 만진 환자의 다리가 소름끼치도록 차가웠다. 꼭 냉동육을 손에 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이번엔 내가 환자의 가슴을 눌렀다. 심장이 있던 그곳 역시 온기를 잃은 지는 오래인 것 같았다. 누르는 충격 때문인지 환자의 고개가 까딱까딱 거렸다. 나는 그 얼굴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불과 이틀 전만 해도 우리에게 죽고 싶다며 신고한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는 우리 구급대원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했다. 하지만 그가 이렇게 정말 죽을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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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급대원들 사이에는 이런 말(?)이 돈다. 정말로 죽는 사람들은 절대로 신고를 하지 않는다. 바꿔 말하면 죽겠다고 신고하는 사람들 중에는 진짜로 죽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날에 내가 만난 남자는 예외였다. 보통 자살환자들의 경우, 실제로 일을 벌이기 전에 몇 가지 징후들을 보인다고 한다. 말하자면 그가 우리에게 걸었던 ‘나 죽겠소’하는 전화도 그런 징후들 중 하나였던 것이다.


죽고 싶다는 말을 하는 건 쉽지만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어렵다. 그건 짐작도 어려울 만큼의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러니까 그들이 거는 전화는 정말로 내가 죽어버리겠다는 경고성 전화가 아니다. 그건 너무 무서우니까, 두려우니까 제발 좀 자기를 구해달라는 일종의 SOS 요청인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바램과 달리 실제로 119(혹은 경찰이)가 할 수 있는 일은 너무나 적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죽기 직전의 그 순간에 그의 마음을 되돌려 다시 땅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뿐이다. 혹은 경찰서에서 하루 정도 데리고 있으면서 혹시 모를 상황으로부터 그를 잠시나마 보호하는 것뿐이다.


그렇지만 이런 방법으로는 그들이 삶에서 겪는 우울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그들은 절벽에 간신히 매달린 채로 살려달라고 소리친다. 그런 그들을 끌어올려줄 수 있는 건 주변 사람들과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노력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악순환이 반복된다. 마치 파도처럼 죽고 싶다는 생각은 끊임없이 밀려올 테고 언젠가는 119의 만류도 통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은 아마도 진짜 죽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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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다. 물론 그들을 돕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실제로 내가 만난 그들의 가족 중 상당수가 이미 지쳐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어떻게든 그들을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구조신호를 별 것 아닌 투정처럼 바라보기도 한다. 그저 그들이 나약해서 그럴 뿐 실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지만 그건 절대로 아무 것도 아닌 일이 아니다. 그들은 사력을 다해 소리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는 기꺼이 그들의 외침을 들어주어야 한다. 만약 우리가 그 외침을 일상의 소음으로 치부한다면 그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은 정말로 뛰어내리는 일 밖에 남지 않게 된다.


구조자는 119만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119가 구하지 못하는 생명도 있는 법이다. 그런 그들을 구할 수 있는 건 지금 당장 곁에 있는 사람뿐이다. 만약 함께 있는 이들이 지쳤다면 그들을 둘러싼 온 사회가 나서주어야 한다. 119는 당장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그들을 설득해 돌려보내고, 그들의 가족은 네 잘못이 아니라며 용기를 복 돋아야 한다. 이웃과 친구들은 그들이 다시 돌아온 일상에 무사히 적응할 수 있도록 응원하고, 공동체는 그들이 처한 비극적 상황이 사회구조에서 비롯된 문제는 아닌지 고민하며 함께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아야 한다. 지나친 호들갑이 아니냐는 소리가 들려와도 어쩔 수 없다. 생명을 구한다는 건 원래 그런 일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


지금 당장 눈앞에서 추락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서둘러 달려가 그들의 손을 잡아보지만 우리는 끝내 그들을 구하지 못한다. 가끔은 이미 그들의 운명을 아예 그렇게 되어버리도록 누군가가 결정해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끔찍한 도돌이표의 주술이다. 그들은 결국 'Fine(악곡의 마침)'를 찾아 멎을 것이다. 사람들을 구하라는 직업윤리에 따라 최선을 다해보지만 그들은 소방관의 방식으로는 구하지 못한다. 그래서 더 슬프다. 기다란 무력감이 몰려온다. 결국 남은 거라곤 무사를 향한 기도뿐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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