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_'의방'이 아니라 '이방인'

2018.11.24. (D-50)

by 뮤노

※오늘 나는 단단히 비뚤어질 예정이다. 그러니 그 점을 참고하고 아래의 글을 읽어주기를 바란다.


대부분의 소방관들은 식사를 구내식당에서 해결하곤 한다. 하지만 종종 식당 이모님이 나오지 않으시거나, 도시락을 배달해주는 업체가 쉬게 되면 밖에서 밥을 사 먹는 경우가 있다. 그 날도 그런 날들 중 하나였다.


저녁식사를 위해 직원들과 함께 소방서 근처에 있는 식당에 갔다. 각자 허락된 금액 내에서 음식을 주문하고 후임들과 함께 기다리고 있는데, 옆테이블에 앉아계시던 주임님께서 불쑥 우리에게 말을 거셨다. 최근 군복무 단축이 시행된 것과 관련해서 우리에게 궁금하셨던 게 있던 모양이었다. 각각 단축된 날짜를 말씀 드리자 이번엔 근무방식을 물으셨다. 역시 최근에 시행된 3인 구급대를 염두에 두고 던지는 질문인 듯싶었다. 바뀐 근무형태를 말씀드리자 그는 장난스레 웃으며 한 마디를 툭 던졌다.


"편해졌네? 좀 더 고생해도 되겠다, 야."


아, 그게 또 그렇게 됩니까. 말년이라고 위에서 선물 좀 주나봅니다. 적당한 말들을 골라 대답을 건네고 컵에 물을 따라 마셨다. 주임님은 우리를 여전히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 문장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지을 수 있는 가장 유쾌한 얼굴로 컵을 내려놓고 나도 그를 마주보았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그가 입을 뗐다.


"하긴 너네가 군인이긴 하냐."


또 그 소리다. 그리고 '나 때는 말야'라는 접두어로 시작되는 아주 익숙한 레퍼토리들이 마치 기차처럼 줄줄이 따라 나온다. 마주 앉은 후임들의 얼굴 위로 불편한 기색이 떠올랐다. 아마도 내 표정도 그러할 것이다. 본능적으로 미소를 지으려 애를 썼다. 2년 가까이를 이들과 생활하면서도 늘 적응이 되지 않는다. 그러면서 동시에 억울하다. 당당하게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자 이곳에 왔음에도 불구하고 무슨 죄라도 지은 사람 마냥 부끄러움과 초라한 감정을 느껴야 하는 이유는 대관절 무엇일까.


속에서는 열이 조용히 끓어올랐다. 도대체 뭐 얼마나 대단하신 부대를 나오셨다고. 하물며 특수부대 출신의 구조대원들도 우리의 병역을 가지고 왈가왈부하지 않는데 일반 사병 출신의 직원이 우리에게 소위 군부심을 부릴 이유는 또 무엇이라고(더 웃긴 건, 그런 그가 구조대원들 앞에선 자신의 군대 시절을 절대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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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그들과 함께 일한다는 사실이 정말 자랑스러웠다. 아시다시피 소방관은 전 직종을 망라하여 국민들에게 존경 받는 직업이니 말이다.


한 번은 화재출동을 다녀오다가 어느 중학교 근처를 지나간 적이 있었다. 마침 하교를 하던 참이었는지 학생들이 삼삼오오 무리지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정류장에서 우리를 발견한 학생들 몇몇이 우리를 향해 '수고하세요'란 말과 함께 손을 흔들어 주었다. 옆자리에서 운전을 하고 계시던 반장님은 경적을 한 번 울리는 것으로 감사인사를 건넸다. 생각보다 소방차의 경적소리가 컸던 바람에 깜짝 놀란 학생들이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그 나이 때다운 천진난만함이었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나도 모르게 미소가 피식 새어나왔다. 마음속에서는 뿌듯함이 울컥 솟아올랐다.


후임 중 한 명은 유치원생을 대상으로 한 안전교육을 마치고서, 아이들이 직접 만든 유자청을 ‘우릴 지켜주셔서 감사하다’며 갖다 주자 앞으로는 현장에서 뭐라도 하나 더 해야 할 것 같다며 기쁜 낯을 드러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얼마 전에는 구급대원 한 명이 출동을 나갔다가 조금 늦게 도착했다는 이유로(심지어 우리 관할도 아니었는데도) 환자의 보호자에게 멱살을 잡히는 등 봉변을 당한 일이 있었다. 사무실에 앉아 있던 모두가 그 사실에 분노를 표했다.


나를 비롯한 우리 의방들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징집이 되어 온 몸이었지만, 어쨌든 우리도 소방관들과 같은 옷을 입고 함께 현장을 누비는 사람들이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중앙소방학교에서 훈련을 받을 때 교관 중 한 명이 우리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비록 너희들은 군인이지만 시민들에겐 너희도 똑같은 소방대원들 중 한 명이다. 그러니 소방의 이름에 먹칠을 하지 않도록 언제나 최선을 다해야 한다.”


관계없는 기사 사진입니다 (http://m.ccsimin.com/51018)


하지만 정작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내가 의무소방원으로 생활하면서 그들에게 가장 들은 말들 중 하나는 '니들이 무슨 군인이냐'였다. 아, 다른 말도 있다. '니들은 군인 아니냐?' 전자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너희는 남들보다 편하게 생활하니까 좀 고생할 필요가 있어. 한편 후자는 이런 의미다. 토 달지 말고, 까라면 까. 우리는 전적으로 그들의 필요에 따라 군인이 되기도, 군인이 되지 않기도 한다. 그 기준을 우리도 알지 못한다. 다만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건 그들에게 우리는 가족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전날 야간까지 뼈 빠지게 구급출동을 다녀온 의방에게 한 센터장은 오늘 인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다시 구급차를 태운다. 다음날엔 원칙적으로 비번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하자 근무일지에만 그렇게 적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 되묻는다. 그러면서 ‘니들은 군인이 아니냐?’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한편 휴가라도 쓸라 치면 어떤 팀장은 대뜸 화부터 내면서 이런 말까지 내뱉었다. 너희들이 도대체 이곳에서 하는 일이 뭐냐? 어차피 너희들은 여기서 쓸모도 없으니, 가서 아예 오지 말아버려라. '너희들은 군인도 아니니까.' 그런 비난들을 수백 번쯤 참고 참다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건의라도 올리면 서운하다는 듯 이런 볼멘소리가 나온다. '예전 의방들은 다 하던 걸, 왜 너희들은 사서 불만이냐.'


왜 불만이냐고? 예전에 있던 의방들은 다 했던 거라고? 그랬겠지. 그때는 그런 부조리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시대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세상이 달라졌다. 이젠 당신들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그런 시대가 아니다.


얼마 전 뉴스에서는 일반 육군 사병들과 장군들이 자유롭게 토론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행사를 보도한 적이 있었다. 그러니까 오늘은 일반 군대조차도 군인을 군복 입은 시민으로 대우하고 존중하는 시대다. 따라서 우리 의무소방원의 근무와 권리도 법과 규정의 이름으로 정의되고 보장된다. 그러니 과거 당신들이 의방들로부터 누려오던 것들은 오로지 우리의 선의로만 존재한다. 그러니 그 선의를 베풀지 말지는 수혜자인 당신들이 결정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하는 일이 없다고? 그렇다면 여러분들이 먹는 밥은 누구 손에서 나오는 걸까? 청소는 누가하고 유치원생 교육은 또 누가 하는 거지? 틈만 나면 2층 내근들에게 불려 올라가는 건 또 어떻고? 비번 보장이나 제대로 해주고서 그런 불평불만을 내뱉는 건지? 출동업무만 일로 칠거면 여러분들이 지금 열심히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하는 것도 일이 아니기는 매한가지 아닌가? 만약 우리가 편하게 군생활 하는 애들이면 당신들도 편하게 돈 벌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대관절 우리와 당신들이 하는 일이 뭐 얼마나 그렇게 차이가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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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소방관 전체를 향해서 쏟아내는 비판은 당연히 아니다. 나와 함께 지냈던 직원들 모두가 그런 식으로 우리를 대했던 것은 아니다. 그 중에는 좋은 사람도 많았고, 존경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미꾸라지 한 마리가 맑은 물을 흐리게 할 수도 있는 법이다. 그리고 그 때마다 그 사실이 번번이 우리를 상처 입혔다.


의무소방원이 군대 중에서도 나름 편한 보직에 속한다는 것은 나도 인정한다. 실제로 우리 중 적지 않은 수가 그런 것 때문에 의무소방원으로 입대하기도 하니까. 그러니까 꿀방이니 뭐니 남들이 부러움과 비아냥을 섞어 우리에게 말하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소방관들에게만큼은 그런 말을 듣고 싶지 않다.


의무소방은 2004년 홍제동 화재참사 당시 6명의 소방관이 순직한 사고를 계기로 부족한 소방인력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창설되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소방관을 돕기 위해 국가의 부름을 받은 사람들인 것이다. 하지만 몇몇 소방관들의 무시 어린 시선을 느낄 때마다, 솔직히 말하면 구급대원이 주취자들을 도우러 가서 도리어 폭언을 들었을 때와 같은 감정을 느낀다. 우리가 돕기 위해 찾아간 사람들에게 무슨 이유로 저런 말을 들어야 하는 거지? 단지 23개월일 뿐이지만 그래도 함께 지내는 동안에는 가족 아닌가?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 비록 나중에 돌아보았을 때 정도의 차이는 있을 지 언정 지금 현재 그 순간을 겪어내고 있는 사람들에겐 크든 작든, 고통은 고통이다. 저마다 나름대로 고충을 겪고 있고, 어느 누구도 타인의 사정을 함부로 얕잡아 볼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옆에서 함께 앞을 헤쳐 나가는 동료에게는 더더욱. 그건 결국 '배신'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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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속에서 유진은 자신을 걱정하는 애신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난 익숙해서. 조선에서도, 미국에서도 늘 그랬소. 늘... 당신들은 날 어느 쪽도 아니라고 하니까."


얼마 전 있었던 정훈교육에서 소방과장님은 우리 의무소방원과 사회복무요원들에게 '소방조직의 일원으로서 항상 소속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복무에 임해 달라'고 말씀하셨다. 그런 그에게 나는 드라마 속 유진의 말을 고스란히 되돌려준다. “소속감이니, 자부심이니... 그러면서도 늘 당신들은 우릴 어느 쪽도 아니라고 하니까. 군인으로서도, 소방대원으로서도.”


그는 우리가 전역한 이후에도 소방조직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어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물론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한 때는 소방이라는 조직의 일원이라는 사실이 가슴 벅차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오늘의 나는 잘 모르겠다. 소방과장님의 말씀대로 그들이 필요한 때에 그들의 손을 들어줄 선의가 내게 남아있긴 한 건지... 아니, 그 전에 오히려 내가 먼저 묻고나 싶다. 우리가 소속감을 가지기 이전에 여러분들이야말로 우리를 정말 소방의 가족으로 생각해주고 있는지 말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잡은 '선'을 내려놓지 않는 사람들에게 우리도 '손'을 내밀어줄 생각은 추호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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