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면 최장 열흘까지도 가능하다는 올해 추석 연휴를 강원도 봉평에서 시작했다. 남편이 퇴직하기 전엔 일 년 중 길게 쉴 수 있는 명절 연휴엔 어디론가 멀리 떠날 궁리부터 했었다. 붐비는 공항, 치솟는 항공권 가격을 감수하면서도 우리 역시 시간을 뺄 수 있는 것이 그때뿐이니 어쩔 수 없었다.
이제 남편은 퇴직했고, 우리는 굳이 남들 다 떠나는 성수기에 여행을 가지 않아도 된다. 퇴직자이니만큼 저렴한 항공권에 내 일정을 맞출 수도 있게 되었다. 그러니 일 년 중 가장 항공권이 비싼 시기인 추석 연휴에 굳이 어디론가 멀리 가는 대신 국내에서 느긋하게 있어 보기로 했다.
강원도 봉평을 선택한 건 몇 가지 이유가 있다. 태백산맥을 넘지 않아도 되니 거리상 부담이 적고, 내가 해마다 봄가을이면 낚시를 자주 다니며 지나다녔던 곳이기에 익숙하기도 했다. 그리고 메밀과 이효석으로 유명한 곳이니만큼 볼거리도 적당하니 일주일이 심심하지 않으리라는 계산도 있었다.
우리 부부와 성인인 딸, 그리고 반려견 한 마리. 이렇게 네 식구가 트렁크에 일주일 치 준비물들을 차곡차곡 싣고 집을 나섰다. 개천절인 10월 3일 이른 새벽의 고속도로는 평소보다 확실히 통행량이 많았다. 호법분기점에서 한번 차들이 빠져나가고, 만종 분기점에서 또 한 번 차들이 빠지고 나니 확연하게 오가는 차들이 적어졌다. 그렇게 봉평에 도착해 일주일짜리 강원도민으로 추석 연휴 첫날을 시작했다.
둘째 날, 우리 가족은 봉평에서의 첫 아침을 느긋하게 맞이했다. 인터넷에선 본격적인 귀성행렬이 시작되었다는 교통상황이 보도되기 시작했다. 우리는 시간 보낼 곳을 검색했는데 반려견을 데리고 나온 여행이니만큼 애견 동반 숙소, 관광지, 음식점 등을 검색하는 일이 우선이었다. 그렇게 고른 첫 목적지가 봉평 허브나라였다. 우리 외에도 강아지를 데리고 온 관광객들이 많았다. 한눈에 보아도 외지인이구나 싶은 가족들이었다. 그뿐 아니라 허브나라는 유모차나 휠체어가 다니기 좋은 경사로 데크길이 갖춰져 있어서인지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도 편하게 둘러보는 모습이었다.
우리는 반려견을 데리고 다닐 때 주로 ‘개모차’를 이용한다. 개는 개답게 키워야지 무슨 유모차냐고 하는 시선도 있다는 걸 안다. 하지만 개모차에 반려견을 태우는 건 오히려 타인에게도 민폐를 덜 끼치는 일이라는 걸 경험으로 알게 됐다. 사람 많은 곳에서 목줄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대소변을 보는 반려견으로 인해 행인들이 눈살 찌푸리지 않아도 된다.
봉평이니만큼 메밀 요리로 점심을 먹기 위해 또다시 애견 동반 음식점을 검색했다. 의외로 봉평 주변엔 애견 동반 식당이며 카페가 많았다. 강아지와 함께 나선 우리 같은 가족에겐 다행스럽고 반가운 일이다.
그중에서 우리는 ‘풀내음’이라는 메밀음식점에 들어갔다. 외관부터 토속적인 그곳은 2대가 22년에 걸쳐 운영하는 곳이라고 한다. 지도상에서 ‘애견 동반 가능’ 이란 문구를 봤지만, 혹시나 싶어 미리 여쭤보려고 들어섰다가 웃음이 났다. 거의 모든 테이블엔 가족들 사이에 크고 작은 개들이 점잖게 앉아있었기 때문이었다. 개모차를 타고 있거나, 하네스를 한 채 자리 잡은 반려견들을 보며 변화를 실감했다. 시대가 달라지고, 명절의 풍경이 바뀐다. 가족의 형태도 마찬가지이다.
식사를 마치고 근처의 봉평 시장으로 갔다. 봉평장은 2일과 7일에 열리는 전통시장이 유명하지만, 장날은 아니어도 명절 연휴인 만큼 외지에서 온 듯한 관광객의 모습이 많이 보였다. 우리 가족은 야외테이블이 있는 길가의 카페에 앉아 느긋한 오후를 보냈다. 낯선 도시로 따라 여행 온 우리 강아지는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리느라 바빴고, 지나가는 강아지 친구들을 볼 때마다 귀를 쫑긋 세우며 반응하기도 해서 웃음을 자아냈다.
봉평에서 추석 연휴를 보내고 있는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블로그에 올리니 한 이웃분이 댓글을 달아주셨다. “요즘 사람들입니다.”