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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Jul 12. 2024

호의와 권리 사이에서 배운다

                          

학창 시절 수학 점수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수학에 흥미를 갖게 된 건 대학에 들어가 경제 수학 강의를 들으면서부터였다. 고지식하고 깐깐하며, 유머라고는 하나도 없던 경제 수학 교수님은 수업도 참으로 건조하기 이를 데 없이 진행했다. 그런데 신기하기도 하지. 나는 경제 수학 수업을 들으며 수학의 참맛에 빠지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는 답이 중요했는데, 경제 수학 시간에는 과정이 중요했다. 그러니까 고등학교 시절 수학이 단순한 ‘찍기’였다면, 과정을 생각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경제 수학 수업에선, 마치 퍼즐을 푸는 것 같은 통쾌함이 있었다.      


결국 그 경제 수학이 나를 숫자와 관련된 삶으로 이끈 것인지도 모른다. 대학 졸업반부터 수학 과외를 했고, 학원에서 사회초년생으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수학이라면 공식이 있는 명쾌함 덕에 가르치기에 수월하다고 늘 생각했다. 물론 이런 내 맘과 달리 아이들은 자발적인 수포자의 대열에 속속 합류했으므로, 수학을 가르친다는 건 결국 그 발걸음의 속도를 늦추거나, 방향을 돌려보려고 애쓰는 일과도 비슷했다.     


이처럼 숫자와 함께 청춘을 보냈지만, 사실 숫자도 숫자 나름이다. 학원을 운영할 땐 매번 돌아오는 세금 신고의 계절이면 한 달 전부터 소화가 안 되는 기분이 들었다. 비록 머리에 쥐가 날 듯했지만, 세무서를 통하는 비용을 절감해보겠다고 홈택스로 매번 세금 신고를 직접 했다. 영수증을 쌓아놓고, 막힐 때마다 인터넷에서 해결 방법을 찾겠다고 끙끙거리기도 했다. 오래 운영하던 학원을 딸에게 넘겨주고 나서야 세금 신고의 계절이 와도 맘이 느긋했다. 

그런데 딸은 나와 달리 처음부터 세무사 사무실에 신고를 맡겼다. 옆에서 보니 규모가 크게 달라지지도 않았는데 나보다 훨씬 적은 세금을 냈다. 그제야 나 역시도 어쩌면 세무사에게 맡기는 것이 차라리 절세의 지름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하자면 길을 아는 사람은 가까운 길로 질러갈 수도 있는데, 그 길을 모르는 이는 돌아가더라도 큰길을 고집하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사실 전문가의 힘을 빌리는 것이 무조건 절세인 것도 아닐 것이다. 어렵고 복잡하지 않은 것은 역시 홈택스로도 대부분 해결되며, 또 그러라고 만들어놓은 프로그램일 테니까. 어쨌거나 절세의 요령 따위는 모르고, 의도치 않은 자칭 성실납세자로 몇 년을 보내고 지금은 세금 신고에서 해방되었느냐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더 이상 학원을 운영하지는 않지만 나는 주 소득원이 임대료인 임대사업자로서 때마다 세금 신고를 해야 한다.      

어느 날 오래 거래한 세무사 사무실의 담당자가 퇴사 인사를 해왔다. 부가세며 종합소득세 날짜는 기억하지 않고 있어도 먼저 알려주며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라고 하던 사람이었다. 한 푼이라도 절세할 수 있다며 서류하나를 더 챙기던 사람이기도 했다. 나는 그녀를 본 적이 없고, 우리는 늘 카톡으로 업무 내용을 주고받는다. 그럼에도 몇 년을 세금 신고 때마다 연락한 사람이라 그만둔다는 말에 무척 아쉬웠다. 동시에, 후임자는 어떨지 걱정이 된 것도 사실이다.     


우려는 기우가 아니었다. 세무사 사무실의 오랜 담당자가 바뀌고 첫 부가세 신고 기간이 다가왔다. 그간 수기계산서를 발행해주던 걸 이제는 더이상 해주지 않는다고 했다. 그동안은 퇴사한 담당자가 서비스(?) 개념으로 해준 것인데 원래 해야 하는 업무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 후임자의 말을 들으며 '더이상 해주지 않는다'와 '서비스였다' 이 돌중 어디에 방점이 찍히는 걸까 잠시 생각했다. 아예 할 수 없다는 것인지, 서비스로는 해줄 수 없다는 것인지 모호했다. 잠시 난감했다. 하지만 정보는 널린 세상이니 엑셀 프로그램을 찾아 내가 직접 세입자들에게 세금계산서를 발행해주었다.      

카톡이나 이메일로 세금계산서를 발송해주고 나서 혼자 생각했다. 

‘이번 부가세 신고만 지나고 나면 거래하는 세무사를 바꿔볼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이것도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의 항목에 드는 걸까 싶었다. 전임자는 호의였는데 이제 나는 그것을 권리로 여긴다. 후임자의 입장에선 그것을 바로잡는 것이고, 내 입장에선 마치 무언가를 빼앗긴 기분이었던 거다. 

서로의 입장이 다르니 후임자 편에서 생각해보기로 했다. 바꾸어 생각하면 사실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끝내, 나였다면 아마 귀찮아도 해주었을 거라고 혼자 끄덕끄덕해본다. 적어도 ‘전임자가 계속 해드렸던 거라 이번엔 해드리는데 다음번부터는 어렵겠습니다’ 정도의 요령은 보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은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사실 이것이 속칭 내로남불아니겠는가. 서운한 생각은 버리고, 세금계산서 정도는 스스로 발행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맘먹어본다. 덕분에 그것이 별것 아닌 것도 알게 되었으니 역시 사람은 모든 순간 배우며 사는 것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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