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장 만들기 수업이 끝나고
집에서 하는 요리라곤 토스트와 계란후라이가 전부이다시피 한 불량 주부에게 고추장이 웬 말인가 싶다. 내세울 만한 일은 아니지만, 모든 요리는 완제품 봉지로 승부한다는 원칙의 인간이 나란 사람이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고추장만들기 수업에 머릿수를 채우고 있는 것이다. 일회용 장갑에 마스크까지 끼고.
난데없이 고추장만들기 수업에 나가 앉게 된 건 지인의 홍보와 강권 탓이다.
“재료도 정말 좋은 걸로만 쓰고, 수업료 만 원에 1킬로 넘게 담아주니 좋은 기회에요. 꼭 신청해요.”
아무리 집에서 요리를 하지 않는다고 해도 고추장이라면 어느 집이나 기본으로 있어야 한다고 꼭 신청하라고 몇 번이나 말씀하시는데 난감했다. 주먹만 한 크기의 고추장 한 병을 사면 마르고 닳도록 먹는데 굳이 시간내어 만들 필요가 있을까 싶었지만, 결국 그 강좌를 신청했다.
사실 열다섯 명이 모여 고추장 만들기 수업을 한 시간 안에 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라는 건 나같이 요리와 담쌓은 인간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역시나 그 짐작은 맞았다. 어정쩡하게 서서 구경하다가, 고춧가루 봉지 몇 개 뜯어드리고, 주걱으로 젓는 시늉 잠깐 하는 것이 나의 고추장 수업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고추장엔 의외로 많은 재료가 들어갔다. 고춧가루는 당연하고 그 외에도 청국장 가루, 볶은 콩가루를 비롯해 매실액, 배, 심지어 와인도 두 병이나 콸콸 부었다. 재료는 거의 다 분말 상태이므로 결국 고추장 만들기는 비율과 섞기, 이 두 가지에 달렸다고 해도 될 듯하다.
나를 포함한 열다섯 명의 수강생 중 대부분은 칠십 전후의 연배였다. 그분들은 오히려 수업 참여도가 높았다. 커다란 플라스틱 함지박에 재료를 모두 붓고 가루가 뭉치지 않도록 주걱으로 오래 저었다. 그리고서는 고추장의 농도와 간을 결정했다.
어르신들은 이 과정에서도 매우 적극적이었다. 짜다, 싱겁다, 묽다, 되다. 저마다의 의견이 다르니 옆에서 보기에 살짝 걱정스럽긴 했으나, 아무리 봐도 고추장 만드는 일이라면 나 빼고 모두 다 진심이신 것이 분명하다.
수업이 끝나고 나자 강사는 저울에 각각 1.2킬로씩 달아서 수강생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런 행사엔 빠지지 않는 기념사진도 한 장 찍었다. 그리고 돌아가며 고추장 만들기 수업의 소감을 한마디씩 이야기했다. 과연 이걸 ‘만들었다’라고 해도 되나 싶은 마음은 저만치 미뤄놓고 나도 짧은 소감을 이야기했다. ‘요리라고는 하지 않는 사람에게 고추장 만들기는 새로운 경험이었다’라는 것이었는데 순도 백 퍼센트의 진심이 담긴 소감이었다.
강사는 숙성기간이 필요 없는 고추장이니 바로 먹어도 된다고 했지만, 나란 사람에게 고추장이 생겼다고 해서 바로 어떤 요리계획이 떠오르는 건 아니니 일단 냉장고에 넣어두기로 했다. 냉장고 제일 위 칸에 붉은빛이 선명한 고추장을 넣고 냉장고 문을 닫으려다 다시 열어서 물끄러미 봤다.
오래전, 우리 엄마 살아계실 때 나의 냉장고 안에는 엄마가 만든 고추장이 늘 들어있었다. 정갈한 엄마의 필체로 ‘다데기’라고 커다랗게 쓴 양념 고추장도 있었다. 아무것도 더 넣지 않고도 모든 볶음이나 조림 요리를 할 수 있도록 알아서 재료를 배합했다는 엄마의 ‘다데기’도, 다른 요리엔 쓸 엄두도 못 냈지만 고기를 먹을 때는 쌈장 대신 꼭 꺼내어 먹던 엄마의 고추장도 이제 냉장고에 없다.
“넌 아무것도 안 해 먹지만, 죄다 친정 와서 먹고 가지만…. 그래도 기본양념은 있어야지.” 하시며 엄마는 매번 내게 그 고추장 통을 주었다. 하지만 한참 지난 후에도 거의 줄지 않은 고추장 통을 보시곤, 안 해 먹어도 어째 이리 안 해 먹느냐며 혀를 끌끌 차던 엄마. 엄마가 계실 때는 쓸 줄 몰라서, 그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이제 아까워서 쓰지 못했다. 가끔씩 식구들과 집에서 고기를 구워 먹을 때, 더는 제사도 차례도 모시지 않게 되었지만, 가끔 그리워 나물을 사다가 비빔밥을 해먹을 때 엄마의 고추장을 꺼냈다.
“이제 엄마 고추장은 이게 마지막이야.”
엄마의 고추장을 마지막 먹던 날, 나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하며 식탁에 고추장을 올려놓았지만 섭섭한 속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냉장고 제일 위 칸에 올려진 고추장 통을 물끄러미 본다.
대체 너희는 집에서 뭘 해 먹고 사는 거냐며 혀를 차던 엄마의 기억. 남편도 딸도 엄마 덕에 집밥 먹던 시절의 기억.
음식은 이런 것이다. 때로 낯선 곳에서 익숙한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