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16. (D-58)
나는 영화를 매우 좋아한다. 입대 전에는 적어도 일주일에 3편을 꼬박꼬박 챙겨보았다. 학교에서는 영화제작동아리 활동을 했었다. 한 때는 꿈이 영화평론가였던 적도 있었다. 영화를 볼 때는 가급적 장르나 만듦새를 가리지 않는다. 아무리 마이너한 영화라 할지라도 그 나름대로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피하고 싶은 영화들도 있다. 고어나 슬래셔 장르, 학원폭력물 등(<크로우즈 제로> 같은)이 그렇다. 일반 대중영화를 보더라도 자극적이거나 잔인한 장면이 나오면 나는 눈을 감아버린다. 한 번은 영화 속에서 살아있는 사람의 팔을 잡아떼어버리는 장면을 보고는 며칠을 잠 못 이루던 적도 있었다. 이런 성격 때문에 입대 전에는 여러모로 걱정이 많았다. 각종 재난 및 사고 현장에서 활동하는 의무소방원의 근무 특성 상 끔찍한 순간들을 자주 마주할 텐데 그런 것들을 잘 견뎌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역을 코앞에 둔 오늘날에 와서 당시를 생각하면 꽤나 우스운 기우였던 듯하다. 막상 접한 현장은 걱정했던 것보다 견딜 만 했고, 그 곳에서 나는 생각보다 침착한 사람이었다. 오죽하면 구급대원이야말로 내 천직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그런 내가 종종 무너져 내릴 때가 있다. 그건 어린 아이들의 죽음을 마주할 때다. (아마 이전에도 한 번 언급했던 것 같은데)2014년 세월호가 침몰했을 당시, 나와 함께 호흡을 맞췄던 구급대원 반장님 한 분은 현장 지원 차 팽목항을 방문 하셨다고 한다(당시에는 전국의 소방관들이 참사현장을 돕기 위해 돌아가면서 방문했다). 하지만 말이 현장지원이었지 실은 잠수대원이 건져온 익사체를 가까운 병원으로 옮기는 일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중에는 단원고 학생도 끼어 있었다.
그 날 이후로 반장님은 수도꼭지에서 물이 떨어지는 것만 보아도 가슴이 답답해지고 눈물이 흐르는 증상을 경험하셨다. 맞다. 소위 말하는 PTSD다. 각종 현장에서 자그마치 20년을 누벼온 베테랑 구급대원이었는데도 말이다.
반장님의 쓸쓸한 기억을 전해 들으며 나는 한 소년의 얼굴을 떠올렸다. 이미 나의 글에서 언급한 바 있었던(8화 <말의 힘> 참조) 나의 첫 번째 중증외상환자. 술에 취한 형제들의 생각 없는 독설로 스스로를 비관한 나머지 아파트 11층에서 몸을 던진 열여덟살의 소년.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른 지금도 형제들이 쏟아낸 애원은 변함없이 또렷하다. 남겨진 가족들을 향한 나의 걱정과 연민만큼이나.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만약 지금의 나라면, 그러니까 조금 더 침착하고 민첩했다면 그 아이를 살려낼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나는 한 소녀의 죽음을 생각한다. 늦은 밤 11시, 보통의 군인들이라면 이미 취침시간을 한참 넘긴 그 시간에 나를 찾는 출동벨이 울렸다. 어기적어기적 이불에서 기어 나와 몽롱한 정신으로 구급차에 올라탔다. 지령서를 확인하니 친구가 목을 매고 죽었다는 신고였다. 이미 가망이 없을 거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는 AED와 인튜베이션 세트를 챙겼다.
현장에 도착하니 신고자로 보이는 사람 둘이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생각보다 앳된 얼굴에 내심 놀라며 그들의 안내를 받아 어느 옥탑방으로 향했다. 살짝 열린 문을 당겨보니 어두운 실내가 펼쳐졌다. 본능적으로 손을 더듬어 불을 켰다. 현관 바로 앞에는 작은 강아지 한 마리가 우리에 갇힌 채 낑낑거리고 있었다. 방바닥은 온통 개똥 천지였다. 그리고 부엌 끝에서 가지런히 누워있는 한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신고자가 내려놓은 모양이었다.
주저 없이 다가가 AED부터 켰다. 환자의 목 주변에는 검붉은 띠가 선명했다. 고개를 들자 벽에 걸린 헤어드라이어 전선이 보였다. 아마도 저걸 이용했던 듯하다. 시선을 내려 이번엔 환자의 다리를 보았다. 이미 시반이 형성된 뒤였다. 환자의 가슴에 AED 패치를 연결하고 심전도 리듬을 체크했다. 기계는 그녀에게 제세동치료가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이제부터 그녀는 환자가 아니라 망자다.
때마침 경찰도 도착했다. 구급대원 반장님들은 그녀의 인적사항을 파악하기 위해서 신고자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나는 그녀의 몸에 붙어 있던 패치들을 제거하고, 들고 온 장비들을 도로 챙겼다. 현관을 나서는데 그들의 대화소리가 들렸다. 그녀의 나이를 묻는 질문에 신고자는 '열아홉'이라고 대답했다. 나도 모르게 깜짝 놀라 고개를 돌아보았다. 학교를 묻자 익숙한 이름이 튀어나왔다. 당시 내가 근무하던 센터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나도 출동 때문에 몇 차례 가봤던 곳이기도 했다.
그 날 이후, 나는 꽤 앓았다. 무거운 돌을 얹어놓은 듯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나는 그 아이의 마지막 얼굴을 떠올렸다.
그 아이는 최선을 다해 자신의 죽음을 준비했던 듯하다. 화장기로 물든 얼굴은 산 사람의 생기와 닮아서 얼핏 보면 그냥 잠이 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옷은 말끔하게 외출복 차림이었고, 기저귀라도 착용했던 양 '행잉(목을 매달아 죽음)'치고는 하의가 깔끔했다. 그 사실들은 나를 더욱 더 슬프게 만들었다. 그 아이가 그토록 공을 들여 준비했던 게 왜 하필이면 자신의 죽음이어야만 했을까. 도대체 현실의 무엇이 아직 피어나지 못한 꽃을 절벽으로 몰아갔던 걸까.
우리가 함께 사는 가족은 없는 지 신고자에게 물었을 때 그들은 그녀가 어떤 사정으로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고 있다고 했다. 그 외로운 소녀는 죽기 전날 밤, 신고자 중 한 명과 함께 이 집에서 잠을 잤다. 그 때까지만 해도 신고자는 그녀에게서 아무런 낌새도 눈치 채지 못했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 신고자는 약속 때문에 아침 일찍 그녀의 집을 나섰고 그것은 곧 소녀의 생전 마지막 모습이 되었다.
이후 그녀의 집에 자신의 지갑을 놓고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신고자는 뒤늦은 시간에 지갑을 가지러 그녀의 집에 왔다. 하지만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그녀가 받질 않자 신고자는 지갑을 찾으러 들어가겠다는 문자를 보낸 뒤 이미 알고 있던 비밀번호로 직접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 이후부터는 내가 위에서 기술한 그대로다. 부모님에게도, 심지어 함께 전날 밤을 보냈던 친구에게조차 비밀을 털어놓지 못하고 끙끙 앓던 소녀는 결국 외롭게 죽음을 맞이했다. 아무한테도 도움을 청하지 못하고 홀로 죽음이라는 무게를 감당해야 했던 소녀가 느꼈을 고통과 두려움을 나는 감히 알지 못한다. 다만 숨 죽여 후회하고 미안해할 뿐이다. 어쨌든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 그리고 당신이 죽어가던 그 순간에 한가롭고 평온한 시간을 보내던 사람으로서(그건 나의 잘못이 아니라는 말은 소용없다. 어쨌든 누군가의 죽음을 알게 된 순간부터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그들의 죽음에 책임의식을 갖게 될 수밖에 없다).
어제는 수능이었다. 어제 수고한 수험생들 중에선 내 여동생도 있었다. 군인 오빠라 많이는 해주지 못하고,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약간의 용돈을 보냈다. 올 한 해는 그 애에게 유독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종종 휴가를 나가서 보면 그 애는 항상 방에 틀어박혀 자기만의 시간을 보냈다. 아버지는 그런 녀석을 볼 때마다 답답해 하셨고, 종종 윽박도 지르셨다. 나 역시 오빠란 이름으로 쓴 소리를 내뱉곤 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상처 받은 아이는 더욱 더 깊은 골방 속으로 스스로를 욱여넣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애는 꿋꿋하게 결승선을 통과했다. 며칠 후면 그 애는 20살이 되고, 성인의 세계에 발을 딛는다. 오빠로서 미안하고 대견한 마음을 담아 그 애가 앞으로도 주어진 길을 잘 걸어갈 수 있기를 응원한다. 그 애의 스무살은, 그리고 그 이후는 그렇게 착실히 겹을 쌓아갈 것이다.
하지만 어떤 아이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내가 마주한 소년과 소년의 나이는 각각 열여덟, 열아홉이었지만 공교롭게도 모두 2000년생이었다. 내 여동생과 나이가 같다. 살아있었다면, 그 애들도 마찬가지로 수능을 끝마치고서 갑작스레 찾아온 자유의 달콤함을 한창 누리고 있었을 테지. 그러나 그 가정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다. 이곳은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 우주이니까. 다만 남겨진 이들만이 그들의 빈자리를, 그들의 생전 몸무게만큼이나 무겁게 지고 있을 뿐이다. 나머지는 점차 그들을 잊어버릴 것이다. 아니, 알지도 못한다. 그리고 어쩌면 나조차도 그렇게 되어갈 것이다.
멍하니 글을 써내려가다가 문득,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벌써 몇 번의 계절이 지나버린 이 일들을 뒤늦게 끄집어냄으로써 나는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지금 우리 아이들은 외로워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관심과 애정이 필요할 때입니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자살률 통계가 몇 퍼센트인지 아십니까, 뭐 이런 거?
글쎄.......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말하고 싶었나보다. 모두가 '끝'에 관해서 환호하고 있을 때, 경기장 밖으로 아웃되는 바람에 결승선의 존재조차 확인하지 못한 아이들도 있다는 사실을. 그 아이들에 대해서 우리는 단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