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에는 혼자 가길 권합니다

by 전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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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이 고향인 작가가 쓴 양양의 이야기이다. 어쩌면 양양의 소개 글이고, 또 어쩌면 관광지가 아닌 양양의 옆모습에 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고향이라는 개념이 없어져 가는 시대이다. 어디로든 쉽게 떠날 수 있을 뿐 아니라, 예전에 비하면 그럴 기회도 많아진 시대니까 당연하다. 고향을 지킨다든가, 고향에 살아야 한다든가 하는 말은 이제 공허하다.


이런 시대에 작가처럼 나도 고향에서 산다. 나의 고향은 어느새 120만이 넘는 대도시가 된 수원이다. 내 아버지의 고향이었던 이곳은 이제 내 고향이기도 하고, 이곳에서 태어나 자란 내 아이의 고향이기도 하다. 얼마 전 우연히 올라탄 택시의 기사님은 수원 토박이라고 자신을 지칭하며, 이제 수원의 원주민은 30퍼센트도 되지 않는다더라, 했다. 토박이들에게 수원은 인구 120만의 도시 수원과는 미묘하게 같은 듯 다르다. 그런 토박이들의 수원을 이해하는 이는 점점 사라진다.


이런 나에게, 양양이 고향이며 떠났다가도 다시 양양으로 돌아가 둥지를 틀고 사는 작가의 글이 읽고 싶어진 건 어쩌면 당연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특히 제목이 맘에 들었다.

“양양에는 혼자 가길 권합니다.”

물론 제목만으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을 리는 없다. 사실 제목이 내게 전한 것은 호기심이 아니라 동질감이었다. 남의 나라나 다름없던 양양이었지만, 그런 낯선 양양에 나도 봄가을이면 줄기차게 혼자 간다. 하지만 이십여 년 가까이 나 역시 혼자 양양에 매해 가면서도 내가 양양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는 양양은 법수치 계곡뿐이다.


올해로 19년 차 플라이 낚시꾼인 나는 오래전 처음 양양에 발을 디뎠다. 그 나이 먹도록 양양에 가본 기억이 없다. 강원도라면 그저 설악산과 경포대, 주문진이 내가 기억하는 전부였다. 이런 사람에게 양양 하조대 건너편 안쪽으로 계곡이 있다는 건 그저 신기하기만 하던 시절이다.

그때 내가 처음 낚싯대를 들고 찾아간 곳은 바로 법수치 계곡이었다. 궁금해서 찾아간 동호회 사이트에서 그해 봄 첫 출조가 열리는 계곡이라고 알려줬다. 그 깊고 긴 계곡에서 생면부지의 낚시꾼들을 만났고, 그들에게 낚시 이야기를 들었다. 무릎 깊이밖에 되지 않는 곳에서도 물고기가 낚이고, 그 물고기를 낚는 데 필요한 장비라는 그들의 물건들을 구경했다. 내가 들고 간 낚싯대는 저수지용이지 그런 계곡에서 쓰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가서야 알았다.


그 동호회엔 가입하지 않았다. 낯선 사람들과 선뜻 어울리는 재주는 없었던 데다가 취미 특성상 여자라곤 거의 없는 분위기도 어색했다. 결국 겁 없이 혼자 다니는 낚시꾼의 세계로 들어섰다.

아무리 혼자만의 낚시 세계로 발을 들여놓았어도 무섭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그나마 눈에 익은 법수치가 좋았다. 그 이후 여러 계곡을 알게 되고, 겁은 좀 없어지고, 무서운 순간은 줄었지만, 여전히 법수치에선 맘이 편했다. 역시, 고향의 느낌이었다.


“ 자연은 어느 한순간도 같은 모습을 하지 않아서 어느 계절의 주전골이 가장 좋다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사람도 사실 매 순간 달라지니까요. 그 서로 다른 것의 변화 중에 어느 곳, 어느 시간에 어느 누군가의 개성과 딱 맞기도 합니다. 아마 우리는 그 순간의 황홀 때문에 다른 사람도 만나고 다른 자연도 찾아가고 다른 나라, 다른 문화, 다른 모든 것과의 경험을 그리워하는지 모릅니다. ”


작가가 쓴 이 부분을 곰곰이 다시 읽었다. ‘서로 다른 것끼리 딱 맞는 순간의 황홀 때문에 다른 곳, 다른 이, 다른 것을 찾는 것일지도 모른다’라는 부분이 와닿았다.

나에게 낚시는 어쩌면 그런 것이었다. 법수치 계곡은 사실 물고기 자원이 풍부하지 않다고들 한다. 하지만 물고기들이 넘쳐났다고 한들 자타공인 꽝 조사인 내게 물고기가 척척 낚였을 리는 없다. 나는 낚시를 좋아하지만, 물고기를 잘 잡는 재주는 없다. 이런 낚시꾼은 법수치 계곡 아니라 그 어딜 가도 한두 마리 낚기가 늘 힘들다.

그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계곡엔 변변한 화장실이 없다. 그래도 간혹 재래식 공중화장실이라도 있으면 다행이지만, 법수치엔 그런 곳도 없다. 수세식 화장실에 익숙한 도시 사람이 푸세식의 화장실도 적응하기 쉽지 않은데, 그나마 나무나 바위 뒤의 자연 화장실도 난감하긴 매한가지다.


인적없는 산골짜기 계곡에서의 낚시란, 인적없는 두려움뿐 아니라 편의시설 없는 두려움도 견뎌야 하고, 또 밥을 먹을 식당이 없거나, 때로 핸드폰이 잘 터지지 않는다든가, 어느 바위에서 굴러도 도와줄 일행이 없는 등 따지고 들면 그 어려움과 불편함은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모두를 넘어서 ‘서로 다른 것끼리 딱 맞는 그 순간의 황홀’이 강원도 계곡의 낚시에 있었다. 거기에 더해 고향에 온 듯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 양양의 법수치 계곡에 있었다.


‘양양에는 혼자 가길 권합니다’를 다 읽고 조용히 내려놓았다. 책을 덮고 나니, 어디선가 계곡의 맑은 물소리, 청량한 바람이 불어왔다. 이제 곧 봄이다. 낚싯대를 꺼낼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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