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다녀간 우렁각시

by 전명원


추석을 앞두고 조부모님 묘소에 미리 성묘를 다녀왔다. 조부모님이 돌아가신 건 내가 아주 어렸을때의 일이다. 산소엔 총 3기의 봉분이 있다. 조부모님의 합장묘와 증조부모님의 합장묘, 그리고, 나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할머니의 막역한 지인이었다는 분의 오래된 합장묘가 있다.


부모님은 늘 입버릇처럼 "산소를 정리해야지" 하셨지만 끝내 정리하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병이 든 엄마가 "이제 산소는 네가 정리해라"하셨는데 나 역시 아직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매해 한식과 명절을 앞두고 찾을 때마다 생각한다. ‘이제 윤달이 돌아오면 그만 산소는 정리해야지.’ 하지만 또 한편 생각한다. ‘윤달이 또다시 돌아오면, 나는 산소를 정리할 용기를 낼 수 있을까.’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그거 돈만 주면 업체에서 다 알아서 해줘.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런데 돈만으로는 되지 않는 어떤 마음을 먹어야만 한다. 돌아가신 어른들이 누운 자리를 다시 여는 일이니 쉽게 그 마음을 먹을 수가 없는 것이다.


남편은 일생 처갓집의 벌초를 하고 나면 손이 덜덜 떨린다며 웃었다. 도와줄 동기 간도, 함께 할 친척도 없었으니 오로지 우리 부부의 몫이었는데 이제는 해마다 연례행사인 그 벌초를 힘겨워하는 나이가 되었다. 어느 해인가는 벌초대행업체에 맡겼었다. 그런데 비용은 고사하고 벌초해놓은 모양이 초보자인 우리가 해놓은것보다도 못했다. 결국은 다시 남편이 예초기를 잡았다.


그런데 몇해전부터 갑자기 신기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매해 추석벌초를 하러가면 이미 벌초가 되어있는 것이다. 그 우렁각시의 정체를 알 수는 없다. 심지어 이 우렁각시는 전문가의 손길을 뽐내듯 깎아놓은 풀 한포기 흘리고 가질 않았다. 보통 우리가 명절 한두주 전에 벌초를 하러 갔는데 자란 풀의 길이를 보면 우리보다 한두주 앞서 다녀간 듯 하다.

처음 우렁각시가 다녀갔던 해엔 우리 부부 모두 당황하고 신기했다. 누구지? 둘이 눈을 마주쳤는데, 아마도 한 구석에 묘를 쓴 할머니 지인의 후손이 아닐까 짐작할뿐이었다. 몇십년간 벌초를 하며 입구의 할머니 지인 묘소만 놔두기 뭐해 그간 늘 그 댁 묘소도 벌초를 해왔다. 벌초가 끝나면 술을 올리고 인사를 드릴 때에도 빼놓지 않았다. 아마도 그 댁 후손들이겠지, 하면서도 확인한 바 없고 마주친 일이 없으니 여전히 그저 짐작만 할 뿐이다.


이런 합리적인 의심을 하게 된 건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성묘를 갔다가 몇십년만에 우연히 그댁 후손을 만난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날, 그 후손들에게 나는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심을 알렸고, 윤달이 돌아오면 산소를 정리하겠다고 전했었다.

물론, 그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소 불합리하다고 생각하지만 분묘기지권이라는 것이 있으니 그 묘의 이장을 요구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안다. 그 후손 역시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올해도 추석 벌초는 우렁각시가 하고 갔다. 다섯해째이다, 처음 한두해는 당황스럽다가 그 이후엔 은근 기대하게 되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그해에 첫 윤달이 들었지만, 차마 돌아가시자마자 조부모님의 산소를 정리할 수는 없었다. 결국 그 이후 두 번의 윤달을 더 보냈다. 우렁각시가 처음 다녀가기 시작했을 때, 신기해하던 우리 부부는 말했었다. "당분간 우렁각시를 보낼터이니 아직 산소를 정리하지는 말라는 뜻 아닐까." 우리는 이처럼 편한대로 생각하며 어느새 추석이 다가오면 서로 눈을 마주치며 의미심장하게 웃곤 했다. ‘올해도 우렁각시가 올까?’


아무리 우렁각시가 이렇게 매해 다녀간다고 해도 언제까지나 조부모님 산소를 정리하지 않을수는 없다. 돌아가신 조부모님을 기억하는 건 나뿐이다. 기억하지 못하는 조상의 묘를 관리하는 부담을 내 자식에게까지 넘길 수는 없으니 아무래도 다음 윤달엔 정말 산소를 정리해야지 싶다.

이처럼 산소는 벌초와 관리의 책임이 따르는 대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돌아가신 분들은 그곳에 계시지 않으면서, 동시에 그곳에 계신 것이니 말이다. 다음 윤달은 2028년에 찾아온다고 한다. 그때에도 나는 망설일 것이 뻔하다. 산소를 정리할 수도, 결정을 못한 채로 또다시 다음번 윤달을 기다리게될 지도 모르겠다. 산소란 이런 것인가 싶기도 하다. 그리움과 부담, 책임감과 애틋함. 이런 여러 가지가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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