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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Jul 10. 2024

권하는 건 어려워

                                 

주민센터의 문화강좌에 나오는 수강생들은 대부분 하나가 아니라 두세 개씩의 수업을 듣는 이들이 많다. 심지어 원하는 강좌가 있는 다른 동의 주민센터 강좌를 듣기도 한다. 늘 수업 시간에 가까스로 맞춰오시던 M님은 어쩐 일인지 오늘 10분이나 일찍 오셨다. 어쩐 일인가 싶은 내 맘이 얼굴에 드러났나 보다. “오전에 우쿨렐레하고 집에 안 가서 오늘은 일찍 왔어.” 하신다.     


수업 시작까지 여유 있는 시간에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m님은 악기뿐 아니라 여성회관에서 강좌도 몇 개나 듣고 계시단걸 알았다. 단순히 살림살이를 정리하는 줄 알았던 ‘정리 정돈의 힘’ 강의는 듣다 보니 인생을 되돌아보는 좋은 시간이라 너무 맘에 든다는 이야기. 치매 방지 지도사 교육도 받고 계신데 그 수업 중 듣기로는 글쓰기가 치매 방지에 그렇게나 좋다더라는 이야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내가 종종 수강하는 수원시 평생학습관의 정보도 알려드렸다. “역시 사람들을 만나야 이런 정보도 주워듣지”라며 얼른 스마트폰에 메모하셨다.     


같은 수강생 중엔 M님의 친구가 있다. 조만간 이사할 예정이라 이번 학기엔 오카리나를 등록하지 않으셨는데 이미 수강하고 있는 라인댄스가 같은 날 오전수업이라 곧 내려올 거라고 하며 의미심장하게 웃으셨다. 

“내가 어차피 라인댄스 끝나고 바로 오카리나 수업이니까 그냥 계속 오카리나 하라고 했어. 아마 좀 있다가 오면 등록한다고 할 거야.”

M님 말대로 라인댄스를 마치고 내려온 친구분은 오카리나 등록을 마쳤다. 네 말대로 이왕 오는 거 연달아서 배우는 거도 괜찮네, 하며 웃었다.     


나란 사람은 아무리 친한 사람에게도 뭘 권하지 못한다. 내가 이거 써봤는데 너무 좋아, 너도 써봐. 나 요즘 이거 배워, 너도 같이하자. 이런 말이 나는 힘들다. 그렇다 보니 아무리 속으로 서운해도 그만둔다는 사람을 붙잡거나, 같이 가고 싶은 사람을 이끄는 말을 하지 못한다. 그런데 가만 보니 M님은 나와 달리 내게 좋은 것이면 남에게도 권하고, 이끄는 것이 자연스러운 분이었다.      


지난주 수업 시간의 일이었다. 나와 글쓰기도 함께 하는 친한 사이인 E님은 요즘 배우는 것이 너무 많이 과부하가 걸려 힘들다고 했다. 쥐어짜도 뭐가 잘 안 나오는 글쓰기도 당분간 쉬고, 체력이 따라주지 않는 탁구도 그만하고, 백날 봐도 악보 따라가기 힘든 오카리나도 등록을 안 하신다고 했다. 영어는 주민센터가 아닌 학원에서 배우시는데 미리 몇 달 치의 수강료를 선납하기도 했지만, 제대로 해보고 싶은 맘도 있어 그것만 남기고 모두 쉬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당연히 아쉽고 서운했다. 함께 글 쓰는 시간이 좋았고, 오카리나에서도 짝꿍인데 E님이 안 계시면 허전하겠구나 싶은 맘이 가득이었다. 그러면서도 “에이, 그냥 해요. 그거 한 시간 반 나와서 오카리나 좀 부는 게 대수라고!”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끝내 하지 못했다.     

 

하지만 M님은 달랐다. 

“자기야! 그냥 등록해. 이거 배워서 뭐할 거 아니잖아. 나와서 그냥 한 시간 불고 들어가는 거지. 그 시간 동안 집에서 뭐할 거야. 나와서 뭐라도 배워야 활기가 있지. 우리 나이에 쉬었다가 다시 하는 건 없어. 쉬면 그냥 끝이야.”

M님의 권유에 망설이던 E님이 재등록을 하게 된 건 ‘고향의 봄’이 결정적이었다. 재등록이 끝나고 새로 시작하면 이중주 수업에 들어간다고 하시며 학기 마지막 수업의 끝 무렵에 선생님이 ‘고향의 봄’ 이중주를 해보자고 하셨는데 연주를 마치고 다들 오오오오, 했다. 물론 우리들의 연주가 훌륭해서는 아니고, 늘 한 파트만 하다가 처음 이중주곡을 연주해보니 다들 너무 새로웠던 거다. E님도 갑자기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고, 기회를 포착하신 M님의 시의적절한 권유가 이어졌다. “거봐, 이제부터 재미있어진다니까! 그냥 등록하고 가.”

결국 돌아가는 길에 E님은 재등록을 했었다.     


오늘 수업은 새로 학기가 시작되는 첫날이다. 대부분 재등록했고, 처음 뵙는 분들도 있다. 벌써 일 년 넘게 하는 수업이지만 새 학기가 시작될 때의 묘한 새로움도 있다. 지난주의 수업을 끝으로 오카리나를 쉬려던 E님도 출석하셨고, 친해진 얼굴들은 대부분 이번 학기에도 다시 만났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이번 학기부터는 이중주 연습이 시작되었다. 지난주 맛보기로 다 같이 연주해본 ‘고향의 봄’의 흥분(?)이 여전한데 선생님께서 펴라는 악보는 생각보다 어려운 곡이었다. 따라가기 힘들다는 E님을 보고 우리 모두 웃음이 터졌다. 그건 M님의 한마디 때문이었다.

“어떻게 해. ‘고향의 봄’ 덕분에 다시 붙잡아 앉힌 건데 그걸 안 하고 어려운 것만 해서….”     


역시 오늘도 유쾌한 웃음이 넘치는 시간이었다. 다음 주에 뵈어요, 활기찬 인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며 나는 M님을 생각했다. 나는 왜 저렇게 누군가에게 권하는 말을 하지 못할까. 나는 E님이 깊게 생각해 그만두겠다고 한 말일 테고, 그 말을 쉽게 꺼내지도 못했을 거라는 생각에 오히려 강력하게 그냥 계속하자는 말을 하지 못했었다. 무엇이 맞는 것일까 알 수 없었다. M님처럼 누군가에게 잘 권하고 이끄는 사람이 부럽다가도 행여 그랬다가 상대방이 맘을 표현 못 하고 부담스러워하는 건 아닐까 또 걱정되기도 한다. 타고나길 이러니 나는 아마 앞으로도 M님처럼 먼저 권하는 사람은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여전히 잘 권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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